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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4

조선은 외세 때문에 못 산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까지의 대중국 사대와 20-21세기의 남한의 대미관계는 유사한 점이 많다. 지금 한국은 미국에 분명히 한수 접고 들어가지만 과연 한미관계가 한국 측에 손해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떤 나라가 외부의 수탈에 의해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 받는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 나라가 발전의 정상궤도를 걷기 위해서는 그 외세를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 될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 따라 만들어진 나라가 북한이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와 남한과 같은 "대미종속"은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이다. 이것이 바뀌어야 정상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볼 때 한국사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세에 종속되지 않는 국가가 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2022. 7. 10.
말로는 교유에 교류, 실제는 전파에 시혜 역사학이라 범칭할 만한 학문분야에서 교유 혹은 교류라는 문제는 그네들이 차리는 단골밥상 중 하나다.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 건축사 등등에서 이 교류EXCAHNGE는 그만큼 인기가 높은 상품이라 스테디셀러라 할 만하다. 그 양상을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A라는 지역에서 보이는 문화요소가 그와는 상당한 혹은 인접한 지점에 위치하는 B지역에 나타난다. 그 문화요소는 크게 문물文物과 문헌기록 두 가지로 나뉜다. 물론 그 두 가지로 범주화하기 힘든 영역도 있으니, 문화재 개념을 적용한다면 무형적 요소가 그러하다. 이에 착목한 저들 범역사학은 그 공통하는 요소를 분류 배열한 다음, 연대 판정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A지역의 그것이 앞선 것으로 드러나면, 곧장 화살표를 그려댄다. A에서 B로 향하는 화살표 말이다.. 2019. 5. 9.
단재가 오도한 역사, 사대주의자 김춘추 구한말 애국주의적 언론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 한 대목에서 이리 썼다. 그러나 "신라가 國小民弱(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을 갚으랴. 오직 外援(외원)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중략)…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데까지 限하여 모든 卑辭厚禮(비사후례)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子 법민·인문 등을 당에 留質(류질)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자기)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 2019. 4. 19.
정다산의 중국환상 "중국은 문명이 발달해 아무리 외진 시골이나 먼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사대문에서 몇 리만 떨어져도 아득한 태고적처럼 원시사회다. 하물며 멀고먼 시골은 어떠하랴? 무릇 사대부 집안은 벼슬길에 오르면 서둘러 산기슭에 셋집을 얻어살면서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혹시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재빨리 서울 근처에 살며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사대부 집안의 법도다."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 누군가의 번역을 옮긴다. 원문이 없으니 대조가 불가능하다. 다산...요즘 태어났으면 재빨리 미국으로 날랐을듯.. 거기서 원정출산도 했을 듯 왜 중국이었을까? 그것이 단순한 환..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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