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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을 논점이라 할 수도 있고, 좀 더 거창하게는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을 겨냥한 무수한 비난 중 하나가 이 신문 저 신문 같은 내용이라 하는데, 이는 피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더 정확히는 같은 주제 같은 사안을 다룰 뿐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라, 같은 소식은 없다. 

어제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그 성과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했거니와, 이를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 했으니, 이를 발판으로 삼은 합의 내용을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공표했다. 이 사안을 두고 언론이 어찌 바라보는지, 편의상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고 평가하는 조선일보와 그 반대편 경향 한겨레 두 신문을 봐도 그 다양성을 알 만한다. 이른바 진보 계열로 현 집권세력과 정치 지향점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그 공동선언 자체에 비중을 두어, 그것이 얼마나 민족사적인 의미에서 중대성을 지니는 사건인지를 1면 전체를 털어내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 두 신문 사이에도 적지 않은 간극이 있어, 조선과 한겨레를 극단에 놓는다면, 경향은 한겨레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화면 기준 오른편에 위치한다. 

냉혹히 평가하자면, 한겨레는 지금의 청와대 혹은 집권 민주당과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 선언문 자체를 그대로 전재하면서, 더구나 그것으로써만 1면을 가득 채우고는, 그 의미를 부여하기를 "'핵·전쟁 없는 한반도' 남북 사실상 종전선언"이라 했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청와대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저 말을 지금의 집권 권력이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내지를 수 없는 형편이지만, 속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말을 속시원히 질러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에 견주어 경향신문은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나, 상대적으로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려 한다.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을 든 사진을 게재하면서, 그 아래에다가는 공동선언문 원문을 수록했으니, 그러면서도 제목으로는 "북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 명시…김정은, 서울 온다"는 제목을 뽑아, 이번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어 가지를 적출해 적기했다.   


이들 여권 성향 언론에 견주어, 지금은 야권 성향일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는 아예 대놓고 드립다까기 전법을 구사한다.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말 한 마디에 국방을 포기했다는 논리를 동원하니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고자 조선일보는 그에 대한 야권의 평, 곧 "사실상 안보 포기'"라는 말을 동원했다. 이런 그들이 보기에 저 남북공동선언은 휴지조각이나 같거나 혹은 폐기되어야 하는 약속이다. 그 공동선언문 원문을 수록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나는 본다. 

조선일보 1면 배치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환호하는 평양시민 15만명 앞에 문통과 김정은 둘이 손을 맞잡고 선 장면을 담은 사진을 수록했다는 사실이다. 언뜻 선동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겨레가 가장 강할 듯한데, 현재의 역학 구도에서 그것이 가장 강한 언론이 조선일보다. 내 보기에는 그렇다. 이런 선동성은 야권 성향일 수록 두드러지기 마련인데, 언제나 밀려난 권력 혹은 그것을 잡아야 하는 잠재 권력이 정권을 탈취하는 지름길은 선동이기 때문이다. 이에서 조선일보는 한 치 어긋남이 없어, 저 사진을 실은 이데올로기는 이를 통해 보수층을 자극하려는 데 있다고 나는 본다. 



그렇다면 저런 여러 시각들을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버무려야 하는가? 나는 외신의 시각, 한민족 일원이 아닌 세계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이번까지 세 번에 이르는 만남에서 어찌 이룩한 성과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남북한 당국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선 조선일보와 같은 시각으로 시종일관 깔아뭉개서도 더더욱 곤란하다. 한 발 떨어져서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이번에 이르기까지 진전사항들을 내가 하나하나 간평하기에는 버겁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적마다, 나는 되도록이면, 주요 외신들이 이 사태를 어찌 바라보는지를 점검하면서, 내가 분석한 그것과를 비교해 보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신이 소위 객관의 시각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다만, 한반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을 통해 내가 미쳐 보지 못한 시각들을 교정할 수도 있고, 나아가 보강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조선일보의 시각, 한겨레 경향의 시각은 모두 거부한다. 그건 내 눈깔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의 시각에서도 얻을 바가 적지 않다는 점만을 적기해 두고 싶다. 

  1. 무간 2018.09.20 21:47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도덕경" 키워드로 검색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도덕경 주서를 번역출간하는 1인 독립출판 "무간"입니다. 여유 되실 때, 한번 둘러봐 주세요! ^^ http://cafe.daum.net/SpringandStarinJiriM

  2. 한량 taeshik.kim 2018.09.20 22:12 신고

    도덕경 관련 포스팅이 있던가요? ㅎㅎ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121)


여름날 산속에서(夏日山中)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흰 깃 부채 게으르게

흔들거리며


푸르른 숲속에서

발가벗었네


두건 벗어 바위벽에

걸어놓고서


맨 머리로 솔바람을

쐬고 있노라.


懶搖白羽扇, 裸體靑林中. 脫巾掛石壁, 露頂灑松風.


더위 탓을 하지만 일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시선(詩仙) 이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어가 모두 구속을 벗어던진 신선의 경지를 보여준다. 맨 몸과 맨 머리는 속세의 의관(허례, 가식)을 벗어던진 신선의 모습이다. 누구의 눈길도 받지 않는 푸른 숲속, 솔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 옆에 있는 바위 절벽에 벗은 의관을 걸어두고 맨몸에 깃털 부채를 부치고 있으면 그곳이야 말로 ‘인간을 떠난 신선 세계’에 다름 아니다. 여름날 더러 계곡을 따라 등산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이목이 빈번한 곳에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기는 분들이 있다. 일탈이 아니라 소위 ‘알탕’이다. 알탕 삼매경에 드신 분은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분이 ‘알탕’하는 분의 몸매를 아름답게 여기지는 않는다. ‘알탕’을 하든 ‘거풍’을 하든 혼자만의 선계를 즐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백의 경지에 다가가는 일일 터이다. 자신의 외로움에 다가서야만 타인의 외로움에 공명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피서는 단순한 더위 식히기가 아니다. 신선이 되려는 분들은 피서의 급을 높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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