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129)


산속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다(避暑山亭)


  송 조량파(趙良坡) / 김영문 選譯評


무성한 숲 깊은 곳

시원하거니


바위 틈 샘물 소리

흥취 돋우네


두건 높이 걸어놓고

편히 쉬는데


불볕 바람 어떻게

산장에 오리


茂林深處散淸凉, 石罅泉聲引興長. 高掛角巾舒嘯傲, 炎飆那得到山莊.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옛날보다 여름이 더워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옛날에도 여름은 불볕더위의 계절이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자는 임시로 시원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몸의 열기를 식히는 선비들의 피서법이었다. 정자 내부에 온돌 시설을 갖춰 겨울에도 거처가 가능하게 만든 곳도 있지맡 대부분의 정자는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한 임시 거처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 잡은 유명 누정(樓亭)에 올라보면 시원한 산바람과 청량한 계곡물이 자연 에어컨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냉매를 이용한 현대 에어컨보다 훨씬 상쾌하고 안락하다. 아름다운 산수와 청량한 공기를 단번에 즐길 수 있는 정자에 앉으면 그야말로 “삼정승 벼슬로도 이 강산 안 바꾸리(三公不換此江山)”란 시구가 저절로 읊어질 정도다. 실제로 곳곳의 유명 정자에는 시인묵객들의 시판이 줄줄이 걸려 있다. 쾌적한 자연 에어컨 속에서 관모를 벗어던지고 산천의 절경을 시로 읊고 있으면 불볕더위가 저 멀리로 물러날 것임에 틀림없다.


한시, 계절의 노래(128)


여지가(荔枝歌) 제2절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도성 유월 정오에

태양이 내리쬐니


불 땔 때처럼 시장 사람들

비오듯 땀 흘리네


얼음 팝니다 한 목소리

물 건너 들려오면


행인들은 먹지도 않고

마음과 눈이 열리네


帝城六月日卓午, 市人如炊汗如雨. 賣氷一聲隔水來, 行人未吃心眼開.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5일장에 가곤 했다. 우리 고향에서 읍내 장까지는 걸어서 20리 길이다. 중간에 하늘목재를 넘어야 하므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힘든 길을 따라 가면 평소에 먹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에는 ‘아이스케키’를 먹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 ‘아이스케키’를 먹을 때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혀가 살살 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20리 땡볕 길을 걸어 땀범벅으로 장마당에 들어설 때 멀리서 ‘아이스케키!’라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귀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대개 이런 추억 때문에 여름 얼음은 근대의 산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겨울 얼음을 갈무리하여 여름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은 매우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시경(詩經)·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이미 “섣달에 얼음을 꽝꽝 깨서, 정월에 얼음 창고에 넣네(二之日擊氷沖沖, 三之日納于凌陰)라 했으며, 『주례(周禮)·천관(天官)』 「능인(凌人)」에도 얼음을 관장하는 관리를 능인(凌人), 그 정책을 빙정(氷政)이라 한다고 했다. 『시경』의 내용은 무려 3천여 년 전, 『주례』의 내용은 2천5백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부여시대와 삼국시대부터 여름에 얼음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여름에 얼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개 왕족과 귀족이었다. 하지만 중국 당·송 이후로는 민간에서 겨울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파는 장사치들이 많아졌다. ‘아이스케키!’를 외치는 것처럼 ‘매빙(賣氷)’이라고 외쳤다. 얼음 이야기 하다 보니 갑자기 ‘아이스케키’가 먹고 싶어진다. 그 여름 장에 가기 위해 넘던 하늘목재는 지금도 잘 있을까?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