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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6)


녹채(鹿柴) 


   당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텅 빈 산에

사람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목소리만 들려오네


반사된 햇볕

깊은 숲에 들어


푸른 이끼 위를

다시 비추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후세 사람들은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일컫는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영향을 깊이 받았다. 게다가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 마힐(摩詰)을 합하면 ‘유마힐(維摩詰)’이 된다. 유마힐은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 재가불자(在家佛者)로 학덕이 높았다. 왕유는 이처럼 그의 삶과 연관된 불교 인연으로 시불이라 불릴까? 물론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불이라는 그의 별칭은 불교의 이치를 생활화하고 그것을 시로 형상화하는데 뛰어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봐야 한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공(空)은 불교 색채가 짙지만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같은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생활 속에 녹아든 구체적 형상이다. 공(空)이 구체적 형상이라니 무슨 말인가? 말하자면 “진정으로 텅 비었지만 오묘하게 존재하는 것(眞空妙有)”이다. 이 시에 묘사된 ‘사람 보이지 않는 텅 빈 산’, ‘두런두런 들려오는 목소리’, ‘깊은 숲으로 반사되어 푸른 이끼 위에 비치는 햇볕’ 등은 모두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형상이지만 왕유의 허정(虛靜: 텅 비고 고요한)한 삶을 강화해주는 요소들이다. 이보다 더 높은 경지의 불자나 이보다 더 지극한 경지의 공(空)이 있을까? 왕유가 명실상부한 시불로 불리는 까닭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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