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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98)


산행(山行)


[唐] 두목 / 김영문 選譯評 


돌 비탈 길 따라서

멀리 추운 산 올라가니


흰 구름 피는 곳에

인가가 자리했네


수레 멈추고 앉아서

저녁 단풍 숲 사랑함에


서리 맞은 나뭇잎들

봄꽃보다 더 붉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晚, 霜葉紅於二月花. 


한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 치고 이 시를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또한 이 시는 가을 단풍을 노래한 절창으로 각종 한문 교과서에까지 실리곤 했다. 이 시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시를 꼼꼼히 읽어보자. 우선 작자 혹은 작중 인물은 거처에서 멀리(遠) 떨어진 추운(寒) 산 돌 비탈(斜) 길을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선 눈 앞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몇 집 자리 잡고 있다. 때는 석양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가을 저녁이다. 시속 주인공은 한기가 스미는 석양 속 단풍 숲 앞에서 수레를 멈췄다. 이쯤 되면 보통 한시 작자들은 “아 슬픈 가을(悲秋)이여!”라는 탄식을 내뱉는다. 가을을 읊은 시들이 대개 그렇다. 아니 한시의 상당수가 애상, 비탄, 수심 등의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1917년 중국 신문학운동의 선구자 후스(胡適)는 전통문학의 병폐를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그것을 타파하자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자(不做無病呻吟的文字)”였다. 중국 시 전통의 한 갈래가 “인간의 감정에 따르는(詩緣情)” 데서 시작되었고, 또 감정 가운데서도 “울분이나 비애를 토로하는 것(發憤著書)”이 문학창작의 주요 동기였음을 상기해보면 그런 ‘비애’의 전반적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습화·유형화의 함정에 빠짐으로써 감정의 과잉이나 표현의 진부함에 갇히게 되었다. 모든 한시가 그게 그거 같아서 독창성이나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추남추녀(秋男秋女)의 휑한 가슴을 읊은 가을 시의 거의 90%는 ‘슬픔의 가을(悲秋)’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두목의 이 시는 그런 슬픔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석양빛에 반짝이는 단풍잎을 아끼고 즐기는 마음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이는 틀림없이 기쁨의 감정이다. 그 기쁨은 석양, 가을, 낙엽이라는 자연의 마지막 교향곡 위에 실려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의 노년도 이처럼 절제되어 있지만 당당하고 찬란한 빛이었으면 좋겠다. 문학의 독창성은 무슨 경천동지할 발상이나 표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비틀기다. 이 시가 바로 그런 비틀기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단풍 절정을 보름쯤 앞둔 이맘쯤 나는 근 몇년 연속으로 남산공원을 같은 목적으로 탄다. 이곳 화살나무 단풍이 서울성곽과 어울려 오묘한 풍광을 빚곤 한다는 그 기억이 하도 강렬하기 때문이라, 나 혼자 그것을 즐기기엔 아깝다 해서 더러 그것을 공유하고픈 사람을 동행하기도 했더랬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동네 길목에 보니 해바라기 여물어 꽃잎 잃어버리곤 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듯 푹 고개 수그렸다.


공원에 들어선다. 뭐 이 천만 도시 도심 공원이 아무리 좋다 해도,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할 수는 없을 터, 그럼에도 인간계에선 이만한 곳 찾기가 쉽진 않다고는 해두자. 


작년부턴가 이 공원 느낌이 확 달라졌는데, 내가 그리 좋아하는 화살나무는 꽤 많이 뽑아버렸음에 틀림없다. 나는 불타는 가을이 좋다. 내가 열이 많아선지 혹은 꼭 이맘쯤이면 그것을 대변하는 듯한 일을 모름지기 하필 치루기 때문에 더 그런지는 모르겠더라. 아무튼 해마다 이 무렵이면, 그런 일이 꼭 나한텐 하나씩은 생기더랬다. 부디 이번만은 그냥 나 역시 가을 탄다는 말 정도로만 넘어갔으면 한다. 


확실히 화살나무 비중이 줄었다. 그 허전함 싸리꽃으로 대체하고자 하나 역부족이다. 저 주렁주렁 자주색 알알이 송근 저 나무는 언제나 이름을 들었다 하면, 바로 까먹어 이젠 미안함도 없다. 내가 이러니 너도 그러려니 했으면 한다. 


오르는 길에 김유신 동상을 본다. 김경승 작품인데 난 이 사람 조각에서 언제나 근육에의 숭배를 본다. 뭐 내가 갖추지 못한 결단이 드러나기에 부럽기 짝이 없어서라 말해둔다. 남들이야 우째 보건 나한텐 베르리니를 능가하는 조각가다.


올라 화살나무를 찾는다. 나 대신 터져버린 그 붉음을 찾는다. 성벽 따라 한땐 화살나무 그득그득했더랬다. 까까머리 만드니 저 모양이다. 부디 화살나무 좀 더 심어다오. 


화살아 넌 터지기라도 하지 난 속에선 난 천불로 죽을 것만 같다.


이러구로 답답해 하는데 먼저 터진 홍단풍이 지는 해 역광에 붉음을 탐한다. 해가 진다. 



단풍에 물든 경복궁 향원정



한시, 계절의 노래(189)


시냇가에서(溪上)


[宋] 대복고(戴復古) / 김영문 選譯評 


작은 누각 산뜻하게

맑은 시내 마주한 곳


산들산들 서풍은

저녁연기 쓸어가네


벽옥 물과 밝은 노을

서로 함께 비춰주니


가을빛은 온전히

석양 하늘에 모였네


小樓蕭灑面晴川, 嫋嫋西風掃暮煙. 碧水明霞兩相照, 秋光全在夕陽天.


다른 계절보다 가을 노을이 더 붉고 찬란한 까닭은 가을에 붉게 물들여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온 산천을 수놓는 단풍잎의 붉은색이 어디서 오겠는가? 저 저녁노을이 없으면 단풍이 물들지 못한다. 지금쯤 한창 무르익는 밤, 대추 빛깔도 거의 노을 물감에서 채색을 얻어온다. 특히 저녁 무렵 곱게 빛나는 주황색 감을 바라보면 알알이 스며든 노을빛에 황홀감이 느껴질 정도다. 억새 춤추는 산비탈 능금밭에는 반짝이는 능금 열매가 빨간 노을빛에 물들며 달콤한 가을 즙을 머금는다. 가을 저녁에 반짝이는 거리 네온사인까지도 노을빛을 닮는다. 아름다워라. 함께 손잡고 이 가을을 누리는 연인들 뺨에도 노을빛 살포시 내린다. 그들의 마음도 아마 붉게 물들 것이다. 노을은 가을빛 원천이다. 

  1. 연건동거사 2018.10.02 13:46 신고

    嫋嫋=요요


칠흑 같은 밤 삐죽히 새어나온 가로등에 비친 하늘 올려다 보니 황달 든 오동나무 이파리 하나와 그 치골이 유난하다.
벌레가 먹어 그런지, 혹 지난번 폭우에 골절한 여파인지는 알 수 없다. 세월이 그렇다고 본다. 또 하나를 묻고 갈 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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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gyeonggung Palace, Seoul

昌慶宮 / 창경궁 


Located in centural Seoul, South Korea, Changgyeong is one of palaces constructed by the Joseon kingdom. It was built in the mid-15th century by King Sejong for his father, Taejong. It was originally named "Suganggung," but it was renovated and enlarged in 1483 by King Seongjong, at which time it received its current name. Many structures were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the late 16th century. It was rebuilt by successive Joseon Kings but was once again largely destroyed by the Japanese in the early 20th century, but this time torn down methodically to make room for a modern park, a showplace for the empire, akin to Tokyo's Ueno Par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Japanese built a zoo, botanical garden, and museum on the site. After independence in 1945 and the turmoil and destruction of the 1950-53 Korean War, the zoo was restocked through donations of wealthy Korean and gifts from foreign zoos. In 1983 the zoo and botanical garden were relocated to what is today known as Seoul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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