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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41)


6월 27일 망호루에서 술 취해 쓰다. 다섯 절구(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五絶) 중 첫째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먹장구름 뒤집히나

산도 아직 못 가린 때


희뿌연 비 구슬처럼

나룻배로 튀어드네


땅 휩쓸며 바람 불어

갑자기 비 흩으니


망호루 아래 저 호수는

하늘인양 펼쳐졌네.


黑雲飜墨未遮山, 白雨跳珠亂入船. 卷地風來忽吹散, 望湖樓下水如天.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무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다. 소동파가 여름날 서호(西湖) 가 망호루에서 술을 마시다 갑자기 몰려온 먹장구름과 소나기를 보고 흥에 겨워 일필휘지로 이 시를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묘사 대상을 구름, 비, 바람, 하늘로 금방금방 옮기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특징을 너무나 생생하게 잡아냈다. 기구(起句)에서는 먹빛이 퍼져나가는 듯한 소나기 구름의 특징을 ‘번(飜)’으로 표현했다. 구름이 갑자기 뒤집히듯 치솟아 오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먹장구름은 아직 산도 다 가리지 못했다. 승구(承句)에서는 소나기의 굵은 빗방울을 튀는 구슬(跳珠)이라고 했고 그것이 어지럽게(亂) 나룻배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줌인 컷처럼 포착했다. 전구(轉句)에서는 땅을 휩쓸며 불어와 비와 구름을 사방으로 휘몰아가는 바람을 질풍 같은 속도로 묘사했다. 결구(結句)는 망호루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며 호수와 하늘이 하나의 색깔로 희뿌옇게 물드는 모습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냈다. 소동파는 이 시 뒤에 연작시 네 수를 더 썼지만 기실 그건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이 한 수만으로 더 손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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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33)


술 취해 잠자는 이(醉睡者)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도(道) 있어도 행하기 어려우니

취하는 게 더 낫고


입 있어도 말하기 어려우니

잠 자는 게 더 낫네


선생은 이 돌 사이에

술 취해 누웠으나


만고에 그 뜻을

아는 이 아무도 없네


有道難行不如醉, 有口難言不如睡. 先生醉臥此石間, 萬古無人知此意.


공자는 천하를 구제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그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천하를 방랑했다. 굴원은 직간으로 초 회왕(懷王)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결국 추방되어 멱라수에 투신·자결했다. 사마천은 이릉(李陵)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다가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보다 못한 궁형을 당했다. 도척은 천하를 횡행한 도적으로 백주에도 강도, 살인, 강간, 약탈을 일삼았지만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위(魏) 혜공(惠公)은 세자였던 이복 형 급자(急子)와 동복 형 수(壽)를 죽이고 보위에 올랐으나 온갖 호사를 누리며 제 명대로 살다가 죽었다. 진회(秦檜)는 악비(岳飛) 등 충신을 죽이고 씨를 말렸지만 진국공(秦國公)과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져 권세를 휘둘렀으며 사후에는 충헌(忠獻)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세상 일은 왜 이리 불공평한가? 하기야 사마천도 일찍이 이렇게 탄식했다. “천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邪非邪?)” 우리 주위에는 돈과 권력과 불법과 편법과 요행으로 출세한 자들이 오히려 “인생은 노력의 대가”라고 사기를 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천도(天道)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막가파식 만행과 타락으로 한평생을 허비해야 할까? 그러기에는 한 번뿐인 내 삶이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하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천도는 뒷전으로 밀쳐두자. 차라리 오늘만이라도 내 영혼을 위로할 소주나 막걸리 한 잔을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그동안 천하대사는 너무 많이 울궈먹었다.



한시, 계절의 노래(93)


아이를 씻기고 끄적이다(洗兒戱作)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모두들 아이 기르며

똑똑하기 바라지만


똑똑하게 살다 나는

일생을 그르쳤네


내 아이는 어리석고

둔하기만 바라노니


재앙도 난관도 없이

공경대부에 이르리라


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 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벌써 24년 전 일이다. 아내가 큰 아이 출산을 앞두고 애기 옷을 사왔다. 그 손바닥 만한 옷을 빨아서 빨랫줄에 널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배냇저고리를 보고 태산처럼 밀려드는 책임감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고 올라왔다.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 우리 작은 셋방에 데려와서 아내는 울었다. 그 가녀린 생명을 모두 서툰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이를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초보 엄마 아빠는 아이 키우기를 시작했다. 아이 목욕을 시킬 때면 한 없이 부드러운 아이 살결을 만지며 생명의 신비함에 감격했다. ‘망자성룡(望子成龍)’이란 말이 있다. 자식이 자라 용과 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말이다. 어느 부모 할 것 없이 자식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정직한 사람은 고통 받고 간사한 자는 출세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사마천(司馬遷)이 “천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邪非邪?)”라고 탄식했을까? 이 시 작자 소식도 여러 차례 폄적되어 평탄하지 않은 관직생활을 했다. 그가 아이를 씻기며 소원을 빌고 있다. “이 아비처럼 잘난 체 하지 말고 어리석고 둔하게 살면 아무 고난 없이 공경대부에 이르리라”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께서 정한수를 떠놓고 조상신과 삼신께 올리던 비나리가 생각난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해주시옵기를...”


한시, 계절의 노래(77)


서림의 벽에 쓰다[題西林壁] 


 송(宋) 소식(蘇軾) / 김영문 選譯評 


가로 보면 고개 되나

옆으로 보면 봉우리


원근 고저가

각각 다른 모습이네


여산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이 몸이 이 산에

머물기 때문이네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앞에서 읽은 이백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와 곧잘 비교되는 시다. 소식은 시(詩)·사(詞)·서(書)·화(畵)·악(樂)에 모두 뛰어났으며, 유(儒)·불(佛)·도(道)에 능통했다. 도달한 경지가 하도 광대하고 호방하여 이백도 소식을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이 시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산의 아름다움을 꾸밈없이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리 꽂힌다”는 이백의 시와 막상막하의 경지다. 하지만 궁극적 지향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는 운치와 기상을 중시하므로 이백은 눈에 보이는 여산의 아름다움을 천의무봉의 필치로 묘사했다. 그 뿐이다. 반면 송시는 이치와 함의를 추구하므로 우리는 이 시 형상 뒤에 숨은 의미를 음미해봐야 한다. 각도나 원근 고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는 사상체계는 무엇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도가(道家)의 상대주의다. “현실 속 진리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지연신재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은 매우 낯 익은 구절이다. 당나라 가도(賈島)의 시에 “이 산 속에 계실 터이나(只在此山中)”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것을 비틀었다. 가도의 시에서는 구름 깊은 곳에 있는 은자의 거처를 알 수 없다고 하여 속세 너머의 어떤 경지를 암시했다. 그러나 소식은 자신이 산속에 있기 때문에 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구름 속에 있는 은자도 그 어떤 경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도사나 선사도 청맹과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해답은 「적벽부(赤壁賦)」에 있다. 소식은 '저절로 그러한 세계(自然)'에 녹아들어 그 가없는 흐름에 몸을 내맡곁다.



우미인(虞美人)


  북송(北宋) 소식(蘇軾) / 홍상훈 옮기고 김태식 약간 손봄  


술잔 들고 멀리 하늘 가 달에게 권하노니

부디 가득 차서 이지러지지 말기를 

술잔 들고 다시 꽃가지에 권하노니 

또한 부디 오래도록 피어 어지러이 떨어지는 일 없기를


술잔 들고 달빛 아래 꽃 앞에서 취하노니  

세상사 영고성쇠 묻지 마오

이 즐거움 아는 이 몇이나 될까?

술잔 마주하곤 꽃을 만났는데 들이키지 않는다면 어느 때를 기다릴까


持盃遙勸天邊月, 願月圓無缺.

持盃更復勸花枝, 且願花枝長在, 莫離披.

持盃月下花前醉, 休問榮枯事.

此歡能有幾人知, 對酒逢花不飲, 待何時.





적벽부(赤壁賦) - 소식(蘇軾)


임술년 칠월 보름 하루 뒤, 내가 손님과 함께 적벽(赤壁) 아래 배 띄우고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 하나 없이 잔잔했다. 술잔 들어 손님한테 권하면서 [명월(明月)]이란 시도 읊고, [요조(窈窕)]란 시도 읊어본다. 이윽고 동쪽 봉우리 위로 달이 떠올라 북두성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백로는 물결 가로지르고, 물빛은 저 멀리 하늘과 닿았네. 일엽편주 가는대로 놓아두니 끝없는 만경창파 넘어가고, 휘휘 허공으로 날아올라 바람 부리면서 멈출 곳 모르고 가는 듯, 훨훨 이 세상 벗어나 홀로 서서 날개 돋아 신선이 되는양 했네. 그리하여 술 한 잔 마시니 매우 기분이 좋아져 뱃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네.


계수나무 노를 젓세, 상앗대는 목란이라.

허공 치고 오르는 듯, 달빛 뒤로 흘러가네.

아득해라 그리운 맘, 하늘 저쪽 그리운 님.


퉁소 잘 부는 객이 있어 노래 맞춰 연주로 화답하니, 그 소리 삘릴리 삘릴리,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듯, 여운은 실처럼 끊임없이 맴돌아,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교룡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 한 척 띄워 고기잡는 과부 흐느끼게 하네.


나는 숙연해져 옷깃 여미고 바르게 앉아서 객한테 물었다. “퉁소 가락이 어찌 그리 구슬프오?”


객이 대답했다. “‘밝은 저 달 숨은 별들, 남쪽으로 날아가는 까치와 까마귀...’ 이는 바로 조조가 읊은 시 아니오! 서쪽 저 곳이 하구(夏口)요, 동쪽 저 곳이 무창(武昌)이러니, 산과 강이 푸릇푸릇 파릇파릇 뒤얽힌 곳, 여긴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대패해 곤경에 빠진 그 곳 아이오! 그때 조조가 형주(荆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을 무너뜨려, 물결 따라 동쪽으로 내려올 때, 선단은 앞뒤가 천 리요, 깃발이 하늘을 덮었다지요. 술 걸러 강을 바라보며, 상앗대 걸쳐놓고 시 읊을 땐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라! 하지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하물며 나와 소 선생은 강가에서 고기잡고 나무하고, 고기나 새우와 짝하고 노루나 사슴과 벗하며 지낼 뿐이오. 일엽편주 띄워놓고, 표주박과 잔 들어 서로 술만 권할 뿐이오. 천지에 이 하루살이같은 인생 잠시 맡겨 살아가니, 마치 끝없는 바다에 좁쌀 한 톨 같소. 내 인생 잠깐인 것이 슬프고, 저 장강이 끝없이 흐르는 것이 부럽소. 신선 옆에 끼고 우주를 노닐고 밝은 달 품고 영생 누리는 일은 느닷없이 얻지 못함을 알기에, 슬픈 바람에 퉁소 여운을 실어보냈을 따름이오.” 


내가 말했다. “손께서도 저 물과 달을 아시잖소! 물은 이렇게 흘러가건만, 지금까지 다 흘러간 적이 없소. 달은 저렇게 차고 기울건만, 더 커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천지 어느 것도 일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과 나는 끝없이 영원하니 무엇이 부럽겠소! 천지 사이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주인 있어, 내 것이 아니면 털 한 오라기라도 가질 수 없소. 오직 강가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 산 사이에 떠오른 밝은 달만이 내 귀에 들어와 좋은 소리 되고 내 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 되어, 아무리 가져도 막지 않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야말로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는 조물주의 창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오.”


손님이 기뻐 웃으며 잔 씻어 다시 술을 채우니 안주는 이미 다 떨어지고, 술잔과 접시가 여기저기 널렸네. 배 위에서 서로 베고 누워 동쪽 하늘이 이미 밝아오고 있는 줄도 몰랐다.


【원문】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游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横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 愀然, 正襟危坐, 而問客曰:“何爲其然也?” 客曰:“‘月明星稀, 乌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郎者乎? 方其破荆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裏,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舉匏樽以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托遺響於悲風.” 


苏子曰:“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虽一毫而莫取. 惟江上之清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既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既白. 


홍승직 교수 옮김을 토대로 해서, 내가 약간 손질한 버전이다. 



  1. 연건동거사 2018.04.16 16:20 신고

    좋은 번역입니다!!! 그런데 역시 한문으로 읽을때의 운율이 한글 번역에서는 느낄수가 없어 아쉽군요.

    하지만 번역 실력 탓은 아닙니다. 한문 적벽부를 한글로 옮길떄 어쩔수 없는 부분인듯요.

  2. 연건동거사 2018.04.16 16:21 신고

    적벽부는 제가 좋아 하는 글입니다.

  3. 보미 2018.04.17 23:09 신고

    GOOD 좋은글 감사!

전통시대에도 그 비스무리한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었다. 고려시대 의천을 보면 이 특권이 조금은 드러난다. 의천은 원래 밀입국자였다가 宋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송 두 나라 조정에 의해 외교사절단으로 급조되었다. 그의 宋 체재기간은 많아봐야 14개월, 대략 만 1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 다른 고려 외교사절단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우리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는 증빙은 어떻게 하는가? 

당시에 아그레망이 있을리는 없다. 귀국 이후 의천은 송 체재 기간 스승으로 섬긴 정원법사라는 승려가 입적했다는 말을 듣고는 제자들을 조문단으로 파견한다. 한데 하필 재수없게도 입항하는 쪽 지방장관이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라면 못 잡아먹어 환장한 그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 조문단은 가는 곳마다 려 예빈성에 발행한 외교관 신분증을 제시했다. 이 신분증으로 좀 도가 지나치게 들쑤시고 다닌 모양이다. 이 꼴을 보다 못한 소식이 열이 엄청 받는다. 

저것들을 잡아다가 족을 치고 싶은데 외교관이라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러기는커녕 외교관이라 그들을 접대하는 일이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 전통시대 외교관 특권 문제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요근래 슬슬 피어나서 생각난 김에 한마디 적는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줄에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번이고 소피 마르쏘 책받침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중 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利於病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이는 아마 명심보감에 나온 구절일 터이다)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五言古詩 하나 외지 못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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