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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어떠한 새로운 문화현상을 창조하는지를 나는 언제나 龍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작금 한국 사회에서 통용하는 龍에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관념이 중첩했음을 지적하곤 했으니, 

 

1. 동아시아 古來의 龍 - 風雨를 불러오는 일종의 神格

2. 인도문화권의 naga - 天神의 일종. 불교에서는 불법수호신

3. 서양의 dragon - 火魔. 영화 'Dragon heart' 혹은 Beowulf 참조


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편의상 龍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다른 문화권 개념이 침투했는지도 모르나, 그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나아가 우리가 논하는 龍으로 가장 중대한 세 가지 층위가 저들로 보니, 저들을 중심으로 기간 생각하고 이곳저곳에다가 쓴 글들을 다시금 정리하고자 한다. 


작금 한국사회 전반에 각인한 龍이 어떤 개념 혹은 이미지로 다가오는지는 하다 못해 그와 관련한 앙케이트 조사 결과라도 있어야겠지만, 나한테 그런 객관성을 담보하는 자료로 주어진 게 없으니, 현재로서는 인상비평 수준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해 주기 바란다. 


龍이라고 하면, 아마도 세대별 인식 차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거니와, 어디까지 나이와 세대를 국한해야 하는지 자신은 없지만, 노년층을 제외한 중년층 이하 어린아이 세대에 이르기까지 龍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대라면 십중팔구는 아가리로 뿜어내는 드래곤을 떠올리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속한 고래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말하는 龍과는 전연 무관계하며, 실은 서구유럽 계통에 뿌리를 박는 Dragon이다. 불을 뿜는 드래곤은 각종 영화나, 번역물을 대표로 하는 출판인쇄물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해 이젠 이것이야말로 龍의 아이콘으로 化한 시대가 되었거니와, 저 앞에서 보듯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말하는 龍은 불[火]과는 전연 관계가 없어, 실은 그 상극에 위치하는 물[水]이다. 


2000년대 초반에 경복궁 근정전을 해체한 적이 있으니, 그 과정에서 水자를 가득히 적어 만든 龍 무늬 도안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게 아마 실물이 현재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이 아닌가 하는데, 이 도안을 새로운 건물에 안치한 이유는 화재를 피하고자 하는 염원 때문이었다. 불을 막거나 끄는 것은 물이므로, 그런 염원을 담아 제작해 넣은 주술 상징이 바로 저 도안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불교 도입 이전 고래의 동아시아 龍 관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불교가 착륙하면서 龍 관념도 일대 변모를 겪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龍王은 실은 불교가 대표하는 인도문화가 동아시아 고래의 문화와 착종한 새로운 고안품이다. 그 뿌리를 이루는 것이 이른바 나가Naga인데,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바이두 사전 관련 항목으로 대체한다. 


那伽 (佛教天龙八部中的龙众。)


이에서 보듯이 인도문화권이 말하는 Naga는 뱀 종류지만, 그 항목 여러 개가 제시하는 각종 이미지가 증명하듯이 후대로 갈수록 그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龍과 대단히 흡사하게 된다. 이 말이 괜히 龍으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은 Dragon인데, 이것이 끼친 영향 역시 심대하기만 하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폭증할 10여년 전에는 소위 말하는 개독 신도들한테, 성경에 드래곤이 등장하는가? 등장한다면 그 맥락은 어떠한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 조사자료를 지금은 망실해 안타깝기만 한데, 혹 그에 대한 관련 자료 있으면 소개를 부탁한다. 


내가 기억하는 바는 성경 중에 드래곤이 두어 군데 등장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 맥락은 모두 惡의 화신과 같은 모습이었던 듯하다. 드래곤을 이리 간주하는 전통이 결국 베오울프와 영화 드래곤 하트를 낳은 밑천이다. 이들 양놈 문화권 드래곤은 하나같이 아가리에서 불을 뿜으면서 화재를 불러오고 농사를 망치며 난리를 피워댄다. 


한데 전연 전통이 다른 龍과 naga와 dragon이 하나로 착종함으로써 새로운 龍의 이미지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그 거대한 원천은 바로 번역에 있다. 저들 중 코브라 같은 뱀을 실물 모델로 삼는 naga 말고 어차피 상상의 동물인 龍과 드래곤으 모조리 龍이라는 한 단어로 수렴하는 시대를 우리는 사는 것이다. 


추상은 언제나 구상으로의 해체 욕망에 시달린다. 이런 욕망이 불교가 애초 동아시아 문화권에 상륙했을 적에 격의불교라는 것을 낳았다. 도대체가 새로이 들어온 개념을 표현할 마뜩한 대응 번역어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구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욕망이 격의불교를 만들어 냈으니, 그 일환으로 부처조차 仙이라는 간단한 한마디로 대체되어 설명되곤 했다. 요새도 부처를 금선(金仙)이라 번역하는 일이 더러 있으니, 금선이란 황금빛이 나는 신선이라는 뜻이다. 


이런 욕망에 직면한 naga와 dragon 역시 그 대응 번역어를 찾는 과정에서 龍이라는 말이 착목되었던 것이다. 복잡다단한 새로운 개념을 이렇게 기존에 사용하던 龍이라는 한마디로 갖다 놓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마침 그 모양을 보니 기존 龍과 흡사하니 말이다. 


한데 번역은 새로운 개념과 그에 맞는 실체를 창조하는 법이다. 

저들이 한데 버무려져 새로운 龍이 탄생 중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龍은 심청이를 구한 naga이기도 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뿜는 드래곤이기도 하다. 


naga를 龍으로 옮기기 시작한 흔적은 불경 번역을 볼 적에 추적과 정리가 가능한데, 드래곤을 龍으로 옮기기 시작한 흔적과 뿌리는 영 추적이 용이치 않다. 천주실의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땐 이 문제를 착목하지 못했다. 혹 내가 품은 이런 의문들을 푸는 초기 번역 실례를 알고 계신 분은 소개를 부탁드린다.  

 

저 표제 그림은 바이두가 naga로 소개했는데 어쩐지 dragon 같다.....


===========<추기>================

Question: 'What does the Bible say about dragons"  


Answer: The Bible mentions a dragon in Revelation chapters 12, 13. 16, and 20. Revelation 20:2 identifies the dragon: "He seized the drago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the devil, or Satan, and bound him for a thousand years." The Bible is not teaching that dragons ever truly existed. Rather, it is only comparing Satan to a fire-breathing monster. 


It is very interesting to note, however, that nearly every major ancient culture has myths and legends about giant reptiles, How would these civilizations, continents and millennia apart, all come up with legends of giant reptile creatures? Evolutionary scientists tell us that dinosaurs existed millions of years before human beings. Dinosaur fossils were not discovered until thousands of years after the myths of giant reptiles began. How can this be?


The Bible mentions two creatures that seem remarkably similar to the dinosaurs, the leviathan and behemoth, in Job chapters 40-41. It is the view of creation scientists that all the "dragon" myths came from real contact real contact between human beings and dinosaurs. The Bible tells us that all animals were created around 6000 year ago and coexist with uman beings. That would explain how all human cultures have myths about giant reptiles because they actually saw them! The "fire-breathing" aspect of a dragon is possibly a myth (although there have been some interesting discoveries), but the universal legends of giant reptiles point to real contact between human beings and dinosaurs. 




<복장물로 사용한 사경(寫經)>


일전에 비스무리하게 한 말이지만 그때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듯해서 다시 손을 든다. 우리는 해당 문화권 밖에서 유래하는 어떤 사상이나 사조가 어떤 땅에 상륙한 지표로써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자가 수입되거나 상륙한 시점을 출발점으로 설정하곤 한다. 그 일환으로 번역을 특히 중시해서 그런 책자가 해당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된 시점이야말로 그런 사상이나 사조가 수입된 시점과 등치하는 경향이 너무나 짙다. 이런 경향은 현대와는 거리가 먼 고대로 올라갈수록 특히 강하거니와, 중국 문화와 교류가 남달랐던 한국문화를 보건대 이런 성향이 너무나 짙어 작금 상황은 아주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성향이 유난히 짙은 곳으로 불교학이 있다. 익히 알려졌듯이 불교 사상에는 수많은 갈래가 있고, 그마다 그것을 선전하는 불교학 저술이 따로 있다. 예컨대 밀교의 한반도 상륙을 논할 적에 항용 밀교의 어떤 경전이 당에서 어느 시대 누구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이 되고, 그런 저술이 신라로 언제 상륙했는지를 기점으로 삼아 신라 밀교의 등장을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번역은 그것이 담은 사조 혹은 사상이 유행이 지나기 시작하는 끝물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그런 저술이 번역되는 시점은 이미 유행이 지난 시점이다. 


한데 이 점을 너무 쉽사리 망각한다. 현대 번역을 보라! 그것은 번역을 부르는 풍토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현대를 봐도, 어떤 새로운 사조는 해당 사조를 잘 정리하거나 선언한 원전이 한글로 번역되고 나서야 수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번역이 일어나기 이미 훨씬 이전에 그 사조가 들어온다. 이런 경향이 고대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이땅에 기독교가 상륙할 때, 성서는 번역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서가 담은 기독교는 한반도에 상륙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이 점을 망각하면 결코 아니된다.


** 이 포스팅 페이스북 공유에 외우 신동훈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막스 원전 번역이 언제 됐는지 보면 알죠"라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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