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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보니 고려가요 중에서도 〈동동動動〉이 출전이다. 1년 한 해 농사 과정을 달마다 나누어 그 풍광을 노래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형식을 빌리되, 시종일관해서는 남자한테 버림 받은 여인네 궁색한 처지를 노래한 패로디 시문학으로, 그 6월 조가 다음이라.  


19
六月(유월)ㅅ 보로매 아으 별해 룐 빗 다호라.
20
도라보실 니믈 젹곰 좃니노이다.
21
아으 動動다리.


이에서 말한 6월 세시풍속은 그달 보름에 해당하는 유두(流頭)라, 이날은 각종 산해진미 차려 산간 폭포나 동쪽으로 흐르는 시내로 가서는 머리를 감고 액(厄)을 씻어 버리고는 놀이를 한판 벌이곤 했다. 한데 이 한자 표기가 묘해서 글자 그대로는 대가리를 물에다가 흘려버린다는 뜻이어니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 했다고 하니, 이에서 유두는 결국 흐르는 물에다가 머리를 감는 의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머리를 감지 않았는가? 내가 알기로 자주 감지는 못했다. 하긴 내가 어릴 적 시절을 기억해도, 여름철이나 시내로 걸핏하면 튀어나가 멱을 감았지만, 겨울은 참말로 지랄맞아, 한달에 한번 꼴로 목욕을 할까 말까 했다. 그 방법을 볼짝시면, 그땐 집집마다 대개 소 한 마리를 키울 때라, 이 소가 여물을 엄청 쳐먹어대거니와, 아침 저녁으로는 쇠죽을 끓어바쳐야 했으며, 점심 무렵에는 짚가리 등을 던져주었다고 기억한다. 

이 쇠죽을 끓여 그것을 구유에 퍼주고 나면, 그 가마솥에는 맹물을 붓거니와, 남은 불씨를 이용하거나, 불을 조금 더 때고 나면 물이 데펴지니, 그 데핀 물 가마솥에다가 그대로 발을 한참 담가놓고는 불린 때를 벗겨내고, 아울러 고양이 소나기 잠깐 맞듯, 물을 온몸에 퍼부어 샤워 흉내를 내곤 했던 것이다. 

한데 저 동동이 말하는 유두는 음력 6월 한복판이라, 양력으로 보면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라, 그 시대에 변변찮은 샴푸나 비누가 있을리 만무하고, 창포 기름 등등으로 땜질을 했으니, 그 머리감기 수준이 지금 눈으로 보면, 그리 온전치는 못하다 할 것이다. 

평소에 머리를 감지 않으면, 도대체 그 불결을 어찌 견뎠는가?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해서, 머리카락 자르는 일은 엄두에도 내기 힘든 당시, 자주 감지 않은 머리는 서케와 이가 들끓는 온상이었으니, 그에다가 비듬과 부스럼까지 범벅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 참상에 몸이 더욱 움찔한다. 내가 그리 자신하는 까닭은 어린 시절 내 모습이기도 한 까닭이다. 

머리를 거의 감지 않는 대신, 서케와 이를 발라내고, 비듬을 걸러내는 기구로 대신했으니, 그것이 바로 참빛이다. 이 참빛으로 그 긴 엉킨 머리카락을 빚곤 했으니, 그것은 전통시대 샴푸였고 비누였다. 

다시 저 동동으로 돌아가, 남자한테 버림받은 여인이 그 신세를 읊기를 '별헤 바린 빗 다호라'라 하거니와, 이를 풀면 '벼랑에 버린 빗 신세구나'라는 뜻이다. 벼랑을 저 시절엔 별이라 했지만, 이는 이른바 ㅎ곡용 명사라, 그리하여 장소를 의미하는 조사 '에'가 '헤'가 된 까닭이거니와, 바린이란 '버린'이란 뜻이고, 빗은 참빛이고, 다호라는 답다는 현대 한국어에도 그 편린을 남긴다. 

저 시대 유두 풍습과 그 시대 건강 양태, 특히 머리 감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면, 우리는 비로소 왜 저 노래가 6월 항목에다가 자신의 신세를 저리 견주었는지를 감지하게 된다. 저 구절을 풀이하는 자 일부가 유두날에는 빗을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 구절이 있지만, 이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저에서 말하는 빗이란 쓰임을 다해서 던져버린 빗을 말한다. 

참빗도 쓰다 보면, 몽당 연필 신세랑 같아져, 더는 서케나 이를 잡을 수도 없고, 비듬을 발라낼 수도 없다. 저날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빗질을 하다 보면, 그 쓰임을 다해 버려지는 빗이 많았다. 그렇게 버린 빗이 냇물을 타고 흘러내려가다 강안 언덕 바위에 걸렸으니, 그 모습이 유독 남자한테 버림 받은 여인한테는 그것이 곧 자기 신세로 치환되었던 것이니, 이른바 감정이입이 일어난 것이다. 저 발상이 하도 기묘해, 나는 언제나 저 구절을 읊조리곤 한다. 

어제 이른 아침 출근길에 저 폐기물 가구와 마주쳤다. 살피니 가죽의자는 아닌 듯하고, 합성수지로 입힌 의자 같은 데, 곳곳이 헐었다. 마침 새 가구를 들였는지, 아니면, 주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지, 더는 쓸모가 없다 해서 버렸을 것이로대, 나 역시 잠시간 감정이입이 일어났다. 

사람 관계는 언제나 파탄에 열렸으니, 이 파탄이 주는 고통은 그 관계가 밀접할수록 더욱 크기 마련이다. 내가 늘 말하듯이 배신은 측근의 특권이다. 오직 측근만이 배신이 가능하다. 상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 혹은 이렇다 할 유의미한 정보가 없는데, 무슨 배신을 한단 말인가? 그 파탄 혹은 배신이 주는 고통으로 부부 혹은 연인만한 것이 없다. 

근자 가수 겸 배우 구하라 사건이 인구에 회자하거니와, 이들 사이에 쌍방 폭행이 일어나고,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이른바 성관계 동영상이 촬영되었으며, 이를 두고 협박이 오간 것으로 알려진다. 내가 참말로 안타까운 점은 저들이 한때는 너 없음 내가 죽을 것이라고 사족을 쓰지 못했을 연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런 파단은 언제나 원망을 부르는 법이다. 그 원망이 때로는 살인까지 이른다. 이 땅의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항용 통용하는 위로가 "그 놈은 발뻗고 못잘 것이다"는 말이지만, 실상은 전연 딴판이라, 내가 보니 차버린 년과 놈은 발뻗고 자는데, 버림 받은 년과 놈은 전연 그러지 못해 불면의 밤을 지새우기 마련이다. 

파탄은 언제나 원망을 부르고, 그 원망은 또 언제나 그 파탄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기 마련이라, 말로야 성격이 맞지 않아서, 혹은 내가 잘못해서라고 하지만, 어디 속내야 그런가? 오직 너가 잘못해서, 이리 되었다고 하기 마련이다. 이를 방어기제가 작동해서라고 할지 모르거니와, 원망만큼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을 아직 발견할 수 없다. 그 이글거리는 원망의 눈길과 말투를 마주하는 일 역시 고통 중의 상고통이다. 

쓰임을 다하면 버려지는 법이며, 버려져야 한다. 쓰임을 다했는데도 버려지지 않으니, 그에서 원성과 협박과 폭력과 살인이 싹을 틔운다. 물론 내가 이런 공자 말씀 석가모니 말씀 되뇌인다 해서, 내가 그렇게 인격완성체는 아니다. 나 역시 저와 하등 진배없거니와, 뭐 그렇다고 해서, 저렇다는 말까지 할 수 없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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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sabu 2018.10.06 20:55 신고

    근자에 민망스런 가십도 이토록 픔위있는 고전으로 풀어주시니 과연 역사문화도서관이라 하겠습니다.



권위dignity 혹은 authority는 신비神秘와 미지未知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내가 저 친구한테 군림하려면 그 절대조건 중 하나가 저 친구는 나를 잘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저 친구는 몰라야 한다. 반면 나는 내가 부리거나 부리고자 하는 사람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뚤어야 한다. 특히 군주는 신하에 대해 그러해야 한다. 


이것이 고대 중국의 정치학 흐름 중 하나인 소위 황로학黃老學을 관통하는 군주론의 핵심이다. 노자를 핵심으로 삼는 그 철학이다. 황로학은 이런 식으로 군주가 신하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신하들은 군주를 향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충성 경쟁을 벌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통치술을 대체로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통령 시절 노무현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아다시피 그는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나 강렬하게 자기 의지와 생각을 드러냈으며, 때로는 그 방식이 천박했다. 그리하여 황로학에 기댈 때는 그는 말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저와 같은 황로학은 군주한테만 좋은 일이었다. 한발 물러서 내가 신하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군주에게 언제까지나 충성을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답답함이 치민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 불신은 이리 해서 생겨난다. 그리하여 둘은 서서히 알력하며 삐꺽거리는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이 상태가 되어 군주는 신하를 향해 날 믿으라 하지 않았냐 협박하고 신하는 또 신하대로 도대체 무얼 믿으라는 겁니까 라고 항변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 싸움이 늘 비극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신하가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군주를 떠나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일이 쉽지도 않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혹은 인연 모두가 군주를 중심으로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옴짝달짝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간혹 반란과 쿠데타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용기도 없으며, 동조 세력도 없다. 더러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이는 극단이요 대체로 그에겐 실상 군주에 맞설 무기가 없다.


그리하여 신하는 하염없이 당할 뿐이요 만신창이가 된다. 또 그리하여 마침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국이 오기도 한다.



실제 황로학이 흥성하던 시대 중국사를 보면 다 이러했다. 철혈재상 상앙은 결국엔 사지가 찢겼으며 한비자는 목이 달아나고 이사 역시 그러했다. 한나라를 호령한 혹리는 다 죽음이 비참했다. 이들은 그 자신이 황로학 신봉자였지만 그들보다 더 황로학에 철저했던 군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살아보니 첫째도 둘째도 믿음이 알파요 오메가더라. 믿음은 믿어라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 배려다. 그것도 끊임없는 배려다. 그건 따뜻함이다. 손과 손이 맞닿을 때 느끼는 그 따뜻함이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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