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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넋두리[秋日作]

[朝鮮] 정철(鄭徹) 


김천 대덕산 일몰



산비에 밤새 대숲이 울고 

가을벌레 침상에 다가서네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추리오   

자라는 흰머리 막지 못하네 


山雨夜鳴竹, 草蟲秋近床. 流年那可駐, 白髮不禁長. 



거울을 봤다. 영락없는 중늙은이다. 백발은 성성하고 표정은 우거지상이다. 웃는 적이나 있었던가? 뭘 그래? 가끔은 웃기도 해. 그래? 허탈해서 나오는 표정 아닌가? 요새 젊은 애들은 그걸 썩소라 하더라만? 




태백太白 이택李白(701~762)이 아마도 50대였겠지? 한때나마 황제와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몸사르겠다고 했다가, 그런 기회를 용케 잡기는 했지만, 막상 하는 일이라곤 황제를 위한 개그맨이라, 이 짓 못 해먹겠다고 때려 치고 나왔더랬지? 그렇게 실업자 백수로 전전한지 10여 년, 어쩌다 강남 추포秋浦라는 곳으로 흘러간 모양인데, 그참 이름 요상타. 춘포春浦도 아니요 가을이라니? 실의한 사람한테 그 어떤 가을도 조락일 뿐. 마침내 이 중늙은이 울분을 시로써 쏟아내니 이름하기를 추포가秋浦歌라 했더랬다. 15수가 남은 개중 한 수에서 이렇게 말하고는 껄껄 웃는다.   


흰머리가 3000미터 

근심에 이토록 자랐네 

모르겠다 거울속 저이 

어디서 가을서리 맞았는지


白髮三千丈

縁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그러고 보면, 태백 시대에는 거울 보며 한탄하는 중늙은이가 즐비했나 본데, 그와 동시대를 살다간 장구령張九齡(678~740) 역시 저와 비슷하게 읊조렸으니, '거울 비춰 보니 백발이 보이네[照鏡見白髪]'라는 제목이 붙었으니  


지난날엔 청운의 꿈 품었다가

지금은 헛되이 노년 보내네 

뉘 알았으랴, 저 거울 속에서

몰골과 그림자 서로 가련히 여길 줄


宿昔青雲志

蹉タ白髪年

誰知明鏡裏

形影自相憐


뭐 이런 식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반추하는 인간이 그득그득이라, 비슷한 시대 설직薛稷(649~713) 역시 청승을 떨었다. 


가을아침 거울을 보고[秋朝覽鏡] 


떨어지는 잎새에도 나그네는 놀라

밤중에 앉은 채 가을바람 듣노라  

아침되어 얼굴에서 살쩍머리 보니

이 생애 저 거울 속에 있구나 


客心驚落木 

夜坐聽秋風 

朝日看容髮 

生涯在鏡中 


이상 세 시는 근자 김풍기 교수 역저 《오언당음五言唐音》(교육서가, 2018)에서 추려 뽑고, 내가 살쩍을 조금 보탠다.  덧붙이건대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도 이런 한시집 하나는 갖추는 게 여러 모로 도움은 될 터이니 책 좀 사주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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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짓다[秋日作]〉




[조선) 정철(鄭澈, 1536~1593) / 기호철 譯解

 

산비는 밤에 들자 댓잎을 울리고

풀벌레 가을 되자 침상에 오르네

흐르는 세월 어찌 머물게 하리오

자라는 흰머리 막지도 못하거늘


山雨夜鳴竹, 草虫秋近床。流年那可駐? 白髮不禁長。

 

1, 2행 “산비는 밤에 들자 댓잎을 울리고, 풀벌레 가을 되자 침상에 오른다.[山雨夜鳴竹 草虫秋近床]”는 구절은 이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백련초해(百聯抄解)》와 작자 미상의 《추구(推句)》에도 수록되어 애송되는 것인데, ‘草虫秋近床’이 ‘草虫秋入床’으로 되어 있다.

  1. 연건동거사 2018.10.22 18:38 신고

    별로 더 토달 것 없을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이미지를 명확히 떠오르게 하는 명작이군염

  2. 연건동거사 2018.10.22 18:39 신고

    정철이군요. 잘 썼는데요.



한시, 계절의 노래(154)


열일곱수 추포가(秋浦歌十七首) 중 열다섯째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하얀 머리카락

삼천 장(丈)인데


시름 따라 이처럼

길어졌구나


모를레라 거울 속에

비친 저 모습


어디서 가을 서리

얻어왔을까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통 큰 시름이라고 해야 할까? 이백은 백발을 시로 읊으면서도 특유의 과장법을 사용한다. 백발이 삼천 장(丈)이라니... 말이 되는가? 이백은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에서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려 꽂히니(飛流直下三千尺)”라고 읊었다. 여산폭포 물줄기도 겨우 삼천 척(尺)에 불과한데 백발은 그 열 배에 달하는 삼천 장(丈)이라 했다. 어떻게 이처럼 길게 자랄 수 있을까? 다음 구절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건 시름 때문이다. 한(漢)나라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는 “삶은 100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늘 천 년 근심을 안고 사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라고 탄식했다. 하긴 붓다도 이 세상을 고해(苦海)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이백의 묘사가 이뿐이었다면 기상천외한 과장법으로 그쳤으리라. 하지만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처럼 '밝은 거울[明鏡]'을 들여다보며 가을 서리 같은 백발을 어디서 얻어왔느냐고 묻는다.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으므로, 역시 자신이 대답해야 한다. 앞 구절에서 백발 3000장은 시름 때문에 자란 것이라고 이미 밝혀놓고 왜 같은 질문을 던지는가? 따라서 이 질문은 백발의 원인인 시름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 깊은 시름을 대체 어디서 얻어왔는가? 질문만 있고 대답은 없다. 이 시의 기상천외한 과장법이 속되지 않게 인간 내면의 슬픔 속으로 스며드는 까닭이 바로 이 지점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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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풍성하나 함박눈 내린 내 머리> 


한시, 계절의 노래(106)


탈모를 슬퍼하며(感髮落)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지난날엔 머리 흴까

근심했는데


희지 않고 쇠락할 줄

뉘 알았으랴


이제 곧 남김없이

다 빠질 테니


실낱처럼 변할 수도

없게 되리라


昔日愁頭白, 誰知未白衰. 眼看應落盡, 無可變成絲.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자신의 백발을 거울에 비춰보며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흰 눈이 되었네(朝如靑絲暮成雪)”라고 슬퍼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괜찮은 편이다. 백발은 되었지만 머리카락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백발을 온갖 색깔로 염색할 수 있다. 머리카락만 남아 있다면 뭐가 문제랴? 백거이는 백발이 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스물다섯 무렵부터 탈모가 시작되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빠지든 말든 큰 신경은 쓰지 않았으나, 머리카락이 멀쩡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괜히 더 늙은 듯하여 마음이 울적해지곤 했다. 다행히 탈모가 급격하게 진행되지는 않아서 30여 년간 그럭저럭 버텨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예순에 가까워오니 휑한 두발을 감출 수 없다. 몇 년 전에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완전히 삭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보시고 깜짝 놀라 무슨 암에 걸린 게 아니냐고 추궁하셨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믿지 않으시고 한 동안 시름을 놓지 못하셨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가르침도 있으니 이제 삭발은 하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 근심을 덜어드리는 일만이 그래도 불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길이니 말이다. (김영문)

<두상 절반쯤이 스텝 고원지대로 변한 김영문 선생 머리> 


백발은 홀로 오지 않는다. 나는 새치가 중학생 때 벌써 보이기 시작하고 20대엔 제법 많아 싸라기 눈밭 같았다. 그게 그토록이나 스트레스였다. 또 다른 머리카락 스트레스는 그 뻣뻣하기가 돼지털 같아, 밤송이 가시 같아 차라리 박박 밀어버리거나, 아니면 장발이어야 했다. 한데 이것도 세월이라, 아주 세어버려 함박눈 덮힌 천지처럼 변하는가 싶더니 그 빳빳한 머리카락도 힘을 잃어 태풍 만난 나락 같아 픽픽 쓰러진다. 혹자는 말한다. 왜 염색을 하지 않느냐고. 첫째 귀찮아서요, 둘째 그런 대로 폼은 나기 때문이다. 백발을 한탄하지 마라. 특히 독수리 머리 사람들 앞에선 백발 자랑하지 말지어다. 무심결에 그런 사람 앞에서 백발을 한탄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너는 머리카락이라도 있지, 난 그런 머리카락도 없으니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한다. 제목이 링크한 본래 김영문 선생 포스팅을 보면 휑뎅그레 아라비아 사막 같은 머리를 드러낸 본인 사진을 참고자료로 올려놓았다. 그래 난, 없는 사람보다 나으니깐 내 저들을 보는 낙으로 살아간다.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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