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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정안 밤나무>


고려말 문사 백문보(白文寶)와 같은 해에 급제한 윤택(尹澤)이라는 사람은 유난히 밤나무를 사랑한 모양이다. 새로 이사하는 집마다 밤나무를 심었으니, 그리하여 당호堂號 또한 밤나무 정자라 해서 율정栗亭이라 할 지경이었다. 당호를 그리 정하니 친구인 백문보가 이를 기념하는 글을 썼다. 이름하여 '율정설栗亭說'이 그것이니, 이에서 백문보가 읊기를, 


일찍이 (택이가) 나에게 말하기를 '봄이면 가지가 성글어서 가지 사이로 꽃이 서로 비치고, 여름이면 잎이 우거져서 그 그늘에서 쉴 수 있으며, 가을이면 밤이 맛이 들어 내 입에 가득 채울 만하며, 겨울이면 껍질을 모아 내 아궁이에 불을 땐다네. 나는 이 때문에 밤나무를 고른다네'라고 했다. (원주용 옮김, 김혜원 교점 담암일집淡庵逸集, 한국고전번역원, 2012.12, pp 118~119) 


라 했으니, 이에서 내 눈길이 가는 곳은 밤송이로 불을 땠다는 점이다. 밤송이라.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니 화력은 그런대로 있다는 기억은 있지만, 이것으로써 군불을 땐 기억은 없다. 대신 밤송이라면 등떼기 맞아서 따가웠던 기억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만 할 뿐. 


역대로 밤나무는 소중히 여긴 흔적이 많으니, 전라도 장성 땅에 세거하는 행주기씨 호철씨에 의하면 그 이유 중 하나가 신주를 만들 재료가 되는 까닭이라 하거니와, 그러면서 그가 이르되, "그래서 딸 낳아 오동 심어 쓸 만하면 시집가고, 아들 낳아 밤나무 심어 신주 만들만하면 죽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밤나무는 죽음과 연동하기도 한다. 


경남 거창 출신 한문학도 박헌순 옹에 의하면 "대개 밤송이로 불을 때는 것은 화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당에서 위험 요소를 태워없앤다는 뜻도 많았다"고 하거니와, 그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한 설명을 더 듣지는 못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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