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례랑1 실례랑(失禮郞) 신라 신문왕 때 화랑인데, 판본에 따라 부례랑(夫禮郞)이라고도 하니, 夫와 失이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이 무렵 신라 지배층은 그 자체 의미를 지닌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失禮郞이 실상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자세한 행적은 부례랑을 보라.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신문)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 왼편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 2018. 3. 2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