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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자욱한 서울>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지만, 역사를 통괄하면 이런 일이 비일하고 비재했다. 연례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 과연 요즘 미세먼지 원인이라 지목하는 것들이 타당성을 지녔는지 아닌지는 심각한 성찰을 요한다. 주로 산업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듯하니, 이런 진단에 따라 차량 매연이 주범이라 해서 자동차 부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글쎄, 그럴까? 자동차가 없던 그 시절 토우(土雨), 다시 말해 흙비가 내리는 현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각중에 궁금하다. 


2002.03.22 16:36:43 

<“역신을 베자 황사가 그쳤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초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사」 제131권에는 조일신(趙日新)이라는 인물의 전기가 실려 있다. ‘반역’이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사 편찬자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아니다.

    본관이 평양이고 처음 이름이 흥문(興問)인 조일신은 찬성사를 지낸 조위(趙瑋)의 아들. 공민왕이 세자 때 원나라에 갈 때 시종(侍從)했으며 공민왕이 환국해 즉위하자 찬성사(贊成事)가 되었고, 이듬해 1등공신에 책록됐다.

    그는 이런 위세를 발판으로 왕을 설득해 정방(政房)을 복구하고 도평의록사(都評議錄事) 김덕린(金德麟) 등을 제거했다. 이 공으로 삼사판사(三司判事)가 되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봉됐으며 원에 빌붙어 정권을 농단하던 기철(奇轍).기원(奇轅) 일파를 습격해 이 중 기원을 살해했다. 

    조일신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왕을 협박해 자기는 우정승(右政丞)이 되고 정천기(鄭天起)를 비롯한 일당을 요직에 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수를 동지들에게 겨누어 함께 거사했던 장승량(張升亮) 등을 참수한 다음 정천기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투옥시키고, 스스로 좌정승 겸 찬화안사공신(贊化安社功臣)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공민왕의 밀지를 받은 삼사좌사(三司左使) 이인복(李仁復)과 김첨수(金添壽)에게 참살당하고 만다.

    이 대목을 「고려사」 조일신 열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때 여러 날 흐리고 흙비(雨土)가 오더니 조일신을 베어버리자 날씨가 갰다.”

    여기서 ‘흙비’란 실제 비가 아니라, 요즘 말하는 황사(黃沙)를 가리킨다.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중국 고비사막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 반역자 조일신이 날뛰는데 대한 하늘의 재앙으로 생각됐음을 알 수가 있다.

    「고려사」 전체를 검색하면 이와 같은 흙비 기록이 더러 나온다. 권제55는 오행(五行)의 토(土)에 해당하는 흙비와 관련된 사건만을 모아놓은 것인데, 이에 따르면 현종 9년(1018) 2월과 4월 이래 고려 멸망 때까지 모두 30여 차례에 달하는 황사 출현이 언급돼 있다.

    황사는 예나 지금이나 연례행사였을 것인데, 황사현상 중에서도 조일신 처단과 같은 정치성이 농후한 경우에 한해 기록이 남았음을 알 수 있다.

    분량이 「고려사」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삼국사기」에도 신라 아달라왕 21년(174) 봄 2월 이후 모두 6차례 황사 출현이 보고되고 있다.

    백제 무왕 재위 7년(606)조를 보면 “봄 3월에 서울(王都)에 흙이 비처럼 내려 낮인데도 어두웠다”고 하고 있다.

    신라 진평왕 49년(627) 봄 3월에는 황사현상이 아주 심각했던 듯 “큰 바람이 불고 흙이 비처럼 닷새 넘게 내렸다”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기록이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비할 바 없이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경우는 황사 출현 관련 기록만 전부 모아도 「삼국사기」 분량을 초과할 것이다.

    황사와 같은 기상이변이 일어날 때마다 왕은 하늘의 재앙이라 생각해서 죄수를 사면하는 일 따위를 했다. 왜일까? 왕은 천명(天命)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황사와 같은 기상이변을 천명의 변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왕이 시행한 죄수 사면과 같은 행위를 “하늘을 두려워한 우리 선조들의 경외심” 따위로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데, 이제는 달리 보아야 한다. 스스로 왕위를 지키기 위한 제스처이자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taeshik@yna.co.kr 

(끝)



<그제 서울의 미세먼지>


내가 20여년 전 기상청 출입기자인 시절에는 미세먼지라는 기상 용어는 없었다. 그때는 모두 '황사(黃沙)'라 했으며, 그 진원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중국발 사막모래였다. 고비사막에서 황사가 발생해 편서풍을 타고는 한반도로 날아든다 해서, 그런 고비사막을 초원과 수풀로 만들겠다 해서, 현지로 가서 사방공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황사가 어느 순간 '미세먼지'라는 말로 교체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그것으로도 부족함인지 '초미세먼지'라는 말로 대체되는 장면을 목도한다. 나아가 중국발 황사도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더니, 그 원인 중 하나로 전락하고, 다른 발생 원인을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명칭이야 무엇이건 '흙비'라는 검색어로 내가 과거에 송고한 기사 내역을 뽑아봤더니 2건이 걸러거니와, 아래 첨부하는 기사는 그 첫번째다. 2001년이니, 당시는 학술과 문화재 담당이었던 시절이라, 아마 그런 인연으로 잘난 체 해 본다 해서 긁적거리지 않았다 해 본다. 


2001.03.07 10:03:09 

<신라 진평왕 때의 황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기전 57년 시조 혁거세의 건국 이래 서기 935년 경순왕 김부가 나라를 통째로 들어 왕건에게 바치기까지 천년 왕조를 지탱한  신라 56왕중 제26대 진평왕(眞平王)은 재위 기간이 아주 길다.

    재위 전 이름이 백정(白淨)인 김진평은 서기 579년 작은 아버지인 제27대  진지왕(眞智王)이 재위 4년만에 정치를 어지럽히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위되면서  추대받아 무려 54년간 왕으로 있다가 서기 632년 사망한다.

    조선 왕조 27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간 재위한 영조보다도  진평은 더 오래 왕 노릇을 했다. 신라왕들 가운데 그보다 더 긴  재위기간을  기록한 이는 13세에 등극해 61년간 재위한 박혁거세(BC 57-AD 4년)가 유일하다.

    신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히는 제24대 진흥왕(眞興王)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동륜(銅輪)과 금륜(金輪)이 그들이었다. 이중 동륜은 태자로  책봉됐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동생 금륜이 즉위하니 이가 진지왕이다.

    기록에는 동륜이 언제, 어떤 까닭으로 죽게 되었는지가 밝혀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됨으로써 동륜은 밤마다 어색(漁色), 즉 여자 낚시질을 하러 다니다 어느날 밤 사나운 개한테 물려 죽은 것으로 비로소 밝혀졌다.

    진평은 바로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자동차 유리에 앉은 미세먼지>


    그런데 당나라 초에 완성된 중국 역사서인 「양서」(梁書)라는  책에서  신라에 대한 기록인 '신라전'을 보면 진평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처럼 신라 제26대가 아닌 제30대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두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중국 기록이 잘못됐거나 실제 그가 30대  왕이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한국측 기록의 신라 왕위계승표에서 4명의  왕이  탈락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아마도 후자쪽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한국사학계는 대체로 신라 상대 왕위계승표에 없던 왕이 들어가 붙었고, 그래서 신라 역사 또한 실제보다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고 보고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있던 왕들조차 탈락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양서」 '신라전' 기록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어떻든 긴 재위기간만큼이나 진평왕 시대 신라에는 실로 많은 일이 있었다.  「삼국사기」 진평왕조 기록을 보면 이 즈음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내내  시달렸음이 드러난다. 

    이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이 물려준 강대한 신라를 넘겨받았으며 한강 유역을 상실한 백제와 고구려는 절치부심 신라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평왕 재위 당시 사건 중에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황사 현상이다.

    재위 49년째인 서기 627년 음력 3월 대목에 「삼국사기」는 "큰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는데 5일 동안 계속됐다"(春三月 大風雨土 過五日)고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흙비, 즉 우토(雨土)가 지금의 황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로 보아 황사현상은 적어도 1천400년 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것은 황사가 발생한 때가 봄 3월이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황사가 대체로 봄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전체 기록이 워낙 간략하기 때문인 듯 황사 현상이 남아있는 대목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분명 연례행사였을 황사가 유독 진평왕 대목에 특별히 언급돼 있는 것은 기록처럼 무려 5일이나 계속됐기 때문이었으리라.

    7일 현재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올해 황사현상과 천 수백년 전 신라 진평왕 당시 황사는 분명 닮아 있다. 다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인들이 이런 황사를 쏟아내는 중국을 원망하는 반면 신라인들은 하늘의 재앙을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taeshik@yonhapnews.net 

(끝)


*** 기사 본문에 인용한 "큰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는데 5일 동안 계속됐다"(春三月 大風雨土 過五日)는 "흙비가 닷새를 넘겨 계속됐다"고 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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