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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稼亭集)》 제1권 잡저(雜著)에 실린 ‘절부(節婦) 조씨전(曺氏傳)’을 가정이 쓴 까닭은 그의 손녀사위가 마침 친구인 이유도 있거니와, 이를 통해 가문을 현창해 주려는 의도 역시 다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의 우리가 아래 텍스트를 그런 가정의 눈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절부전이 나로서는 몇 가지가 흥미롭거니와, 당시는 전란의 시대라, 그에서 어떤 여인이 겪은 참상이 무엇보다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이 절부전을 분석하면 수령현(遂寧縣) 사람인 조씨는 아마도 1265년에 출생해 가정이 저 글을 쓴 당시 77세라 했으니, 1341년까지는 생존이 확인된다. 아버지는 몽고 침략에 대비해 조정이 강화도로 옮겼다가 환국할 때 대위(隊尉)라는 군직에 있던 조자비(曺子丕)이니, 이 아비는 이듬해 삼별초 난 진압에 탐라로 출정했다가 신미년(1271) 겨울에 그곳에서 죽었다 했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어째 전사한 느낌이 있다. 

아비를 잃은 조씨는 13살에 대위 한보(韓甫)에게 출가하니 수령궁 녹사(壽寧宮錄事) 한광수(韓光秀) 아들이다. 이에서 조씨는 딸 하나를 낳는다. 한데 시아버지 한광수는 고려를 수중에 넣은 몽고 원 제국이 주도한 일본 원정에 동원되었으니, 신사년(1281, 충렬왕 7) 여름에 군중(軍中)에서 죽고 만다. 단순히 죽었다고만 해서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지만, 태풍에 휩쓸려 갔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조씨의 비극은 이에서 그치지 않아 신묘년(1291) 여름에는 남편 한보가 합단(哈丹)과의 전투에서 죽고 만다. 합단이란 원나라 반군(叛軍) 내안(乃顔) 수하였던 자로, 만주에서 반란했다가 원나라 장수 내만대(乃蠻帶)에게 몰려서 고려 동북변을 침입하니, 이는 다시금 고려 왕조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했으니, 친정아버지, 시아버지를 전쟁에 잃은 조씨는 남편마저 합단에 내주고 말았다. 

이 절부전에서 가정은 “내가 일찍이 중국에 가서 보니, 정절을 드러내려고 문려(門閭)에 정표(旌表)한 것이 서로 바라다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기에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괴이하게 생각되었다. 한데 삼가 살피니, 실제 정절은 없어도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더러 정절이라는 이름을 훔쳐 정역(征役)을 교묘히 피하고 있기 때문에, 조정에서 매양 찰관(察官)과 헌사(憲司)로 하여금 유사에게 사실을 확인하도록 문책하고 있었으니, 이를 통해서 인륜을 후하게 하고 풍속을 돈독히 하려는 조정의 아름다운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한다. 이 대목을 통해 우리는 절부가 탄생하는 통로 중 하나를 본다. 실제 정절과는 상관없이, 정절녀를 낳은 집안에는 군대 면제와 같은 특혜가 있었기 때문임을 안다. 가정이 말하는 이런 폐습이 비록 정도는 덜했겠지만, 고려 왕조 역시 그에 못지않았고, 조선왕조 들어서는 극성을 구가했다. 

원문과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6을 따랐지만, 몇 군데 어감을 살리고자 수정했음을 밝힌다. 

절부 조씨는 수령현(遂寧縣) 사람이다. 

지원(至元) 경오년(1270, 원종 11) 5월 26일에 충경왕(忠敬王)이 강화(江華)에서 송도(松都)로 환도할 적에 장군 홍문계(洪文系) 등이 나라를 그르친 권신을 죽이고 왕에게 정권을 반환했다. 6월 1일에 권신의 가병(家兵)인 신위(神衛) 등의 군대가 승화후(承化侯)를 옹립하고자 장차 반역을 도모하려 하면서,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신료와 군사들을 강제로 이끌고 항해하여 남쪽으로 떠나니 배가 앞뒤로 서로 이어졌다. 이때 조씨는 태어난 지 6년이 되었는데, 부친 대위(隊尉) 자비(子丕)를 따라 그 일행에 있었다. 적이 노정 중간쯤 이르렀을 때 거짓으로 관료를 배치하고는 재집(宰執)에서부터 장교(將校)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을 따르라고 위협하면서 유인했다. 당시에 자비는 지모(智謀)와 여력(膂力)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자급이 뛰어 올라 별장에 임명되었는데, 그가 계책을 세워 그곳에서 빠져나와 서울로 돌아왔다. 뒤에 적이 패망할 적에 부녀와 소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창칼에 희생되거나 바다에 빠져 죽고 나머지 생존한 사람들도 중국 군대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오직 자비와 같은 배를 탄 사람들만이 늙은이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온전히 살아났다. 자비는 돌아오자마자 또 관군에 소속되어 적을 공격하며 탐라(耽羅)까지 갔다가 신미년(1271) 겨울에 그곳에서 죽었다.

조씨는 13세에 대위 한보(韓甫)에게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시부(媤父)인 수령궁 녹사(壽寧宮錄事) 광수(光秀)는 일본을 동정(東征)했다가 신사년(1281, 충렬왕 7) 여름에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그리고 신묘년(1291) 여름에는 한보가 또 합단(哈丹)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죽었다. 조씨는 과부가 된 뒤에 언니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딸이 출가를 하자 그 딸에게 의탁했다. 한데 그 딸이 1남 1녀를 낳고 또 일찍 죽자 손녀에게 의탁해서 지금까지 산다.

조씨는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에 남편과 부친과 시아버지가 모두 전장터에서 잇따라 죽었다. 그리하여 과부로 지내는 50년 동안 길쌈이나 바느질 같은 부녀자 일을 밤낮으로 열심히 해서는 딸과 손자 손녀를 먹이고 입히며 살아갈 터전을 잃지 않게 하고, 그 밖에 손님을 접대하고 혼례를 거행하는 일이나 상례와 제례에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하곤 했다. 지금 이미 77세나 되었는데도 아직 탈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다 총명하고 지혜롭기까지 해서 적에게 사로잡혀 있을 당시 상황이라든가 근세의 치란, 혹은 사대부 집안 내력 등을 이야기할 때면 하나도 빠뜨리는 일이 없이 모두 기억한다.

내가 현재 거주는 데가 바로 조씨가 옛날에 살던 집이다. 마침 손녀사위가 전임 감찰 규정(監察糾正) 이양직(李養直)인데, 그는 나와 동년 수재(秀才)다. 그래서 내가 이에 대한 일을 매우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내가 일찍이 중국에 가서 보니, 정절을 드러내려 문려(門閭)에 정표(旌表)한 모습이 서로 바라다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기에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괴이하게 생각했다. 한데 삼가 살피니, 실제 정절은 없어도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더러 정절이라는 이름을 훔쳐 정역(征役)을 교묘히 피하기에, 조정에서 매양 찰관(察官)과 헌사(憲司)로 하여금 유사에게 사실을 확인하도록 문책하니, 이를 통해서 인륜을 후하게 하고 풍속을 돈독히 하려는 조정의 아름다운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가령 조씨 일이 중국 조정에 알려지게만 된다면, 장차 대서특필하여 간책에 성대히 전해짐은 물론이요 주려(州閭)에 정표하여 광채를 발하게 할 것이니, 어찌 끝내 이름이 파묻혀 없어지고 말도록 하겠는가.

사씨(史氏)는 말한다.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義)를 지킬 수 있어야 부인으로서의 도를 다하는 것이 된다. 조씨의 경우는 부친과 지아비가 모두 사직을 위한 전역(戰役)에 나아가서 전사하였고, 아들도 없이 묘년(妙年)에 과부가 된 뒤로 노년에 이르도록 절개를 지켰는데, 관에서 보살펴 주지도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았으니, 아, 슬픈 일이다. 그러나 오직 천도는 어긋나지 않는 법이니, 조씨가 건강한 몸으로 장수를 누리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節婦曺氏傅

節婦曺氏。遂寧縣人也。至元庚午五月廿六日。忠敬王自江華復都松京。時將軍洪文系等。誅權臣誤國者。用復政于王。六月初一日。權臣家兵神衛等軍。擁承化侯將圖不軌。乃驅臣僚軍士未及渡江者。航海而南。軸轤相接。曺生六歲。隨其父隊尉子丕在行中。賊至半塗。僞置官僚。自宰執至于將校。以誘其脇從。以丕有智謀膂力。超授別將。丕以計得脫還京。後賊敗。至婦女小兒死鋒鏑溺海水殆盡。餘爲天兵所虜去。惟丕同舟人。老幼皆全活。丕卽還。又隷官軍。攻賊至耽羅。辛未冬。死之。曺十三。適隊尉韓甫。生一女。其舅壽寧宮錄事光秀。東征日本。辛巳夏。死軍中。辛卯夏。甫又死哈丹兵。曺旣寡從姊。及其女子適人。乃從女。女生一男一女而又早死。則從孫女。居至今。曺未三十。夫父舅連歿戰陣間。寡居五十年。日夜勤女工。衣食女若孫。使不失所。而賓婚喪祭之用是給。年已七十七。猶康強無恙。性又聡慧。說在賊中時及近世治亂衣冠族姓事。歷歷無遺失。余所居卽曺氏舊宅。又孫女壻前監察糾正李養直。與余同年秀才。故聞其事甚詳。余甞游中國。見以貞節旌表門閭相望。初恠其多也。伏惟朝廷以無其節有其財。或冒名䂓避征役。每令察官憲司責問有司。乃知厚人倫敦風俗之美意也。使如曺氏得聞于朝。將大書特書溢於簡冊。光於州閭。豈終湮沒者哉。史氏曰。婦人守三從之義。斯盡其道矣。曺父與夫皆死社稷之役而無其子。妙年而寡。抱節至老。官不爲恤。人不見知。悲夫。惟天道不僣。宜其康強壽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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