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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3

연애결혼으로 들어온 며느리를 싫어한 시아버지 고려 문종 사위 사랑은 장모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고려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군주 문종文宗(1019~1083, 재위 1046~1083)은 그렇지 못했다. 권88, 열전1, 후비1, 순종順宗(1047~1083, 재위 1083년 7~10월) 후비 선희왕후宣禧王后 김씨金氏 조를 보자. 순종은 문종 아들이다. 선희왕후 김씨는 경주인慶州人으로 대경大卿 김양검金良儉의 딸이다. 순종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 궁에 뽑혀 들어가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문종文宗이 미워하여 칙서[勑]를 내려 궁궐 바깥의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그런 까닭으로 끝내 자식이 없었다. 연복궁주延福宮主라 불리었고, 인종仁宗 4년(1126) 2월에 죽자 선희왕후라고 추시追諡하였다. 태자가 좋아해서 들인 아내를 시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 2024. 1. 14.
아버지들이여, 제때 죽어주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이름대로 백수를 했다. 그의 아들로 세자는 조다(助多). 아버지가 무려 왕위에만 79년간 있다 죽었을 때 조다는 죽고 없었다. 조다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문자명왕이다. 아버지가 하도 왕 노릇 오래하는 바람에 먼저 죽었으니 이름 그대로 쪼다가 되어 버렸다. 그보단 못하지만 조선 세종 역시 장장 32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아버지가 재위 3년째인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세종은 모든 실권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그대로 두어야 했다. 그러니 세종이 왕위에 재위한 기간과 문종이 세자로 있은 기간은 같다. 내가 놀랍기만 한 것은 이 긴 기간 문종이 내리 죽죽 세자로 있었다는 점이다. 세자나 태자 생활은 왕보다 더 힘들다. 언제건 틈만 나면.. 2018. 3. 13.
찬탈과 양위, 그 시소게임 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그건을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 201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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