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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68년(480) 여름 4월에 남제(南齊)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이 왕을 표기대장군으로 책봉했다. 왕은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남제에 조빙케 했는데, 위나라 광주(光州) 사람이 바다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위나라] 대궐로 보내니 위 고조가 왕에게 조서를 보내 책망했다. “[소]도성이 친히 그 임금을 죽이고 강남에서 [황제의] 칭호를 도용하였다. 짐은 망한 나라를 옛 땅에서 다시 일으켜, 끊긴 대를 유씨(劉氏)에게 잇게 하려 한다. [그런데] 경은 우리 국경을 넘어 외국과 교섭하고, 찬탈한 도적과 멀리 통교하니, 이것이 어찌 번신(蕃臣)이 절개를 지키는 의리하고 하겠느냐? 이제 한 번의 잘못으로 경의 이전의 정성을 덮을 수 없어 사신을 돌려보내니, 그 용서함에 감사하고 잘못을 새겨 법도를 받들어 지킬 것이며, 그대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동정을 보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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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 20년(319) 겨울 12월에 진(晉)나라 평주자사 최비(崔毖)가 도망쳐 왔다. 이전에 최비가 은밀히 우리 나라와 단씨(段氏)ㆍ우문씨(宇文氏)를 달래 함께 모용외(慕容廆)를 치게 했다. 세 나라가 극성(棘城)을 공격하자 [모용]외가 문을 닫고 지키며 오직 우문씨에게만 소와 술[牛酒]을 보내 위로했다. 두 나라는 우문씨와 [모용]외가 음모한다 의심하고 각각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우문씨의 대인(大人) 실독관(悉獨官)이 “두 나라가 비록 돌아갔으나 나는 홀로 성을 빼앗겠다”고 했다. [모용]외가 그 아들 황(皝)과 장사(長史) 배의(裵)를 시켜 정예군을 거느리고 선봉에 서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실독관이 크게 패하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최비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형의 아들 도(燾)를 시켜 극성(棘城)으로 가서 거짓으로 축하하게 하였다. [모용]외가 군사를 이끌고 맞이하니, [최]도가 두려워 머리를 조아려 사실을 고하였다. [모용]외가 [최]도를 돌려보내고 [최]비에게 “항복하는 것은 상책이고, 달아나는 것은 하책이다.”라고 말하고,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갔다. [최]비가 수십 기마병과 함께 집을 버리고 [우리나라로] 도망쳐 오고, 그 무리가 모두 [모용]외에게 항복하였다. [모용]외가 그 아들 인(仁)으로 하여금 요동을 진무(鎭撫)하게 하니 관부와 저잣거리가 예전과 같이 안정되었다. 우리나라 장수 여노(如孥)는 하성(河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모용]외가 장군 장통(張統)을 보내 습격해서 그를 사로잡고, 그 무리 천여 가를 사로잡아서 극성으로 돌아갔다. 왕은 자주 군사를 보내 요동을 침략하였다. [모용]외가 모용한(慕容翰)과 모용인을 보내 [우리를] 치게 하였는데, 왕이 맹약을 구하자 [모용]한과 [모용]인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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