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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이면서 미국 워싱턴 D.C. 소재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프리어갤러리(The Freer Gallery of Art) 창립자이다.


1854년 뉴욕주 킹스턴Kingston에서 태어난 그는 14살에 학교를 떠나 시멘트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다가 철도회사에 회계원으로 들어갔다. 26살 때인 1880년 디트로이트에 정착한 프리어는 그곳에서 철도 차량 제작업체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모았다. 20세기 벽두가 되면서 사업에서 은퇴한 뒤에는 여생을 아시아 미술과 미학운동(The Aesthetic Movement)의 미국 미술품 수집에 열을 투신했다. 그의 포부를 그 자신은 “다양한 시기에 제작되어, 여러 양상으로 서로 조화롭게 연계된 미술품을 한데 모으는 것”(to gather together objects of ars covering various periods of production, all of which are harmonious and allied in many way)라고 말했다. 그의 컬렉션 가치에 대해 프리어 자신은 “미(美)의 높은 이상을 증진하는 일”(the promotion fo high ideals of beauty)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렇게 모은 컬렉션을 프리어는 미국정부에 기증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따라 스미소니언박물관은 프리어와 몇 차례 협상을 거치고 당시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선 아래 프리어 컬렉션을 인수한다. 다만, 프리어는 그 생전에는 소유권은 여전히 자신이 갖기로 했다. 이에 따른다면 프리어는 생전에는 ‘기탁’ 형식으로 컬렉션을 넘겨준 것이며, 그 자신의 사망과 더불어 ‘기증’을 한 셈이다. 이런 협정에 따라 프리어는 계속 그의 컬렉션을 늘려갔다. 그 결과 기증 당시 2천500점인 컬렉션은 그가 사망한 1919년에는 거의 네 배로 늘어났다. 사망 직전 프리어는 유언장을 변경해 그의 컬렉션에 추후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수집하는 아시아 및 극동 미술품을 보강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프리어 캘러리는 꾸준히 소장품을 늘리게 됐다. 프리어 갤러리는 1923년 찰스 애덤스 플랏(Charles Adams Platt)이 설계해 1923년에 문을 열었다. 


이상 그의 생애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발행한 《Korean Art in the Freer and Sackler Galleries》, 2012, 13~14쪽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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