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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 계곡


한시, 계절의 노래(153)*


산속(山中)


 당 사공도 / 김영문 選譯評 


새들은 고요한 곳에서

울기를 좋아하고


한적한 구름은 밝은 달을

시기하는 듯 하구나


세상 속 온갖 일은

내 일이 아니고


가을이 왔는데도

시 못 지어 부끄러울 뿐


凡鳥愛喧人靜處, 閑雲似妒月明時. 世間萬事非吾事, 只愧秋來未有詩.


사공도는 당나라 말기에 활동한 관료이자 시인이다. 당시 당나라는 황소(黃巢)의 난 등으로 멸망을 향해 치달려가고 있었지만 힘없는 지식인 사공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결국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휴휴정(休休亭)을 짓고 은거한 후 도가와 불가의 경전을 읽으며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애제(哀帝)가 시해되자 음식을 끊고 향년 72세로 순절했다. 『구당서(舊唐書)』에는 「文苑傳」에, 『신당서(新唐書)』에는 「탁행전(卓行傳)」에 그의 전기가 편입되어 있다. 그런데 사공도가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친 까닭은 기실 그의 시나 절개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었다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때문이다. 시를 품평하는 24가지 풍격을 4언시 형식으로 수묵 산수화처럼 풀어냈다. 풍격을 이론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형상적으로 그려낸 『이십사시품』은 이후 중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시·화(詩·畵) 비평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풍격이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발산하는 총체적 심미 스타일 혹은 미적 아우라를 가리킨다. 가령 어떤 시가 청신(淸新)하다고 할 때 그 청신함은 전체 시에서 풍겨 나오는 미적 아우라다. 이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이 아니라 인상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시를 청신하다고 했을 때 그것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풍격 비평은 무시당하여 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풍격 비평은 인상적이고 주관적인 단계를 넘어서서 작자, 작품, 독자의 소양과 감상 능력이 서로 어우러지는 고도의 미적 감상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시의 풍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한아(閑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는 새가 울고 달이 밝으므로 한적하고, 전구(轉句)와 결구(結句)는 가을을 맞아 시 짓기에 전념하고 있으므로 우아하다. 그것을 합치면 한아(閑雅)가 된다. 물론 이는 나의 느낌이다. 옛날에는 이런 느낌에 풍격 용어를 입힌 문예비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느낌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과묵한 구라와 수다스러운 구라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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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51)


꿈속(夢中)


 당 사공도(司空圖) / 김영문 選譯評 


사랑하는 이 몇이나

이 세상에 남아 있나


노을 사다리 타고 올라

만났다 돌아왔네


봉래산 영주산을

길이길이 사들여서


우리 가족 함께 터 잡아

고향 산천 삼으리라


幾多親愛在人間, 上徹霞梯會却還. 須是蓬瀛長買得, 一家同占作家山. 


정말 몇 명 남지 않았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로 계산해도 헤어진 지 벌써 65년째다. 그 해에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올해 우리 나이로 66세가 된다. 그럼 그 부모의 연세는 어떻게 되나? 헤어질 때 최소한으로 잡아 20세였다 해도 무려 86세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온 최고령 어르신이 101세 할아버지이고, 그 다음이 99세 할머니다. 난리로 헤어진 자식을 만나려고 저렇듯 끈질긴 삶을 이어오신 듯하다. 어릴 때 부모와 헤어져 평생을 살아온 분들의 한이나, 본의 아니게 그런 자식을 고향에 두고 온 부모의 고통은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산가족 만남은 보고 있는 사람들 가슴조차 아리게 만든다. 인간의 하나뿐인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고, 함께 살아야 할 혈육을 헤어지게 만드는 전쟁이나 쿠데타 따위의 국가폭력은 저주받아야 마땅하고 근절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함부로 주권자의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가? 주권자를 억압하고, 학살하고, 전쟁으로 내모는 폭력적 애국을 떠벌리지 말라. 애국은 먼저 우리 가족을 지키고 우리 이웃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자발적으로 확장될 때만 나라를 지키기 위한 튼튼한 국방이 가능하다. 전쟁으로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을 위해 조속히 상설 면회소를 설치해야 한다. 만나야 할 혈육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은 어쩌면 이 시의 묘사처럼 꿈속에서의 만남이라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2~3일 만남 자체가 꿈이라고 해야 한다. 저 고령의 가족이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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