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목은이색4

왜 조선의 이데올로그들은 이색을 개망신 주었는가? 역성혁명에 동참도, 동의도 못한 목은 이색은 충신의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신왕조 개창에 죽음으로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는 나약한 지식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계에 차지하는 위치는 실로 막중해 이미 당대에 유학의 종장, 오야붕으로 통했다. 역성혁명 무렵 이색을 죽이라는 주장이 빗발쳤지만 이성계가 죽일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명분이었다. 죽여서 골치 아픈 지식인 한 명 처단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명분이 약했다. 여진족에 다름 없는 성계는 찬탈이란 오명을 두려워했다. 그 찬탈을 선양으로 미화하려면 목은이라는 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목은은 거부했다. 실로 소극적이었지만 그는 결코 찬동하지 않았다. 이런 그는 씁쓸히 고려가 패망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4년인가를 더 살다 생을 마감.. 2024. 2. 13.
폭우 속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묘와 신도비 2022.8.13(토) 아계 이산해 묘와 신도비 사실 나의 목적지는 청양 장곡사였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갈지 몰라, 마음 먹고 출발했으나 예산 대술면으로 들어서면서 ‘이산해 묘’ 문화재 안내판을 보고는 가는 길목이니 들렀다 가기로 했다. 천안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그 언저리 이남규 고택에 다다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이산해 묘 근처에 오니 비가 정말 폭우처럼 쏟아졌다. 결국 장곡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이산해 묘 답사로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날 충남 청양, 보령 등 호우경보였다고 한다. 사당 옆으로 이산해 묘 안내판이 있어 근처 묘가 있을 것 같은데, 폭우로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녀온 분들 블로그를 살펴보니 사당 옆으로 묘로 올라가는 .. 2022. 8. 15.
"네 놈 중국어가 나하추 중국어 같구나" 목은 이색은 외국어 습득 능력이 꽝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 이곡이 벼슬살이를 하는 연경燕京으로 유학가서 그쪽에서 삼년 정도 생활을 하고는 외국인 특별전형에도 합격했지만 말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은 좀 되고 외국생활이란 프리미엄이 붙으니 귀국 뒤에는 외교분야에서 맹활약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출세 수단이 된다. 원이 회복 불능으로 쇠미하고 남경에 기반을 둔 명 왕조가 개창하자 외교사절로 목은이 남경에 간다. 그를 면담한 무뢰배 출신 황제 주원장은 양다리 걸치기 하는 고려에 야마가 한껏 돌았다. 대뜸 욕찌꺼리 퍼붓고는 "네놈이 중국 유학을 했다니 중국말로 대답해 보라"니 목은이 몇 마디 떠듬거린 모양이다. 그걸 듣던 깡패 원장이가 목은을 다시 경멸한다. "네 놈 중국어는 나하추納哈出의 중국.. 2018. 2. 13.
이성계의 이색李穡 정치학 고려말 지성계 주류로 침투한 주자성리학은 그 태생이 반불교다. 실제 주자의 각종 어록엔 요즘 이단에 대한 극언을 서슴지 않는 한국사회의 개독 윤리와도 흡사하다. 하지만 이들이 옹립한 성계 이씨는 성리학과는 거리가 전연 멀었으니 첫째 공부를 안했으며 둘째 생평을 전장에서 말 위에서 보냈다. 더구나 그는 철두철미 고려인이다. 이건 여진족 계통이냐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에는 불교에 대한 증오가 거의 없다. 이들에겐 공자와 석가가 한몸이다. 부식 김씨가 그랬고 제현 이씨가 그러했으며 더구나 고려말 유학의 종장이라는 목은 역시 철두철미 석가의 재가 신도였다. 이는 석가를 증오한 소위 신지식인들에게 포박된 성계도 마찬가지라 망나니 아들 방원이한테 쫓겨난 뒤엔 회암사로 들어가 아주 중이 된 성계 역시.. 2018. 2. 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