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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긴한 개인 사정으로 하루 휴가를 내고는 지방을 다녀왔다. 출발에 앞서 페이스북 포스팅을 훑어보는데 중문학도 김영문 선생 포스팅에서 다음 글을 접했다. 


김용


***진융이 세상을 뜨다***

진융(金庸), 김용이 세상을 떠났다. 와룡생 등의 구무협지를 신무협지로 되살려 낸 소설가다. 내가 1997년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곳 대학원에 [진융소설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다. 담당교수는 옌자옌(嚴家炎)이었다. 이 분 강의의 특성은 꼼꼼하게 써온 강의안을 강단에 앉아서 아무 요동도 없이 읽는 것이었다. 나는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스펙터클을 기대했지만 옌자옌 선생님은 앉아서 노트를 읽는 외에 별다른 공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정한 고수의 풍모일까? 그러나 단 한 마디 언급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현대 작가는 누구일까? 루쉰이라고? 아니다. 진융이다. 중국 남녀노소를 통틀어 글을 아는 사람치고 진융을 읽지 않은 이는 없다."

아마 지금은 중국문학사에서도 진융에게 응분의 지면을 할애하는 듯하다. 1990년대 한때 진융 연구 붐이 일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옌자옌은 진융 무협지에 중화주의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 있고, 정파와 사파, 그 양분법 사이의 길을 개척했다고 언급했다. 진융 무협지를 꼼꼼하게 읽으리라 마음 먹은지 오래지만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삼가 진융 선생의 명복을 빈다.


진융이라 해서 첨엔 뭐가 했더랬다. 알고 보니 무협소설로 명성이 자자한 김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무엇보다 나는 김용이 아직 살아있었던가 의아스러웠다. 이미 일찌감치 고인이 되었겠거니 했더랬다. 나는 김용을 모른다. 그를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견주어 내가 조금 유별난 금지 벽이 있는데, 나는 무협지를 읽지 않았고, 만화도 거의 탐독한 적이 없다. 만화라고 해 봐야 대략 40여년 전 내가 다닌 국민학교로 배달된 유일한 신문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김삼의 '강가딘'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이라, 좀체 만화엔 정이 들지 않았다. 


무협지는 한때 읽어볼까 하고는 책방인지 어디에서 몇 권 빌려다가 시도하고는 나랑 전연 적성이 맞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내가 김용이 인상 깊은 까닭은 거의 모든 무협지 작자로 김용 이름을 단 까닭이었다. 그런갑다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이 김용을 새롭게 보게 된 일이 있었다. 


내가 만든 페이스북 기반 공부 겸 놀이모임으로 '문문文文'이라는 단체가 있거니와, '문헌과문물' 약칭이다. 이 단체는 잡탕성 모임이라, 지금은 그 활동성 기동성이 뜸해졌지만, 초창기 활약은 눈이 부셨으니, 이곳을 중심으로 공부 바람이 일어, 그 일환으로 중국어도 공부하자 해서 실제 중국어 강습이 있었다. 이 문문을 구성한 주축 그룹에 중문학도가 있으니, 개중 홍승직 선생은 그 초대 회장으로 일명 '바지회장'이었으니, 첫째, 실권이 없어서였고(실권은 총무인 내가 다 쥐었다), 둘째, 이 양반 걸음이 나보다 더 팔보였으니, 그런 폼새를 보면 영락없는 바지사장 맞다. 



김용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 냥반이 몇몇 문문회원을 꼬드겨 중국어 강독을 꽤 오래도록 무급으로 진행했으니, 그 강독 교재가 바로 김용의 무협지였다. 아마 《천룡팔부》 아니었나 한다. 나는 왜 이 냥반 무협지를 교재로 골랐는지 몰랐다. 나는 강습에 참여한 적이 없고, 대신 그날그날 오르는 교재 구절들을 보는 정도였다. 


한데 홍 선생이 올린 무협지 원문을 보니, 내가 놀래 자빠졌다. 그 문체가 그리 화려찬란한 줄 몰랐다. 내가 본 김용 문체는 이백과 두보를 종횡무진 인용하고, 소식을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왜 김용이 중화권에서, 그리고 국내 무협지 업계를 장악했는지, 그 이유를 희미하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글을 맛깔스럽게, 그러면서도 각종 고문古文을 그리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가 없었다. 김용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무협지를 손에 잡게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김용이 막연히 장풍 일으키며 산과 강을 건너다니며 싸우는 무림 고수들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한 일은 나로서는 분명 큰 수확이었다. 


한데 그런 김용이, 이미 죽은지 오래라고 막연히 생각한 그런 김용이 오늘 죽었다고 외신을 타고 들어온 모양이다. 김영문 선생 역시 그런 소식을 외신 혹은 외신을 인용한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 즈음한 단상을 저리 적은 것이리라. 


이에 이 소식을 접하곤 우리 문화부에서도 가만 있을 수는 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리하여 우리 공장 문화부로 연락을 넣어 우선 김용 타계가, 외신을 다루고 특파원 업무를 관장하는 국제부에서 나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 소식이 나갔다고 했다. 마침 우리 문학 담당 임미나 기자가 휴가인 관계로, 나는 출판에 새로 배정된 이승우 차장한데, 김용과 관련한 박스 기사를 하나 쓰되, 그의 작품 국내 번역 현황과 그에 대한 학계 전문가 평가를 곁들일 것을 주문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 그 전문가로 저 김영문 선생과 홍승직 선생 두 양반 연락처를 넘겨주면서, 김용이 중국 문단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간평을 받으라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낮 12시 무렵에 우리 공장 문화부에서 나간 기사가 다음 이승우 차장 박스 기사다. 


'무협 판타지 대가' 진융, 중국에선 셰익스피어급

2018-10-31 11:59

해박한 고전지식·유려한 문체…삼류통속 인식짙던 무협지를 대하문학 격상

80~90년대 우리나라 휩쓸던 홍콩 무협영화 원작 수두룩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무협 판타지의 거장 진융(金庸)은 14억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만화방, 대서소 등에 깔린 무협지의 원작자로 인식되는 등 저평가돼 있지만, 중국에서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

특히 대중적 인기 면에서는 중국 내에서 따라갈 작가가 없다. 중국출판과학연구소 전국 조사에서 진융은 바진(巴金), 루쉰(魯迅), 충야오(瓊瑤)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서사 구조가 중요한 소설 문학의 기본인 '재미'와 대중성에선 오래전부터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성과 문체까지도 중국 학계로부터 인정받았다. 해박한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요즘 유행하는 융합과 통섭의 글쓰기를 일찌감치 보여줬다.

특히 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는 2천년대 들어 중국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2007년엔 소설 '설산비호(雪山飛狐)'가 대문호 루쉰의 명저 '아큐정전(阿Q正傳)'을 밀어내고 베이징 내 고등학교 교과서 한편에 자리 잡았다.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작품은 문체와 작품성, 배경 사상 등이 교육적이고 모범적이면서 표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진융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것은 각계로부터 명실상부한 '국민 작가', '문장가'로 인정받는다는 방증이다.

홍승직 순천향대 중국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진융의 원문을 보면 문장이 매우 깔끔하고 모범적이어서 나무랄 데 없다"면서 "동서고금 해박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인용도 잘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또 "진융이 한국엔 통속 작가로 알려졌지만, 문장 자체는 '명문'이고 통속 소설의 위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덧붙였다.

지금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 중추 세력으로 자리 잡은 이른바 '86세대'는 진융 열풍을 이끌었던 주요 독자층이다.

86세대가 성장하던 시절 만화방에 가득 꽂힌 진융 무협지는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환상의 도피처였다.

'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로 구성된 대표작 '사조삼부곡'(국내에선 '영웅문'으로 번역 출간)를 비롯해 '녹정기', '소오강호' 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올드팬이 여전히 많다.

이들 작품은 80~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홍콩 무협 영화로 상당수 제작돼 무협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중국 무협 판타지 특유의 이야기 구조와 철학을 알렸다.

이런 영향은 우리 영화와 드라마, 광고, 대중문학 등에도 깊게 파고들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은 어린 시절 무협지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바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절정은 이소룡을 동경하는 주연 권상우가 쌍절권을 들고 악인(불량학생들)을 응징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내 학계 등에서 진융의 작품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엄숙주의'가 지배한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 무협 소설은 삼류 싸구려 취급을 받았고, 이런 풍토는 출판계에도 이어져 정식 출간이나 번역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진융의 무협 소설은 대만에서만 1천만부, 중국에서 1억부 이상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3억명의 독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출판업계에 제대로 된 통계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판계와 중국 문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진융 무협지는 해적판이 많이 출간됐고 번역자들도 실명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1985년 고려원이 진융 작품을 정식 출간할 때 참여한 공동 번역자들도 가명을 썼다. 당시엔 무협지가 정통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 쓰는 걸 부끄러워하고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분위기가 많이 바뀐 2007년엔 김영사가 진융의 주요 작품들을 새롭게 번역해 출간하고 그를 국내에 초청해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융 무협 소설 전체 판매고를 집계한 공식 통계는 없고 지금까지 수백만 부 이상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서점업계 관계자는 "아직 진융의 작품이 시중에서 절판되지는 않았지만, 워낙 절필을 일찍 한 분이라 이제는 통계를 내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거의 안 팔린다"고 했다.

leslie@yna.co.kr 


언제 짬이 나면 그의 무협지 하나 읽어보련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슬픈 법이다. 요새는 부쩍 더하거니와, 바다 건너 저편 어느 무협 대가의 죽음도 씁쓸하기만 하다. 

  1. 아파트담보 2018.11.01 23:12 신고

    그분이 돌아가셨군요. 할말은 많지만 한마디로 한국은 중국 홍콩 대만 일본에 비해 너무나 무협지 문화가 빈약하지요. 전혀 없다고 해야 할 지도.

  2. 한량 taeshik.kim 2018.11.01 23:30 신고

    무협지를 경시한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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