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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수염 선수권대회' 참가자 중 한 명(연합DB/원출처EPA)



한시, 계절의 노래(192)


장난으로 짓다(戲作)


[宋] 소소매(蘇小妹) / 김영문 選譯評 


한 무더기 시든 풀이

입술 사이로 뻗어 있고


수염이 귀밑머리 이어져

귀조차 종적 없네


입꼬리 몇번 돌고도

입 찾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털 속에서

소리가 전해오네


一叢衰草出唇間, 鬚髮連鬢耳杳然. 口角幾回無覓處, 忽聞毛裏有聲傳. 


북송의 소동파(蘇東坡: 蘇軾)는 중국 전체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대문호다. 앞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그의 부친 소순(蘇洵)과 그의 아우 소철(蘇轍)도 소동파와 함께 당송팔대가에 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국 민간 전설에는 소식의 누이가 등장한다.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소식은 3남3녀 중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형, 큰 누나, 둘째 누나는 모두 요절했고, 소식은 그보다 한 살 많은 셋째 누나, 그리고 아우 소철과 함께 성장했다. 이름이 소팔낭(蘇八娘)으로 알려진 소식의 셋째 누나는 딸 중에서 막내였기 때문에 소소매(蘇小妹)로 불렸고, 이로 인해 중국 민간에서는 소소매가 소식의 누이동생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소소매는 부친 소순, 아우 소식,소철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소양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원대 오창령(吳昌齡)의 잡극 『동파몽(東坡夢)』, 명대 풍몽룡(馮夢龍)의 소설 『성세항언(醒世恒言)』, 청대 이옥(李玉)의 전기(傳奇) 『미산수(眉山秀)』에 모두 상큼하고 재기발랄한 캐릭터로 소소매가 등장한다. 그 소소매가 수염과 구레나룻이 귀까지 덮인 남동생(민간에서는 오빠)을 놀리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위의 시가 바로 그것인데 역시 누나보다는 깜찍한 여동생이 지었다고 해야 시적 효과가 극대화 되는 듯하다. 잡초 같은 털 속에서 갑자기 소리가 터져 나온다니 은근히 재미있다. 가히 우열을 매길 수 없는 오누이라 할 만하다.


정유년에 유구국왕 사신이 우리한테 왔다. 성종이 경회루에서 접견했다가 (유구국 사신이) 객관으로 물러나서 통사通事(통역관)에게 말하기를 "귀국에 와서 세 가지 장관壯觀을 보았다고 했다. 통역관이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사신이 말했다. 

"경회루 돌기둥에 가로세로 그림을 새겨놓아 나는 용이 거꾸로 물속에 그림자를 지어 푸른 물결과 붉은 연꽃 사이에 보이기도 하고 숨기도 하니 이것이 한 가지 장관이고, 영의정 정공鄭公의 풍채가 준수하고 뛰어나며 백옥빛 같은 수염이 배 아래에까지 드리워 조정에서 빛이 나니 이것이 두 번째 장관입니다. 예빈정禮賓正이 매양 낮 술잔치에 참석하여 큰 술잔을 한없이 시원스레 마시면서 한 번도 어려워하는 빛이 없으니 이것이 세 번째 장관입니다."

그때 이숙문李淑文이 예빈부정禮賓副正으로 있었다. 유구국 사신이 말한 이는 이숙문이었다. 친구들이 듣고는 크게 웃었다. 

성현의 <용재총화> 권 제7에 보이는 일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 혹은 추측할 수 있으니, 첫째, 이 무렵 조선 전기 경회루는 온통 화려한 그림으로 떡칠을 했으며, 특히 용 그림이 인상적이었음을 안다. 아마도 기둥 장식으로 화려한 용 그림을 쓴 게 아닌가 한다. 그래야 그 용 그림이 물속에 비치기 쉬웠을 테니 말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중건한 지금 경회루 기둥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두 번째, 이에서 말하는 영의정 정공이란 바로 정창손을 말한다. 영의정만 세 번을 역임한 이로써, 수양대군에 협력해 출세가도를 달렸다. 더구나 그의 사위 김질이 고변한 소위 사육신에 의한 단종 복위 쿠데타 계획을 사전에 일망타진했으니, 그 공로는 말해서 무엇하랴. 한데 그는 청창손은 외국인에게도 그 수염이 참으로 멋드러지게 보였나 보다. 수염이 배꼽까지 혹은 그 아래로 내려왔으니 말이다. 이리 수염이 무성한 사람은 대체로 원래 털이 많은 종족이거나, 혹은 대머리인 경우가 많은데, 정창손은 어떤 사례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 외국 사신 접대를 하는 주무관청은 예조였다. 요즘의 외교부 기능이 있었다. 한데 이때 사신 접대단 넘버 투인 이숙문은 술고래였다. 우연이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술을 잘 먹는다 해서, 술상무로 조선 조정에서는 이숙문을 내세운 것이다. 아마도 그는 조선 국왕이나 장관이 마셔야 하는 술을 홀짝홀짝 다 받아마셨을 것이다. 

주는 족족 받아먹고도 끄떡 없었으니, 그는 술고래였다. 그때라고 별 수 있는가? 술상무가 필요했다. 술상무는 그것을 요구하는 조선왕조에서 출세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저런 술고래는 대체로 장수하지 못한다. 이숙문 역시 그러했는지는 내가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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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인다. 지금 사가정 필원잡기를 살피니 그 제2권에 이 이야기가 있다. 

요즈음 유구국(琉球國)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조선에 이르러 세 가지 장한 일을 보았는데, 경회루(慶會樓)라 이르는 누각 돌기둥을 용의 문채로 둘렀는데, 매우 기이하고 웅장하였으니, 첫째로 장한 일이요, 압반재상(押班宰相 반열 선두에 선 재상)이 있어 긴 수염이 눈같이 희고 풍채가 준수하며 노성한 덕이 있으니 둘째로 장한 일이다.” 하였으니, 이는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인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을 가리키는 말이요, 또 “사신을 대하는 관원이 큰 술잔으로 셀 수 없이 대작하여 한 섬의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셋째로 장한 일이었다.” 하였으니, 이는 성균관 사성 이숙문(李叔文)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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