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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 궤장, 경기도박물관, 1668년> 


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武王) 上에는 이 왕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늙었음을 이유로 정년퇴직하겠다고 했지만, 윤허하지 아니하고 궤장을 하사했다(春正月 金庾信請老 不允 賜几杖)"고 한다. 


궤장이란 등받이 의자인 안석(案席)과 지팡이라, 늙은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하사품이다. 이를 하사받으면 그런 신하는 예외없이 대궐에 들어서면서 내리지 않아도 되고, 그 문을 들어설 때는 허리를 굽히지 아니해도 된다. 물론 이런 영광이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궤장은 곧 은퇴의 의미이기도 했으니, 세대교체를 위해 이제 그만 골방 늙은이로 물러나 있으라는 완곡한 뜻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왕조시대에 정년퇴직은 70세였다. 이는 이미 《예기(禮記)》에서 규정한 것으로, 이것이 엄격히 지켜진 때도 있고, 그렇지 아니한 때도 있어, 운용은 순전히 그 시대 관습을 따랐다. 고려시대를 보면, 대체로 이 규정이 엄격해 아무리 권력이 막강한 신하라 해도, 나이 70이 되어도 물러나지 않는다 해서, 지탄을 받기도 하고, 물러나라는 구호에 직면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이게 급격히 무너졌다. 황희 맹사성은 직업이 정승이라, 쭈구렁방탱이가 될 때까지 주구장창 영의정 좌의정을 해 먹었으며, 송시열 같은 이는 팔순 넘도록 해먹었다. 


<이경석 궤장, 경기도박물관, 1668년> 


신라시대에는 이 70세 정년퇴직 규정이 어떠했는지, 그 면모를 엿볼 자료가 거의 없지만, 그것을 추정할 만한 것들이 제법 있으니, 중기 이래 하대에 이르기까지 중시라는 실제의 수상 역할을 하는 관료가 늙음을 이유로 물러났다거나, 물려나려 했다는 기록이 더러 보이는 것으로 보아, 70세 퇴직이라는 관습법이 강력히 작동했음을 엿본다. 


내가 이 70세 정년 퇴직 문제는 별도로 이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거니와, 그 연장선으로 저 김유신 정년퇴직 쇼는 관심을 끌거니와, 익히 알려졌듯이 김유신은 595년생이다. 김유신이 사표를 제출하고, 이제 연금이나 타먹겠다고 공식 표명한 시점을 잘 봐라. 654년 정월이다. 아마도 김유신은 정월 초하루에 열린 임금 주재 조회에서 "전 이제 물러날라요. 물러나게 해 주이소. 마 이젠 힘들어 죽겠소. 이제 젊은 아들 좀 시키소. 인문(仁問)이도 있고, 에, 좀 그렇기는 합니다마이, 내 동생 흠순이도 있고, 이젠 쟈들 좀 시키소"라고 말했을 것이다. 


70세 정년퇴직이 정확히 언제인가? 70세가 되는 그날인가? 아니면 70세가 끝나는 그해 연말인가? 아니면 70세가 된 그해 정월인가? 


김유신을 보면, 70세가 된 그해 정월이었다. 단 그때는 만(滿)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양놈들 기준으로 한다면 만 69세 되는 해, 혹은 만 68세 어느 시점, 그해 정월을 기해서 퇴직했음을 안다. 


정년퇴직과 관련한 궤장 중에 사진 두 장으로 소개한 조선시대 중기 유물이 대표적이니, 경기도박물관에 기탁된 이 궤장은 1668년 현종이 영중추부사 이경석한테 하사한 것이다. 이를 보면 의자는 접이식이며, 지팡이는 4점 중 한 점이라, 그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살포라 해서 실은 그 실제 모델은 삽이다. 삽질할 때 쓰는 그 농기구 삽 말이다. 


삽중에서도 이런 살포는 실은 논에 물대기 할 때 사용한다. 물꼬를 튼다는 말이 있거니와, 이 물꼬란 논에 물을 대는 통로를 열어 물길을 낸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찌하여 상징물로 변해서 원로대신한테 내리는 하사품으로 변질했으니, 그 전통을 보면 이미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도용陶俑에 적지 않게 살포를 앞세운 모습들을 본다. 


한반도를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적지 않은 살포가 주로 무덤에서 출토한다. 5세기 무렵 한성백제시대 지금의 공주 일대에 웅거한 지방세력 공동묘지임이 확실한 공주 수촌리 무덤에서는 엄청시리 큰 살포가 나왔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한성백제 중앙정부에서 왕이 내린 하사품이다. 


이 살포가 지닌 상징성에 대해 국내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재직하다가 국민대 국사학과에 자리가 나자 잽싸게 토낀 김재홍이 쓴 전론이 있다고 기억한다. 살포에 대해서는 내가 아마 전론專論을 쓸 날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정년퇴직이 반려된 김유신은 이로부터 10년 뒤인 673년, 79세로 沒하기까지 지금의 경주시내를 저런 것으로다가 삽질하고 다녔다. 그나저나 뇐네들이 들고다니기엔 너무 무거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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