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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13)




기해잡시(己亥雜詩) 96


[淸] 공자진(龔自珍) / 김영문 選譯評 


어렸을 땐 검술 익히고

퉁소 즐겨 불었건만


서린 검기와 그윽한 정

하나 같이 사라졌다


황량한 마음으로

귀향 길 배를 탄 후


오늘 아침 밀려오는

온갖 애환 누가 알랴


少年擊劍更吹簫, 劍氣簫心一例消. 誰分蒼凉歸櫂後, 萬千哀樂集今朝.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무협소설의 지존 김용(金庸)을 생각하다가 문득 옛날에 쓴 글 한 편이 생각났다. 혼란한 청말에 새로운 시대를 꿈꾼 공자진(龔自珍)의 『기해잡시(己亥雜詩)』에 대한 서평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기해잡시』를 번역하고 평석(評釋)한 최종세의 『기해잡시평석(評釋)』(도서출판 月印, 1999)에 대한 생기발랄한 리뷰였다. 내가 보기에 중국 근대 문인들의 협기(俠氣)는 공자진에 의해 확장되었음에 틀림없다. 글을 인용한다. 


“유협(游俠)은 기존의 제도와 법률이 부패한 왕실 또는 권세가와 관료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암울한 사회, 그리하여 민중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그 참담한 하늘 아래 바람처럼 나타난다. 탐관오리의 사리사욕에 찌들어버린 왕법(王法)은 이제 법이 아니다. 그 혼탁한 법을 대신하여 쾌도난마의 보검이 달빛을 가르고, 협의(俠義)의 검객은 다시 달빛을 등에 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 유협은 이제 협소한 혈연의 사랑에 갇혀버린 유가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 혈연이나 신분에 얽매임 없는 묵가(墨家)의 드넓은 사랑(兼愛)을 자신의 몸에 체화한다(游俠을 흔히 墨俠이라고 부른다).” 


공자진의 협기가 전통 중국이 무너져 내리는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김용이 무협소설을 쓴 배경은 무엇일까? 수많은 중국인이 환호하듯 현대의 통일 중국이 배경일까? 대개 김용의 무협소설이 현대 중국의 꿈을 그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전국시대의 묵협(墨俠)은 진시황의 통일 이후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대륙을 통일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무협의 꿈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용이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홍콩에 거주한 실향민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의 꿈은 중원에서 쫓겨난 정파 협객의 꿈이 아닐까? 온갖 고난을 거쳐 사파를 물리치고 중원 무림을 장악하는 대협의 꿈 말이다. 그것은 본래 김용 혹은 홍콩의 꿈이나 은밀하게 감춰져 있으므로 모든 중국인들은 그것을 세계 속에서 굴기하는 현대 중국의 꿈으로 체화할 수 있었을 터이다. 아니 어쩌면 공자진 시대의 협객은 현실 속 검객이지만 김용의 협객은 문학 속 대협임이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위의 시에서도 드러나듯 정의로운 협골(俠骨: 劍氣)과 따뜻한 유정(幽情: 簫心)은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인격이기 때문이다. 



"떠나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 늙으면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 - 원매(袁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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