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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02일 금요일 제467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를 망가뜨리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경주를 역사문화유산 도시로 개발하려 한다. 이에 따라 황룡사를 ‘복원’하겠다고 나서자 문화재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09월 02일 금요일제467호


일제강점기 이후 경주를 지탱한 힘 중 하나가 학생들의 수학여행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시작해 그 정권이 끝나는 시점까지 추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경주를 역사도시를 넘어 관광도시로 한 차원 높인 계기가 되었다. 이 개발계획을 통해 경주에는 비로소 보문단지가 생겨났다. 국제회의도 개최하고 골프장까지 있는 관광단지 말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지=경주’ 등식이 깨지자 경주는 허덕이기 시작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하면서 경주는 급격히 동력을 상실했다. 파르테논과 콜로세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이웃 나라 만리장성과 진시황제 병마용갱 앞에 경주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첨성대는 뒷전으로 밀렸고, 경주 시내의 무수한 신라 시대 거대 무덤들은 그보다 몇십 배 크기인 피라미드 앞에 주눅 들고 말았다. 경주는 더 이상 수학여행의 도시가 아니었다. 경주에는 암흑과도 같은 나날들이었다. 천년 왕국 신라의 도읍이라는 경주에 볼거리가 무엇이 있느냐는 지역사회의 볼멘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경주시가 주축이 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은 그렇게 누적된 불만들이 한군데로 응축되어 폭발한 결과물이었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 이 계획에 따르면 향후 경주는 2035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역사문화유산 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경주 사람들은 이 정도 투자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 뒤에는 문화재에 짓눌린 개발 욕구 억제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비록 좌절되기는 했지만,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려 한 경주경마장 건설계획도 보상 측면이 강했으며,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해 유치를 결정한 것도 그동안 쌓인 피억압 심리의 표출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신라왕경 종합계획은 대선 공약사업 중 하나다. 이 계획 역시 경주 지역사회 여론 무마용이라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79년 4월 박정희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박근혜 영애(앞줄 왼쪽)와 함께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유람선에 시승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1979년 4월 박정희 대통령(앞줄 오른쪽)이 박근혜 영애(앞줄 왼쪽)와 함께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유람선에 시승해 둘러보고 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를 통한 경주 역사문화유산도시 재생사업이 박 대통령 자신의 구상에서 나왔는지 어떤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주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라든가 이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진행 중인 경주 월성 발굴 현장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직접 찾기도 했다는 점 등을 볼 때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이 큰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앞선 글에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재 현장에는 세 번 참석했다고 썼다(<시사IN> 제462호 ‘아버지가 탐닉한 경주, 딸이 다시 찾은 까닭’ 기사 참조). 숭례문 복구 완공식 참석과 월성 발굴 현장 방문, 아산 현충사 참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중요한 사건 하나가 빠졌다.

2013년 12월2일, 박 대통령은 안동에서 도지사의 경북도 업무보고를 받고 곧바로 헬기를 이용해 보문관광단지에 도착해 오후 1시30분 석굴암을 찾아 10여 분간 본존불을 참배하고 둘러봤다. 그해 5월에 완공한 숭례문이 부실로 복구되었다 해서 한창 전체 문화재 관리가 부실 논란을 일으킬 때였다. 석굴암 역시 대좌(臺座)에 균열이 가고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만큼 위험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석굴암을 둘러본 뒤 박근혜 대통령은 밖에서 기다리던 관람객들에게 “걱정이 돼서 왔는데 설명을 들으니까 석굴암이 생각보다는 보존에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걱정이 많이 되셨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방문은 박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문화재에 대한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균열 논란을 빚은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보았다. 
ⓒ연합뉴스
2013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균열 논란을 빚은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보았다.

애착이 더 각별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일 수 있다. 문화재 애호가 유별났던 박정희의 딸이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적극적인 행보일 수 있다. 

한데 이 방문을 경주 지역 인사들이 지나칠 리 만무했다. 대통령을 향한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예컨대 경주가 지역구인 정수성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황룡사 복원과 쪽샘지구 정비 등을 건의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 가족이 경주에서 찍은 사진첩을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경주 지역 인사들의 움직임을 단순히 대통령에 대한 ‘구애’라고 폄훼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이들에게 경주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절박했으며, 그러한 관심은 곧 그들이 꿈꾸는 경주 역사도시의 건설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버금가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이 박근혜 대통령의 석굴암 방문을 계기로 결정적인 탄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경주 지역 인사들의 건의에 박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건의 내용을 뜯어보면 대통령이 결코 반대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황룡사를 복원하고 고(古)신라 시대 고분 밀집지역인 쪽샘지구를 정비하겠다는데 이를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하겠는가? 그렇게 하라는 직접 지시는 안 했을지 몰라도, 최소한 잘해보라는 말 정도는 했을 것이다.

문화재위원회, “복원이 아니라 역사 왜곡일 뿐”

실제로 이후 이 사업의 진행 상황을 보면 대통령의 석굴암 방문이 경주를 ‘개조’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게 했음은 분명하다. 저 종합기본계획은 정수성 의원과 최양식 시장 주도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를 주도하는 경주 지역 인사들이 그리는 경주 그림이 문화재청과 그 주변 문화재위원회(이하 문화재위)가 구상하는 경주 그림과는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예컨대 정수성 의원은 지금은 터만 남은 황룡사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그 터에 가면 볼거리가 아무것도 없으니 유적의 ‘가시화’를 위해서라도 전체 높이가 80m에 달했다는 목탑도 세우고, 그 뒤쪽으로 금당도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규모로 ‘재건’하며, 이들 전면에다 내부로 통하는 남쪽 대문인 중문(中門)도 만들고, 담장도 둘러쳐서 신라 시대 황룡사라고 할 만한 품격을 갖춘 볼거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최양식 경주시장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재위가 이를 용납할 리 만무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복원이 아니라 역사 왜곡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원한 황룡사, 혹은 안압지 일대 동궁(東宮)은 21세기 상상의 역사 세트장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문화재위는 경주시가 사업 추진 대상으로 삼은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강조한다. 세계유산의 존재 기반이 되는 세계유산협약은 유적의 진정성(authenticity)을 강조한다. 이 진정성이라는 가치로 본다면 복원하는 황룡사나 동궁은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위가 복원을 포함한 경주시의 신라왕경 종합정비계획을 접수조차 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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