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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 참말로 파란(波瀾)이 만장(萬丈)한 삶을 산 중국 북제(北齊) 안지추(顔之推·531~591)라는 사람이 남긴 不朽한 책으로 《안씨가훈(顔氏家訓)》이 있으니, 내가 이 책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상찬(賞讚)을 거듭한 바 있거니와, 이곳 '치가(治家)' 편에 실린 다음 한 토막 이야기는 흡사 작금 한국 사회 일단면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낼 정도다. 다름 아닌 고부간 갈등을 다루었으니, 그 옮김과 원문은 아래와 같다.


부인은 본래 성질이 대체로 사위는 싸고돌되 며느리는 학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위를 싸고돌면 형제(처남)에게서는 그 사위를 원망함이 싹트고, 며느리를 학대하면 자매(시누이)들의 고자질이 횡행하게 되니 이렇게 되면 여자는 출가하든 안 하든 모두가 그 집안에 죄를 얻게 되니 어미야말로 실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셈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속담에 “늙은 시어미는 잔소리를 반찬삼아 먹는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는 바로 그에 부합하는 말이다. 가정마다 있는 폐단이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婦人之性, 率寵子壻而虐兒婦. 寵壻, 則兄弟之怨生焉; 虐婦, 則姊妹之讒行焉. 然則女之行留, 皆得罪於其家者, 母實爲之. 至有諺云: 「落索阿姑餐.」 此其相報也. 家之常弊, 可不誡哉!


이 《안씨가훈》 역본으로 나는 도합 3종을 갖고 있으니, 유동환 옮김, 홍익출판사 판(1999)을 필두로 임동석 옮김 고즈윈 판(2005)을 거쳐 김종완 옮김 푸른역사 판(2007)이 그것이다. 이들 역본을 대강 훑어본 결과 김종완은 유동환 판을 많이 참조하지 않았냐 하는 느낌을 주며, 임동석 역주본 또한 그 참고문헌에 유동환을 들었듯이 선행 역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다만 맨 마지막으로 나온 김종완 역본은 당시에도 내가 참말로 의아했던 것이 이들 두 가지 선행하는 국내 역본(유동환 역본에는 축약이 있다), 혹은 완역 역주본이 있음에도 전혀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니, 그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심리, 혹은 강박이 작동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가 참말로 알고 싶다.


김종완이 유동환을 많이 참조했다는 사실은 위에 든 예화의 번역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거니와, 문제가 되는 부분은 ‘落索阿姑餐. 此其相報也’라는 구절에 대한 번역이다. 김종완은 유동환과 마찬가지로 이 대목을 “시어머니는 잔소리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다. 바로 여기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고 했다는 것이 그 증좌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대해 임동석 번역은 판이하게 달라 “심지어 속담에 ‘늙은 시어미는 찬밥 신세’라 하였으니, 이는 바로 그에 상응한 보답인 것이다”고 옮겼으니, 이 대목이 《안씨가훈》의 해당 조목 주제와도 너무나 밀접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동환, 김종완을 따르느냐(혹은 그렇게 이해하느냐), 임동석을 따르냐에 따라 전체 문맥도 완전히 변화한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이해 중에 어느 것이 타당한가? 나로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다만, 유동환과 김종완 옮김이 상대적으로 비약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니, 그 ‘落索阿姑餐’ 말 자체에는 잔소리를 반찬삼아 먹는다는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阿姑’가 위진남북조시대에 자주 보이는 시어미에 해당하는 말임은 분명하지만 어찌하여 저 말이 저렇게 해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위 조목 이야기는 작금에는 중국보다는 이 대한민국에서 열렬한 찬사를 얻으내리라는 점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아! 고부간 갈등, 그것은 본능인가? 


(첨부사진은 고부간 갈등을 다뤘다는 'B급 며느리' 영화 포스터라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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