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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마지막 제28대 왕인 보장왕(寶臧王·재위 642~668)을 다르게 일컫는 이름. 고구려 왕족 성이 高씨이기 때문에 고장왕이라 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당]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에서의 싸움을 보복하려고 하여, 이찬 김춘추(金春秋)를 고구려에 보내 군사를 청하였다. 처음 대야성이 패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이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이를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루 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얼마가 지나 “슬프다! 대장부가 되어 어찌 백제를 삼키지 못하겠는가?” 하고는, 곧 왕을 찾아 뵙고 “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게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라 말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고구려 왕 고장(高臧)[보장왕]은 평소 춘추의 명성을 들었던지라 군사의 호위를 엄중히 한 다음에 그를 만나 보았다. 춘추가 말하였다. 지금 백제는 무도하여 긴 뱀과 큰 돼지[長蛇封豕]가 되어 우리 강토를 침범하므로, 저희 나라 임금이 대국의 군사를 얻어 그 치욕을 씻고자 합니다. 그래서 신하인 저로 하여금 대왕께 명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고구려 왕이 말하였다. “죽령(竹嶺)은 본시 우리 땅이니, 그대가 만약 죽령 서북의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춘추가 대답하였다.신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군대를 청하는데, 대왕께서는 어려운 처지를 구원하여 이웃과 친선하는 데는 뜻이 없고 단지 사신을 위협하여 땅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신은 죽을지언정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고장(高臧)[보장왕]이 그 말의 불손함에 화가 나서 그를 별관(別館)에 가두었다. 춘추가 몰래 사람을 시켜 본국의 왕에게 알리니, 왕이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에게 명하여 결사대 1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하였다. 유신이 행군하여 한강(漢江)을 넘어 고구려 남쪽 경계에 들어가니, 고구려 왕이 이를 듣고 춘추를 놓아 돌려 보냈다. 유신을 압량주(押梁州) 군주로 삼았다. 


삼국유사 제2권 문호왕 법민 조 : 총장(總章) 무진(戊辰; 668)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인문(仁問)·흠순(欽純) 등과 함께 평양(平壤)에 이르러 당(唐)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은 고장왕(高藏王)을 잡아가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왕王의 성姓이 고高씨이므로 고장高藏이라 했다....건封 원元년 병인丙寅(666) 6월에 방동선龐同善·고임高臨·설인귀薛仁貴·이근행李謹行 등으로 이를 후원케 했다.  9월에 방동선龐同善이 고구려와 싸워서 패했다.  12월 기유己酉에 이적李勣으로 요동도遼東道 행군대총관行軍大摠管을 삼아 육총관六摠管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했다.  총장總章 원元년 무진戊辰(668) 9월 계사癸巳에 이적李勣이 고장왕高藏王을 사로잡았다.  12월 정사丁巳에 포로를 황제에게 바쳤다.  상원上元 원년元年 갑술甲戌(674) 2월에 유인궤劉仁軌로 계림도鷄林道 총관摠管을 삼아서 신라를 치게 했다.  우리 나라 <고기古記>에는 "당唐나라가 육로장군陸路將軍 공공孔恭과 수로장군水路將軍 유상有相을 보내서 신라의 김유신金庾信 등과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켰다"고 했다.  


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김인문 열전 : 총장(摠章) 원년 무진(문무왕 8년: 668)에 고종 황제가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하고, 또 인문을 보내 우리에게도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다. 문무대왕이 인문과 함께 군사 20만을 출동하여 북한산성(北漢山城)에 이르러 왕은 여기에 머무르고 인문 등을 먼저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군대와 회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한 달 이상이 지나 고구려왕 장(臧)을 사로잡아 인문이 왕으로 하여금 영공(英公) 앞에 꿇어앉게 하고 그 죄를 세니, 왕이 재배하고 영공이 예로 답하였다. [영공은] 곧 왕과 남산(男産)·남건(男建)·남생(男生) 등을 데리고 돌아갔다. 


 ☞보장왕(寶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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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의 군사 3만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는데, 두 진으로 나누어 설치하였다. [설]만철이 군사를 나누어 이에 대응하니, 우리 군사는 패하여 무너졌다. 황제가 또 내주자사 이도유(李道裕)에게 명령하여 군량과 기계를 옮겨 오호도(烏胡島)에 갈마두게 하고 장차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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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6년(647) 겨울 12월에 왕은 둘째아들 막리지 임무(任武)를 당에 들어가 사죄하게 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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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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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수공(垂拱) 2년(686)에 [황제가] 항복한 왕의 손자 보원(寶元)을 조선군왕(朝鮮郡王)으로 삼고, 성력(聖曆) 초년(698)에 이르러 좌응양위(左鷹揚衛) 대장군으로 올렸다가 다시 충성국왕(忠誠國王)으로 봉하고, 안동의 옛 부를 통치하게 하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듬해에 항복한 왕의 아들 덕무(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삼았는데, 후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 원화(元和)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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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본기 下 : 25년(666) 왕이 태자 복남(福男)<신당서에는 남복(男福)이라 했>을 보내 당나라에 들어가 태산(泰山) 제사에 참가케 했다. 

삼국사기 권 제6(신라본기 제6) 문무왕본기 상 : 8년(668)…9월21일에 당나라 군대와 합하여 평양을 에워쌌다. 고구려왕은 먼저 연남산(淵男産) 등을 보내 영공을 찾아뵙고 항복을 청하였다. 이에 영공은 보장왕(寶臧王)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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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본기 上 : 보장왕(寶臧王)은 이름이 장(臧)<보장(寶臧)이라고도 한다>이다. 나라를 잃었으므로 시호가 없다. 건무왕(建武王)의 아우 대양왕(大陽王) 아들이다. 건무왕이 재위 25년에 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장(臧)을 세워 왕위를 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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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마지막 보장왕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21(고구려본기 제9) 보장왕본기 上 : 보장왕(寶臧王)은 이름이 장(臧)<보장(寶臧)이라고도 한다>이다. 나라를 잃었으므로 시호가 없다. 건무왕(建武王)의 아우 대양왕(大陽王) 아들이다. 건무왕이 재위 25년에 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장(臧)을 세워 왕위를 잇게 했다.

☞보장왕(寶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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