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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11)


통주의 여름비(通州夏雨)


 송 진연(陳淵) / 김영문 選譯評 


세찬 바람 땅 휩쓸며

불볕더위 몰아내고


소나기 하늘 뒤집어

저녁 시원함 보내주네


이 때문에 모기 파리

모두 자취 감췄음에


저 멀리 가을 서리

기다릴 필요 없겠네


長風卷地驅炎暑, 暴雨翻空送晚凉. 只此蚊蠅俱掃跡, 不須迢遞待秋霜.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정태춘의 노래 「한 여름 밤」을 떠올린다.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2016년 스웨덴 학술원에서는 그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지목하면서 그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인정했다. 이는 싱어송라이터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최초의 사례일 뿐 아니라 시와 음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의미 깊은 평가였다. 미국에 밥 딜런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정태춘이 있다. 두 가수가 창작한 서정적이고 의미 깊은 가사는 그들의 개성적인 곡에 실려 시적 울림 이상의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 사회가 이제 제도적·정치적·거시적 영역의 민주화에서 일상적·개인적·미시적 영역의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다면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의미화하여 소중하게 보듬는 작업은 우리 사회의 바탕을 새로 다지는 매우 중요한 일일 터이다. 밥 딜런과 정태춘의 음악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이 부문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 시를 포함하여 송시를 읽을 때마다 자잘한 일상에 대한 의미화 작업이 매우 탁월함을 느낀다. 이 때문에 나는 송시를 읽으면서 정태춘의 음악을 떠올리는 일이 전혀 허황한 연상이 아니라고 여긴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한 여름 밤」과 함께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귓전에 맴돈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훠어이 훠이 훠이/ 훠어이 훠이 훠이/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김유정>


서가를 채운 책 중에는 대학시절에 사서 모은 게 일부나마 남아 있으니, 며칠 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가 한 켠에 저번 이삿짐 싸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뭉탱이로 묶인 그 빛바랜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도 먼지가 덕지덕지 끼어 있어 작심하고 책을 닦았다.

 

잦은 자취생활, 1986년 서울 유학 개시 이후 언젠가 내가 이사한 횟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18 비스무리한 숫자가 나오더니, 그처럼 잦게 주거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용케도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는 빛바랜 책들이다. 지금은 헌책방에나 가야 재수 좋게 만나게 되는 것들인데,

 

개중 한 책을 보니 1985년 글방문고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글방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동백꽃’이라는 단편소설집이라.

 

금광에 미쳐 요절한 강원도 춘천 출신 소설가요, 내 모교 전신인 연희전문에 입학했다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노라는 당돌한 선언과 함께 자퇴해 버렸다는 이 소심하기 짝이 없는 김유정(1908~1937)이 사망하기 2년 전에 집중적으로 발표한 단편소설 30여 편 중 10편 가량을 수록한 지라, 보아하니 책값은 1000원이라 했으니, 내 기억에 이 책은 아마도 1986년 연세대 구내서점에서 샀을 지니라.

 

종래 김유정이라 하면 나에게는 해학과 파토스(pathos)를 기묘하게 결합케 한 요상한 작가로 남아있다. ‘봄봄’으로 필두하는 그의 소설들은 한결 같이 찡헌 동막골 사투리에 문채가 무엇보다 개그스러우나, 그 개그스러움 뒤켠에는 항상 무거운 침전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침전물을 나는 파토스라 부른다.

 

여기 수록된 작품 중에 ‘소나기’가 있다.

 

감자로 주식을 해결하는 볼 짝 없는 생쥐 같은 강원도 농부 춘호. 그리고 그의 어리숙하고, 맨날 돈 마련해 오라는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그의 처. 돈 2원 마련해 보라는 춘호의 불호령에 그의 처는 마침내 옆 동네 쇠돌엄마네를 찾아가다 도중에 소나기를 만난다.

 

남편 묵인 하에 부자로 통하는 이 주사에게 몸을 주어 팔자를 고치고 있다는 쇠돌엄마네보단 인물도 반반한 춘호의 처였고, 실제 이태 전에 50안팎이 된 이 돈 많은 호색한은 춘호 처를 덮치려다 실패하기도 했으니, 이후 호시탐탐 춘호 처를 정복할 꿈을 꾸었으니,

 

이렇게 찾아간 그날 쇠돌엄마네 오두막집에는 주인은 없고 이 주사가 와서 머무는 지라, 바깥에서 비 쫄딱 맞고 기회를 엿보던 춘호 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 주사가 들어간 쇠돌엄나네 집을 향하여 이렇게 부른다.

 

“쇠돌 엄마 기슈?”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렸으면...”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좀 나갔지. 그러나 곧 올 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그럼 요 담에 오겠어유, 안녕히 계시유.”

“아닐쎄,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왜 이러서유, 이거 노세유”

“아니 잠깐만”

......

“너 열 아홉이지?”

“니에”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이런 집요한 수작을 거쳐 오늘 몸을 주고 돈을 꾸어 오리라 작심한 춘호 처는 마침내 쇠돌엄마 안방에 들어 앉아 大事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벗겨 놓은 춘호 처를 내려 보며 쉰살 이 주사가 하는 말은 분위기 깬다.

 

“얘, 이 살의 때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씬는단 말이냐?”

 

배꼽에 낀 때도 이 호색한의 욕망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춘호 처는 돈 2원을 내일 빌려 준다는 이 주사의 약속을 받고는 다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몸 대주고 돌아온 춘호 처를 기다린 건 어디갔다 이제야 돌아오느냐, 돈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다그침과 함께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리어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겁을 하여 살려 달라고 두 손을 빌며 개신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낼. 돈 낼 되유”

잠자리에 누운 춘호와 춘호 처. 두 부부는 이 지긋지긋한 농촌 생활을 청산하여 서울에 올라갈 수 있다는 환상으로 밤을 지샌다. 서울에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으나 들은 풍월은 많은 춘호는 아내에게 서울 생활을 이렇게 교육한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 사람에게 ‘꼬라리’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가고 볼 눈은 또릿또릿이 볼지라-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기소리로 ‘네,네’'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이 주사를 찾아 나서는 아내를 위해 춘호는 단장을 시킨다.

“아내가 꼼지락거리는 것이 보기에 퍽이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레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가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은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봐!’

하다가,

‘바루 곧 와, 응?’

하고 남편은 그 2원을 고히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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