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세 아들 중 맏이로 세종(世宗)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9년(532) 금관국(金官國)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 즉 큰 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을 데리고 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벼슬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 무력은 벼슬하여 각간(角干)에 이르렀다.


세종(世宗) 



'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장왕(高藏王)  (0) 2018.03.19
김인문(金仁問)  (0) 2018.03.19
노종(奴宗)  (0) 2018.03.19
세종(世宗) (1) 가야  (0) 2018.03.19
분질수이질(分叱水尒叱)  (0) 2018.03.19
졸지(卒支)  (0) 2018.03.19

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그건을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

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