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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문유취>


'유서'란 글자 그대로는 분류식 책이라는 뜻인데, 간단히 말해 분류식 백과사전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백과사전은 대개 가나다 혹은 ABC 순서로 표제어를 배열하고, 해당 항목마다 그 개념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하지만, 이 유서(類書)라고 하는 백과사전은 동아시아에서 태동해 발전한 것으로, 주제 혹은 키워드별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까닭에 類書는 해당 분류식 개념어를 적출하고는, 그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주요한 소재로 활용한 先代 문헌에서 관련 구절을 그대로, 혹은 요약해서 배열하는데, 당나라시대에 나온 이런 종류로 대표적인 4가지로 《북당서초》와 《예문유취》와 《초학기》와 《백씨육첩》이 있으며, 이런 사업이 후대로 올수록 더욱 극성을 부려 특히 북송시대에는 《태평광기》라든가 《태평어람太平御覽》 역시 이에 속한다. 

 

주제별 분류라는 점에서 類書는 무엇보다 검색이 용이하고, 그 자체로서도 보는 재미가 쏠쏠해 공구서(工具書)로 특히 인기가 높았다. 더구나 그 서술 체제를 보면, 선대 문헌에 보이는 구절 중에서 핵심만을 모았다는 점에서 특히 시문을 지을 적에도 결정적인 지남자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 태동이 언제쯤인가 하는 논란이 없지는 않으나, 전한시대에 나온 자전인 《이아(爾雅)》가 분류식 개념어 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맹아를 이미 보이지만, 이것으로써 본격적인 류서라 하기에는 저어되는 측면이 많다. 그러다가 우리한테 익숙한 류서로는 삼국시대 황초(黃初) 원년(220)에 손보인 《황람(皇覽)》을 본격적인 남상을 삼는다. 다만 아쉽게도 《황람》은 이미 원전을 망실해 버리고, 그에 인용된 일부 구절만이 다른 문헌에 산발적으로 인용되어 전할 뿐이다. 제목으로 보아, 이는 황제가 업무라든가 시문에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편찬되었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수당隋唐)시대가 개막하면서 거질 류서가 연이어 출현한다. 


송원(宋元)시대 접어들어 류서는 더 거질로 발전하니, 이미 북송시대 초기에 “송초 4대 기서(宋初四大類書)” 출현으로 빛을 본다. 명청시대에는 前代에 비해 류서 편찬 기운이 감퇴된 감은 없지는 않으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최극성으로 본다. 류서가 지닌 여러 기능 중에서 이미 망실해 버리고 만 무수한 문헌의 편린들을 엿본다는 점이 그것이니, 소위 말하는 일서(逸書) 편집에서 류서가 갖는 권능은 가히 절대적이다. 나아가 현재까지 남은 문헌이라고 해도, 후대 판각 혹은 필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기 마련이라, 유서에 인용된 구절들과 비교함으로써, 어느 쪽이 원래의 저자 의도에 맞는 표현인지를 감별하는 소위 교감학 교재로서도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현재까지 알려진 류서의 남상인 《황람(皇覽)》은 삼국시대 魏 文帝 曹丕 재위시(220~222)에 유소(劉劭)와 왕상(王象) 등이 편찬한 것으로 宋代 들어와 이미 망실됐다. 조비曹丕가 황제이면서 저명한 시인이요 문학가라는 점에서, 왜 류서가 출현하게 되었는지, 앞서 내가 말하는 구절을 연상케 한다. 


이후 南朝 梁나라에서도 劉杳가 편집한 《수광서원(壽光書苑)》이 있고, 유효표(劉孝標)가 편찬한 《류원(類苑)》과 서면령(徐勉領)이 편수한 《화림편략(華林遍略)》, 北齊 後主 때 찬수纂修한 《수문전어람(修文殿御覽)》 등이 대부분  《皇覽》을 표방하여 “여러 말을 포괄하고 뜻에 따라 분류하여(包括群言, 區分義別)”하고 “분류에 따라 서로 따르게 하는(隨類相從) 체제를 따랐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 類書로는 隋末 唐初에 우세남(虞世南)이 편찬한 《북당서초北堂書鈔》가 있고, 그 직후 唐 高祖 武德 年間에 구양순歐陽詢이 주편한 《예문유취(藝文類聚)》가 나왔고, 唐 玄宗 時에는 서견(徐堅) 등이 봉칙찬한 《초학기(初學記)》가 따랐으며, 唐 中期 白居易 編撰 《백씨육첩(白氏六帖)》이 있으니, 이중 《백씨육첩(白氏六帖)》은 백거이 편찬설에는 의문이 많으며, 나아가 南宋시대에는 그 시대 공전孔傳이 편찬한 《공씨육첩(孔氏六帖)》과 합쳐져서 《당송백공육첩(唐宋白孔六帖)》이라 하거나 간략히 《백공육첩(白孔六帖)》이라 하기에 이르렀다. 


그 체제는 구체적으로 나는 추후 《초학기(初學記)》를 통해 소개하기로 한다. 


송대 류서를 보면, 앞서 말한 《太平御覽》이 太宗 太平興國 年間에 이방李昉 등이 손을 대서 편찬했고, 真宗시대에는 왕흠약(王欽若)과 양억(楊億) 등이 《책부원구(冊府元龜)》를 편찬했으며, 南宋에 접어들어서는 종래 황제의 명을 받는 형식에서 벗어나 왕응린(王應麟)이 순전히 개인 노력을 들여 《옥해(玉海)》를 내놓았으니, 이들은 전대 유서들에 견주어 대단한 거질이다. 


明 成祖 永樂 年間에 纂修한 《영락대전(永樂大典)》도 유서로서, 그 사업 범위는 유사 이래 본 적이 없는 대규모였다. 이를 뛰어넘는 성과는 清代 康熙 末年~雍正 初年에 진몽뢰(陳夢雷) 등이 편찬 책임을 맡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이 있으니 이것이 인류가 이룩한 최대 백과사전 편찬사업 결과라 불러도 좋다. 



중국사에서 漢은 침략주의라는 단순무식한 구도로 제국주의를 규정할 때, 그 진정한 첫 왕조라 할 만 했으니, 영역의 무한 확장을 책동한 이런 움직임은 전한 무제 때 극성을 구가해 북방 강적 흉노를 처단하고자, 그 좌익을 짜르고자 서역을 정벌하고, 그 우익을 단절하고자 위만조선을 쳤으며, 남쪽 변경을 안정화한다는 구실로 남월을 정복했다. 그 이전 역대 중국 왕조와 현격히 달리, 한 무제의 침략주의가 독특한 점은 한 왕실에 의한 직접 지배를 관철하고자 했다는 점이니, 그리하여 그렇게 정복한 서역에는 서역도호부를 두고, 남월에는 7개 군을 설치했으며, 위만조선 땅에는 4군을 관할했다. 




이런 정복 전쟁은 중국 내에서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으니, 첫째 군인 전성시대와 군수업자가 활개를 쳤고, 둘째, 새로운 인종의 대거 유입이었으니, 사실 남월이나 위만조선 혹은 흉노 영입은 인종학적으로는 이렇다 할 이채로움을 주었다고는 하기 힘드나, 서역은 종자가 조금은 다른 데다 이쪽은 특히 여성 중에는 미인이 많았던 듯, 이 서역 출신 미인들을 둘러싼 새로운 문학 환경을 조성한다. 아래 소개하는 우림랑(羽林郎)은 정확한 등장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동한東漢 무렵이 아닌가 하거니와, 벌써 이 노래를 보면 호희胡姬를 소재 삼아 이그조틱한 분위기 물씬함을 본다. 이렇게 조성한 문학 환경은 이후 당대唐代로 내려가 더욱 극성을 구가하거니와, 그 자신 서역 출신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은 태백 이백만 해도, 호희를 소재로 삼은 명편을 쏟아낸다.   


이 노래는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처음 수록하면서 그 작자를 신연년辛延年이라 하면서 소개했거니와, 그 직후 수대隋代에 편집된 백과사전 《북당서초北堂書鈔》에서는 작자 이름이 신연수辛延壽라 했으니, 흥미로운 점은 연년延年이나 연수延壽나 뜻은 같다는 사실이다. 작가를 둘러싸고 뭔가 장난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제목이 말하는 우림랑(羽林郎)이란 우림의 장교라는 뜻이거니와, 우림羽林이란 황제 근위대, 청와대 경호원 같은 조직을 말하며, 랑郞이란 그런 부대를 통솔하는 중상위급 장교 정도로 보면 대과가 없다. 




그렇다면 제목만 보면, 이 시는 황실 근위대 장교와 관련할 법한 내용이겠지만, 실은 그와는 전연 딴판이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제목만 빌려왔을 뿐이다. 당시 유행하는 곡조에 우림랑 비슷한 제목이 붙었던 듯, 그것을 빌려와 이것이 악부체樂府體 가요라는 사실 정도만을 의도할 뿐이다. 


우림랑(羽林郎)

[東漢] 신연년辛延年 


昔有霍家奴 옛날 곽가댁 사내종
姓馮名子都 성이 풍 이름이 자도
依倚將軍勢 곽 장군 권세 기대어
調笑酒家胡 술집 호녀 조롱했네
胡姬年十五 호녀 나이 열에 다섯
春日獨當壚 봄날 홀로 주막 장사
長裾連理帶 긴치마에 허리띠 매고
廣袖合歡襦 넓은 소매 합환 저고리
頭上藍田玉 머리엔 남전옥 올리고
耳後大秦珠 귓볼엔 대진땅 진주
兩鬟何窕窕 두 쪽 얼마나 이쁜지
一世良所無 이 세상엔 없다네
一鬟五百萬 쪽 하나 오백만냥
兩鬟千萬餘 두 쪽이니 천만냥
不意金吾子 불현듯 경호원 나리
娉婷過我廬 폼나게 제 주막 지나니
銀鞍何煜爚 은빛 안장 얼마나 눈부신지
翠蓋空踟躕 비취수레 공연히 머뭇하며
就我求清酒 제게 소주 달라하시기에
絲繩提玉壺 비단끈에 옥술병 달았지요
就我求珍肴 제게 좋은 안주 달라기에
金盤鱠鯉魚 금 쟁반에 잉어회 드렸지요
貽我青銅鏡 제게 청동거울 주시면서
結我紅羅裾 제 붉은비단 자락에 묶어주셨지요
不惜紅羅裂 붉은 비단 찢김이 아까우리오
何論輕賤軀 어찌 미천한 몸 따지리오
男兒愛後婦 남잔 나중 여자 아끼고
女子重前夫 여잔 먼저 남자 중하다오
人生有新故 인생살이 옛것과 새로움 있고
貴賤不相踰 귀하고 천함은 넘어서지 못하니 
多謝金吾子 금오나리 거듭 고맙습니다
私愛徒區區 사사로운 애정 부질없사옵니다


한대 악부가 다른 시가와 유별나게 다른 점은 문장이 대단히 평이하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애초에는 대중가요 가사인 까닭에, 그 형식 역시 장편이 많고, 훗날 우리의 판소리와 아주 흡사해 창을 하는 듯한 대목이 적지 않다. 이 시 역시 전반으로 보아 판소리 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나아가 그 중간 부분 "不意金吾子 불현듯 경호원 나리 / 娉婷過我廬 폼나게 제 주막 지나니" 대목이 전반부와 완연히 달라져, 전반부는 이른바 제3자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면 이하 후반부는 호희가 1인칭 화자가 되어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리하여 이하에서는 작자가 '我'가 된다. 


저들 구절에 보이는 대목들 중 작품 이해를 위한 해설은 서성 선생이 역주한 《양한시집兩漢詩集》(보고사, 2007, 246~250쪽)은 주된 텍스트로 삼아 정리하고자 한다. 곽가(郭家) 혹은 장군은 전한 무제의 고명 대신으로 소제 때 정권을 장악한 곽광郭光을 말한다. 곽광이 정권을 오롯이 하자, 권세는 그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분점되니, 姓이 풍馮이요 이름이 자도子都란 풍자도는 실제 《한서 곽광전》에 의하면, 집안 사무를 총괄한 사람으로, 곽광이 죽은 뒤에는 그 미망인과 놀아났다 한다. 조소調笑란 조롱한다는 뜻이요, 호희胡姬란 서역 출신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거니와, 그의 나이 15살이라 했으니, 그 옛날엔 15살을 한창 미모가 빛을 발하는 시점으로 보는 흔적이 부지기다. 

당로當壚란 로를 맡아 운영한다는 뜻이거니와, 간단히 말해 주모다. 로는 술집에서 술항아리를 놓아두고자 흙으로 약간 높인 곳을 의미하거니와 이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술집 일반을 말한다. 연리대連理帶란 상하 대칭하는 무늬로 이루어진, 두 줄이 하나로 된 허리띠를 말하며, 남전옥藍田玉이란 남전이라는 땅에서는 나은 옥을 말하거니와, 장안 근처였다. 대진주大秦珠란 대진 땅에서 나는 진주를 말하거니와, 대진은 흔히 로마제국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 로마제국이라기 보다는 서역 먼 어느 땅이라 보는 편이 좋다. 

금오자金吾子란 집금오集金吾를 말하거니와, 경호 장교다. 이하에서는 그리 별도 설명은 필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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