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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은 말총머리 스타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를 위한 대회였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당대 축구계를 호령한 이 스타는 이탈리아인으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불교도다. 이런 점에 주목해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이 축구스타를 불교 홍보에도 좀 써먹을 요량으로 초청을 하려 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리처드 기어. 늙을수록 섹시함을 더 풍기는 이 유명 헐리웃 스타는 양키로서 희한하게 불교도다. 열렬한 티벳 독립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 자본이 물밀듯이 흘러들어간 헐리웃 영화에서는 그 중국 자본 견제로 영화 출연이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바조나 리처드 기어가 생각보단 한국 불교계에서 그리 인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반색을 하고 반길 텐데, 실은 정반대였으니, 특히 바조의 경우 초청까지 하려다가 포기한 이유가 다름 아닌 그가 남방불교(혹은 티벳 불교)라 해서였다고 내가 기억한다. 내가 기억에만 의존해 쓰는 까닭에 혹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교시 부탁한다. 

그렇다면 왜 남방불교는 증오했는가?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불교계에 팽배한 한국불교=대승불교=좋은불교, 남방불교(혹은 티벳불교)=소승불교=나쁜불교라는 도식이 절대의 구분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 적 세계사를 배울 적에도 저런 도식으로 외웠다. 그래서 남방 소승불교는 아주 나쁜 불교인 줄로만 알았다. 

기원전후 무렵에 기성 불교교단의 부패상에 대한 개혁을 부르짖고 독립한 대승불교가 애초 그 출발에서 혁신성과 참신성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으니, 이는 기성 기독교에 칼을 들이댄 마르틴 루터의 프로테스탄티즘과 같다고 보아 대과가 없다. 그런 대승불교가 출발이 그랬다 해서, 그에서 비롯하는 후대 대승불교가 그렇다는 등식은 하늘에도 없고 땅에도 없다. 개신교 역시 루터나 쯔벵글리 혹은 위클리프 당시에는 개혁적이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시간이 흘러 이땅에 상륙한 이 개신교는 썩은 내 풀풀 풍기거니와, 명성교회 사태는 그 말류적 증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상대적이긴 하나, 시간이 흘러 어쩌다 보니, 그 본류가 지류보다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기도 하니, 기독교를 볼 적에 전반으로 보아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이 좀 깨끗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불교 역시 애초 출발은 개혁과 참신이었을 대승불교가 어찌하여 더 개판이 되어 걸핏하면 쌈박질이니, 그에 견주어 소승불교가 상대적으로 끼끗하게 보임은 어쩔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출가자들한테 시종일관 하루 한끼 식사에 그 식사는 시종일관 탁발로써 구하라고 했으며, 누구보다 그 자신이 그렇게 생활했다. 나 어릴 적에는 그런 전통이 희미하게 남아, 그 먹을 데 없는 우리 집에도 가끔 탁발승이 와서 밥과 반찬을 동냥하곤 했다. 요새 이러는 중이 없다. 탁발하는 중 안 본지 오래다. 물론 시대가 변해서 그리하기 곤란하다는 사실은 잘 안다. 

하지만 여전히 저 동남아 불교는 저 탁발 전통을 철저히 지킨다는 사실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스님을 공양하는 저 어린아이를 볼 적마다, 눈물이 난다. 

그런 남방 소승불교가 이제는 썩어빠진 한국 대승불교를 반추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 실제 쳐다볼 수록, 저 남방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에 훨씬 더 가깝더라. 

중들이여, 동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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