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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열고 사진기를 찾았다. 뿔싸 정작 카메라만 없더라. 렌즈만 잔뜩 쑤셔박아 왔더라.
낭패다. 오늘 아니면 다시 내년 가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은행나무 단풍은 그렇게 언제나 내 곁을 떠나갔다. 첫사랑처럼, 둘째 사랑처럼, 그리고 셋째사랑처럼 말이다.


뭐 어쩌겠는가? 이빨이 없으니 잇몸으로 때워야지 않겠는가? 다행히 근자 폰을 갤놋나인으로 교체하고, 몇번 시험 가동해 보니 그런대로 땜빵은 하더라.


성균관이다. 공자를 모신 학당이요 제전祭殿이다. 이곳에 터잡은 대학교가 굳이 이 이름을 택한 이유다. 한데 그 시작이 1398년이란다. 심한 뻥에 빙그레 웃어주자.

이곳 은행 단풍이 절정이라 해서 잠깐 짬을 냈더랬다.


불이 탄다. 입소문 났는지, 아니면 일욜 도심이라 그런지 많은 이가 몰려들어 단풍 구경 중이다. 연신 탄성을 지르고, 기념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 문묘가 이리도 각광받을 때가 있었던가?


홍단풍 지지 않을 세라, 노랑과 멱살잡이 한다. 내가 잘 났다 자랑질이다.
내 보기엔 어우러져 서로가 더 강렬한데 쌈박질은 뭐람?


그윽한 감상은 물건너갔다. 요란스레 기사가 날아든다. 간밤에 타계한 배우 신성일씨 빈소 관련 스케치 기사가 많다.

노랑물 발광하는 이 풍경이 그리 좋았을까?
행여 이 광경 아깝다 해서 더 버둥거리다 넋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지금의 서울 성균관대학교는 그 이름을 성균관에서 따왔다. 그런 까닭에 그 역사 전통 또한 조선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 구하기도 하거니와, 하지만 이는 역사를 늘리기 위한 엿가락 조작의 결과이니, 이런 논리대로라면, 그런 국립대학이 모름지기 조선시대이겠는가? 고려시대에도 그런 학교가 있었고, 신라시대에도 그 원조로써 국학(國學)이 있었으며, 그것을 더욱 거슬러가면 고구려 소수림왕 때 국학으로 역시 뿌리를 구할 수 있거니와, 하지만 뿐이랴? 그 뿌리 역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으로 쳐들어가니, 성균관은 공자를 시조로 삼거니와, 공자학단 그 자체가 곧 성균관인 셈이다. 

지금은 삼성그룹으로 재단이 넘어간 성균관대학은 그 직접 뿌리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있으니, 이때 저명한 유학자 출신 꼬장꼬장한 독립운동가 문존 김창숙(金昌淑·1879∼1962)이 주도한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에서 역사를 시작한다. 이런 까닭에 건학 이념 역시 유교가 내세우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거니와, 마침 그 캠퍼스 위치 역시 조선시대 문묘와 성균관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이 대학 정문에는 문묘가 있으니, 문묘(文廟)란 문성공을 모신 사당과 학교를 말함이니, 문성공이란 곧 공자를 말한다. 이는 모든 불교사찰이 석가모니 싯타르타를 교주로 삼고, 모든 교회 성당이 예수를 근원으로 삼는 이치랑 같다. 

공자를 교주로 삼은 조선시대 모든 학교는 교육기관이라는 기능과 더불어 그것을 있게한 뿌리로서의 공자를 기리는 사당을 항상 갖추게 되거니와, 공자를 필두로 하는 유교의 성인들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는 때마다 제향을 거행하는 공간을 대성전(大成殿)이라 하거니와, 이것이 불교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를 봉안한 대웅전(大雄殿)에 해당한다. 대성大成이란 글자 그대로는 크게 이룬 사람이니, 이것이불교로 가면 대각大覺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성 도동서원 은행나무>

공자를 시조로 삼는 학교로 같은 국립대학으로 서울에 있는 대성전 말고도, 지방 주요 거점 도시에는 모름지기 있는 공립학교로 향교(鄕校)가 있고, 이런 국공립에 대비되어 사립학교로 서원이 있다. 항교 역시 그 운영주체만 중앙정부에 대비한 지방정부라는 점만 달라 실은 일란성쌍둥이를 방불하거니와, 그런 까닭에 향교에도 반드시 대성전이 있기 마련이다. 

서원은 공자의 가르침을 봉행하는 학교 겸 사당이라는 점에서는 하등 이들 국공립대학과 다른 점이 없으나, 그래도 결정적으로 갈 길을 달리하는 대목이 공자 대신 그 재단 이사장 혹은 창업주로써 그것을 있게 한 다른 성현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퇴계 이황이 개창한 사립학교에서 역사를 시작하는 안동 도산서원은 당연히 그 제향 공간에 퇴계를 모시며, 율곡 이이가 일으킨 파주 자인서원은 당연히 율곡을 제향한다. 

성균관이건 향교건, 그리고 서원이건 이들 시설에는 모름지기 그 앞마당 같은 데서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를 발견할 수 있거니와, 이들 중에서도 특히 역사가 오래된 것들은 상당수가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 유학의 교육시설 겸 제단에는 모름지기 은행나무가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공자의 가르침을 베푸는 전당을 행단(杏壇)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행단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는 은행나무가 우거진 단상이라는 뜻이다. 실제 공자가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는지는 《논어》나 《맹자》, 《순자》 혹은 《예기》와 같은 소위 유가 문헌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다소 뜻밖에도 공자가 제자들을 행단에서 교육했다는 뿌리는 유가와는 시종일관 사생결단식 패권 쟁투를 벌인 도가계 문헌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장자》에 있다. 

이 《장자莊子》 현존본은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雜篇)의 3부로 구성되거니와, 이는 위진남북조시대 저명한 도가 사상가인 곽상이라는 사람이 그때까지 전해지던 다양한 《장자》 판본들을 결집하면서 갖춘 모습이거니와, 그 전 시대 《장자》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하나 확실한 점은 지금의 3부 체계는 곽상이라는 사람이 손댄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 3부작 중 마지막 잡편에 어부(漁父)라는 타이틀을 단 우화 모음집이 있다. 다음은 개중 한 대목과 그에 대한 옮김이다.  

孔子遊乎緇帷之林, 司馬云:“黑林名也.” 休坐乎杏壇之上. 司馬云:“澤中高處也.”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奏曲未半. 有漁父者下船而來, 須眉交白, 被髮揄袂, 行原以上, 距陸而止, 左手據膝, 右手持頤以聽.

공자가 치유지림(緇帷之林·司馬가 이르기를 “흑림黑林의 이름이다”고 했다)에서 노닐다가 행단(杏壇·司馬가 이르기를 “연못 가운데 높은 곳이다”고 했다) 위에서 앉아 쉬고 있는데, 제자들은 독서하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거문고를 탔다. 연주하는 곡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부(漁父)가 배에서 내려 다가오는데, 구레나룻과 눈썹이 모두 하얕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소매를 휘젓고는 언덕(늪지대)을 걸어올라 뭍에 이르러 멈춰서는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대목 몇 구절을 주석한다. 

치유림(緇帷之林) : 치유(緇惟)와 같다. 결국 치유림이란 숲이 휘장처럼 펼쳐져 어두운 곳을 말한다. 成玄英은 “숲이 울창하여 해를 가려 음침하고 잎사귀가 펼쳐지고 가지가 드리워져 마치 휘장과 같기 때문에 緇帷之林이라 했다”고 했다. 陸德明은 惟에 대하여 “어떤 판본에는 帷로 되어 있다”(本或作帷)라고 했다. 惟와 帷는 가차로 보는 편이 좋다.

행단(杏壇) :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공자 후손에 그곳에 단(壇)을 만들어 杏을 심고 비석을 세웠다는 견해가 있는데 뒤에는 학문을 가리치는 곳의 범칭이 되었다. 또 도사가 수련하는 곳을 행단이라고도 한다.

수미교백(須眉交白) : 판본에 따라 鬚로 된 곳도 있다. 구레나룻을 말한다. 交는 皎를 말하니 결국 희다는 뜻이다. 판본에 따라 이렇게 표기하기도 한다.

피발유몌(被髮揄袂) : 揄(유)란 끌다, 휘두르다, 휘젓다는 뜻이다.

행원이상 거륙이지(行原以上, 距陸而止) : 《이아爾雅》·〈석지(釋地)〉에 이르기를 “넓고 평평한 곳을 원(原)이라 하고, 높고 편평한 곳을 륙(陸)이라 한다”(廣平曰原, 高平曰陸)고 했다. 이로 보아 原보다 陸이 높은 곳으로 인식됐다. 강가에 올랐다가 더 높은 언덕에 오른 것으로 봐야 한다. 距를 ‘至’로 풀이한다. 

공자의 가르침을 전수한다는 전당에다가 은행나무를 심은 뿌리는 바로 이 구절에 있다. 한데 그의 전당을 행단이라 했지만, 杏이 은행나무인가 아니면 살구나무인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된다. 杏은 은행나무라는 뜻과 더불어 살구나무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서 빚어진 막대한 논란은 추후 별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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