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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잡변2

적대적 변용, 아주아주 편리한 주어 바꿔치기의 유혹 불교가 중국에 상륙한 이후 초반기 선두에 서서 그와 쟁투한 흐름은 유교보다는 실은 도교였다. 구겸지(寇謙之·365~448) 시대 북위 도무제(道武帝)가 불교를 고사 직전으로 몰아넣은 것도 그 뒤를 추동한 세력은 도교였다. 대(對) 불교 투쟁은 당말(唐末)이 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전개되거니와, 유교가 본격 가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자성리학은 실은 한유(韓愈·768~824)를 시발로 삼거니와, 그 성리학이 한유에게 배운 것은 격렬한 불교 혐오주의였다. 이 《파사론破邪論》은 글자 그대로는 사악함을 깨뜨린다는 뜻이거니와 법림(法琳·572~640)이 말한 사악함은 주로 도교였다. 도불(道佛) 투쟁사에서는 《법원주림(法苑珠林)》과 더불어 너무나도 중요한 문헌이다. 우리는 도교를 향한 극혐을 통해 역으로 당시 .. 2018. 12. 9.
도전과 응전, 孝를 창출한 불교 생소한 도덕 윤리 관념으로 무장한 불교가 바다를 건너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서, 혹은 동지나해를 지나 동아시아로 침투해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자, 그것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그 타도의 기치를 높이 쳐들었으니, 그 플랑카드엔 언제나 "저 외부 귀신들은 애미 애비도 모르는 상놈"이라는 문구가 선두를 차지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출세간出世間을 지향하는 불교는 필연적으로 혈연의 단절을 전제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하여 부모도 버리고 형제자매도 팽개치며, 석가모니 자체가 그랬듯이 피붙이 자식조차 팽개치고는 더 큰 구제를 내걸었으니, 그들에게 혈연은 무엇보다 단절해야 할 괴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는 필연적으로 노우 섹스로 흘렀으니, 자식도 생산하지 아니하.. 201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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