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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13년(504) 여름 4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북위) 세종(世宗)이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동당(東堂)으로 불러들여 만났다. [예]실불이 나아가 말했다. “저희 나라는 정성을 대국에 잇대고, 여러 대에 걸쳐 정성을 다하여 토산물을 바치는 데 어김이 없었습니다. 다만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흰 마노[珂]는 섭라(涉羅)에서 나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勿吉)에게 쫓기는 바 되고, 섭라는 백제에 병합되었습니다. 두 물건이 왕의 창고에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도적 때문입니다.” 세종이 말했다. “고구려는 세세토록 상국(上國)의 도움을 입어, 해외에서 제멋대로 다스려 구이(九夷)의 교활한 오랑캐들을 모두 정벌하였는데, 작은 술그릇이 비는 것은 큰 술병의 수치이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이전에 조공이 어그러진 것은 책임이 고구려 왕에게 있는 것이다. 경은 짐의 뜻을 경의 임금에게 전하여, 위엄과 회유의 책략을 힘써 다해서 해로운 무리들을 없애 동방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두 읍[부여·섭라]으로 하여금 옛 터를 되찾아서 토산물을 빠짐없이 일정히 조공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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