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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임금 화성 행차

                      


《악부시집樂府詩集》 卷98 신악부사新樂府辭9에 수록됐다. 백거이 신악부 50수 중 하나다. 우리 천자님이 구중궁월에만 박혀 계시니 이 얼마나 고마우신가? 라고 노래한다. 임금이 싸돌아 댕기면 백성이 피곤한 법인 까닭이다. 


임금이 한번 움직이면, 그 기본 행렬 단위는 수천 명이었다. 한데 이들을 부양하는 시스템은 전형적인 약탈형이었다. 약탈형이란 무엇인가? 그들 수행단을 먹여살리는 일을 현지 지방정부에서 했다는 뜻이다. 물론 관련 의복 같은 기초물품이야 그들이 출발전에 미리 서울에서 준비를 했겠지만, 나머지 음식물 같은 것은 그들이 지나는 지방정부 몫이었다. 


수천명이 다녀가면, 지방행정은 거덜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먹고 자고 싸는 것만 해도 버티기가 힘이 든 법이다. 화장실도 보자. 수천명이 싸댄다. 그것을 어찌 치울 것인가가 왜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이는 곧 불만을 부르기 마련이다. 대접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중앙의 힘을 빌려 해당 지방정부 관원들과 백성들을 닦달을 해 댔을 것임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 행차 그림을 함 봐라. 장관이라 하겠지만, 저들을 먹여살리느라 지방관과 백성들을 등골이 휘었다. 


그래서 임금은 되도록이면 궁궐을 떠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정조의 화성행차

                                       

 

이 악부시는 판본에 따라 글자의 넘나듦이 있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원문을 교감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아래 시구 많은 대목에는 주석이 붙어야 하지만 이 또한 생략하며 추후를 기약한다.

 

여궁고(驪宮高) 

이 시에 대해 작자 백거이는 “천자가 백성의 재력을 아낌을 찬미한 것이다”(美天子重惜人之財力也)라고 註했다.


《당회요唐會要》에는 “開元 11년 10月, 여산驪山에다가 온천궁溫泉宮을 두었다”고 하고 《구당서舊唐書ㆍ제기帝紀》에 이르기를 “이 해 10월에 천자가 온천궁溫泉宮에 행차하니 이 해 이 후 여러 번 이곳을 찾았다. 천보天寶 6년 10月, 온천궁溫泉宮을 고쳐 화청궁華清宮(華淸宮)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에서 말하는 화청궁이 바로 화청지이며, 제목에서 말하는 여궁驪宮, 곧 여산의 궁전이 바로 화청궁이다. 

 

높디높은 여산에 궁궐 있으니 

붉은 누대 자색 궁전 서너 겹 

길고긴 봄날엔 

옥벽돌 따스하고 온천물 넘쳐나네 

솔솔부는 가을 바람 

산매미 울어대고 궁궐나무 단풍드네 

비취 깃발 안 오신지 오래되니 

담장엔 옷을 입고 기와엔 풀이 났네 

우리 임금 재위하신지 이미 5년 

어찌 그곳엔 행차 한번 않으시나 

서쪽으로 도성문 얼마인지 

우리 임금 노닐지 않음 깊은 뜻 있으리 

한 분 행차 쉽지 않으니 

육궁이 따르고 백관이 차비 갖추네 

여든한대 수레에 천만 기병 

아침엔 성대한 연회 저녁엔 하사품 

웬만한 백성 수 백집 합친대도 

임금님 하루 비용 충당하기 부족하네 

우리 임금 자기 수양 남들은 모르네 

방일하지 않으시고 환락 모르시니 

우리 임금 남모르는 백성 사랑 

재물 공력 함부로 낭비 않으시네 

여궁 높이 솟아 구름으로 들어가고 

임금님 오심은 한 몸 때문이나 

임금님 오지 않으심은 만인을 위함이네 


高高驪山上有宮

硃樓紫殿三四重

遲遲兮春日

玉甃暖兮溫泉溢

嫋嫋兮秋風

山蟬鳴兮宮樹紅

翠華不來歲月久

牆有衣兮瓦有松

吾君在位已五載

何不一幸乎其中

西去都門幾多地

吾君不游有深意

一人出兮不容易

六宮從兮百司備

八十一車千萬騎

朝有宴飫暮有賜

中人之頻數百家

未足充君一日費

吾君修己人不知

不自逸兮不自嬉

吾君愛人人不識

不傷財兮不傷力

驪宮高兮高入雲

君之來兮爲一身

君之不來兮爲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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