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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로마 역사 태동을 말할 적에 거의 모든 출판물에 그 유일한 증언자처럼 매양 등장하는 이 조각은 내가 항용 그 크기와 출처가 궁금했더랬다. 작년 여름, 로마 구심 중심인 베네치아 광장 일대를 하릴없이 돌며 어느 곳을 들를까 망설이다, 서울 남산을 오르내린 기억이 있어, 그런 남산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건방지게 hill이라는 이름을 단 캄피돌리오Campidoglio라는 곳에 올라 언덕배기 하나에 지나지 않는 이곳에 서니, 그런대로 로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정상에 Musei Capitolini라는 간판을 단 전각이 있어 들어갔다가 그에서 바로 문제의 저 조작을 만났다.  


나는 다른 자리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박물관 내부에는 두 시간 이상 머물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체력 고갈을 문제로 들지만, 그 체력 고갈 절대의 원천은 사진이다. 하도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켁켁 거리기 일쑤다. 그리 큰 기대를 품지는 않은 이 박물관은 여타 유럽 지역 박물관이 그렇듯이 건축물 그 자체가 소위 말하는 문화재라, 곳곳에 스민 역사의 흔적이 인상적이었거니와, 그 곳곳을 채운 유물들을 무심히 훑어보다가 전연 기대치도 않은 저 물건을 만났다. 아, 로마 역사를 논한 글에서 그리 자주 본 그 조각 출처가 바로 이곳이었다니 하는 그런 만남이 주는 감흥이 없을 수는 없다. 


<사진2> 


보통 동물 암컷에게서 나는 어린아이 생육을 위한 액체를 젖이라 하거니와, 그것으로 널리 애용한 것이 우유牛乳이니 이는 글자 그대로 소젖이라는 뜻이다. 사람 젖은 인유人乳라 해야 할 것이나 그리 말하는 일은 없고 그냥 젖이라 하거니와, 그렇다고 젖물린다는 표현 말고는 그닥 쓰임이 광범위한 편은 아니다. 


로마 건국 시조라는 로물루스, 이 놈은 쌍둥이 동생 레무스와 함께 티베리스 강가에 버려졌다가 암늑대 젖을 먹으며 살아났다 하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먹은 늑대 젖은 뭐라 해야 하는가? 늑대를 흔히 한자로 랑狼이라 하거니와, 그렇다면 늑대젖은 낭유狼乳라 해야는가? 

늑대 젖은 어떤 맛인지 모르겠다. 아마 살균처리를 해야 했을 법한데, 하도 자주 먹다 보면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 해도 그에 적응했을런지도 말이다. 십여 년 전 몽골에 처음 갔을 적에 그 초원에서 유목민이 게르에서 파는 말젖 발효주인 마요주를 마셨다가 설사 좔좔한 기억이 생생해서 그런지, 로물루스-레누스 형제도 처음엔 늦대젖 먹고 제법 물똥께나 쌌겠다 하는 생각도 퍼뜩 해 본다. 


<사진3> 


앞서 제시한 사진 중 첫번째와 세번째 사진을 조금 세심히 살피면 늑대랑 그 젖을 빠는 아이둘이 제작기법이 어쩐지 다르다는 점을 눈치챈다. 이에 대한 고전적 설명은 늑대 조각[the Capitoline Lupa]은 기원전 5세기 무렵 이른바 에트루리아 시대 작품이고, 로물루스와 레누스 쌍둥이 형제상은 15세기 르네상스시대 화가이며 조각가이자 판화가인 안토니오 델 폴라이올로(Antonio del Pollaiolo, 1429~1498)가 만들어 붙인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근자 분석에 의하면 늑대 조각은 13세기 중세시대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니, 예컨대 이탈리아 일간 《la Repubblica》 2008년 7월 9일자 Adriano La Regina 기고문 "La lupa del Campidoglio è medievale la prova è nel test al carbonio"에 의하면, 늑대상은 방사선탄소연대 측정결과 중세기 완성품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로마 문화유산국 책임자인 레지나에 의하면, 늑대상은 살렌토대학(University of Salento) 연대측정센터 연구자들이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07년 2월 28일, 카피톨리네박물관은 늑대조각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조사는 그해 8월에 시행됐다. 그러다가 그달 31일 조사가 시행되긴 했지만 그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마 당국은 이를 발표해야 했지만, 공표를 미룬 것이다. 이후 조사 결과가 공표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늑대상은 그 제작 시기 혹은 주체를 놓고 여러 견해가 있었으니, 에트루리안-이탈리리아식(Etruscan-Italic)이라는 말이 있었는가 하면, 마그노 그리스식(Magno-Greek)이라는 견해도 있었고, 로마제국시대 작품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원전 5세기 전반기 에트루리아 작품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통용됐다. 이런 늑대상을 중세시대 작품이라고 주장한 이는 안나 마리아 카루바(Anna Maria Carruba)였다. 


카루바는 제작 기법에 주목해 중세설을 주장했으니, 그녀에 의하면 늑대상은 밀납주조 방식을 통해 단번에 주물되었으며, 이는 중세시대 청동제품 제작에 광범위하게 보이는 수법으로 그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는 방식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그는 나아가 늑대상 표면에서 관찰되는 특징은 고대 조각에서는 보이지 않고 중세시대 청동제품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런 주장을 카루바는 2006년 12월에 발표해 파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1997년 이래 2000년까지 늑대조각 복원에 관여한 로마 지역 고고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깡그리 무시했다. 


늑대상은 워낙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가 상징성이 큰 까닭에 일종의 주술에 가까웠으니, 이런 점들이 그 제작시기와 관련한 논란을 잠재우는 측면이 컸다고 할 수 있다. Theodor Mommsen(1845)은 이 박물관 소장품 중 그 어느 것보다 이 작품을 아름답다 여기면서 본능에 가깝게 막연히 고대 작품이라 생각했다. 이를 에트루리아 시대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Winckelmann(1764)이라 할 수 있으니, 그는 이 조각에 나타나는 특징들의 연원을 에트루리아 시대에서 구한 것이다. 


일찍이 Famiano Nardini(1704)는 늑대상을 고대 조각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Friedrich Matz(1951) 같은 이는 에트루리아 설을 지지했으며, 이런 견해는 Erika Simon(1966)한테 지지를 받기도 했다. 


고대 작품이 아니라는 의문을 처음으로 품은 이는 Emil Braun(1854)이었다. 로마지역 고고학 발굴기관 사무총장이던 그는 늑대상 다리에 난 파괴 흔적을 관찰한 결과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이다. 이어 루브르박물관 보존과학도인 Wilhelm Fröhner(1878)는 늑대상은 양식으로 보아 카롤링거시대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베를린박물관장 Wilhelm Bode(1885) 역시 비슷하게 늑대상이 중세작품일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20세기가 되면서 깡그리 무시되고 말았다. 


새로운 연구성과에 의하면 늑대상 제작에 쓴 청동은 중세시대 중부 이탈리아, 구체적으로는 로마에서 오르비에토에 걸치는 티베르 계곡(the Tiber valley)에서 채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세시대에 채택된 합금기술(fusion technique)은 카루바에 의하면 12세기 이래 관찰된다. 


이 늑대상을 보면서 내가 무척이나 의아한 대목은 실은 로물루스에 의한 로마건국을 모티브로 삼는 늑대 모티브 자체가 설혹 에트루리아 혹은 고대 로마시대라 해도, 그 시대 다른 데서는 좀처럼 그런 모티브를 관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로물루스 형제에 의한 늑대 젖물기는 이미 고대 로마 제국 시대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건국신화였다. 


하지만 그런 신화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해서 그것을 모티브로 삼은 늑대 혹은 늑대와 루물루스 형제를 모티브로 삼은 조각을 비롯한 예술작품이 유행하고 등장해야 한다는 것은 전연 별개다. 내가 보고 들은 바가 짧아서인지 모르나, 저것이 과연 적어도 로마시대 혹은 이 이전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 소재로 보아 저를 주제로 삼는 무수한 늑대 혹은 로물루스 형제 예술작품이 남아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저 늑대상이 로마 제국 이전 작품이라도 해도, 현재까지 발견된 거의 유일한 같은 모티브 예술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느닷없이 하늘에 떨어진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저 작품을 낳은 선배나 조상도 없고, 더구나 그 후손도 양산하지 못한 채 오직 저 한 작품을 남기도 늑대상을 사라졌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그렇다면 저것이 중세시대로 내려오면 어찌되는가? 늑대 젖을 빠는 로물루스 형제 예술작품은 신통방통하게도 중세 이후에 쏟아진다. 저것을 본지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내가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 일대 몇 군데를 돌았거니와, 하나 같이 중세시대 이후 늑대 젖을 빠는 로물루스 형제 모티브 조각이나 회화작품을 자주 만났다. 


간단히 말해, 저 모티브의 예술작품은 중세 이후에나 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근자 새로 등장한 늑대상 중세 제작설을 다른 측면에서, 다시 말해 예술의 유행성 측면이라는 점에서 지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양식론이나 주조기법 이런 데는 문외한이다. 다만 유행론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는 새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몸뻬 바지가 19세기 이전 조선시대 한반도에서 발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무신이 19세기 이전 조선시대에는 발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로물루스 형제한테 젖을 먹이는 늑대상은 내 상식으로는 중세 이전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나타날 수 없다. 


중세시대 이래 내가 관찰한 늑대상은 차후 시간을 두고 정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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