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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학사(阮堂學士)는 壽를 누리기를 71세이니 500년만에 다시 온 분이라네. 천상에서는 일찍이 반야(般若)의 業을 닦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잠시 재관(宰官)의 몸을 나셨네. 하악(河嶽)의 기운 쏟은 적 없으나 팔뚝 아래 금강필(金剛筆)은 신기(神氣)가 있었네. 무고무금(無古無今)한 경지로 별스런 길 열었으니 정신과 재능의 지극함이요 모두 종정운뢰(鍾鼎雲雷)의 문장이라네.

 

글씨 때문에 문장이 가리운 왕내사(王內史), 그와 천고(千古)와 같은 경우라네. 그 글씨의 흉중(胸中)의 구파(九派)와 교룡(蛟龍)의 노숙함은 주옥 같은 전분(典墳)과 진한(秦漢) 문장의 온축이라네. 승평(昇平)의 시대를 문채나게 함은 응당 이유가 있었으니 어찌하여 삿갓에 나막신 차림으로 비바람 맞으며 바다 밖의 문자를 증명했는가?

 

公이여, 공이여. 고래를 타고 떠나갔으니 아마! 만 가지 인연 이젠 끝이네. 날씨의 향기 땅으로 들어가 매화로 피어날 것이요, 이지러진 달 공산(空山)에 빛을 가리리. 침향나무로 像을 새김은 원래 한만(閑漫)한 일. 백옥(白玉)에 마음을 새기고 황금으로 눈물을 주조하려니, 이는 우리네 궁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데. 조희룡은 재배(再拜)하고 삼가 만장을 올리노라.

 

만(挽)이란 말이 있으니 이는 요즘 개념으로는 추모사이니라. 조희룡(趙凞龍.1789-1866)이 1856년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가 쓴 추모사다. 조희룡은 요즘 한창 각광받는 조선후기 인물로 이 시대를 풍미한 이른바 여항문학(閭巷文學. 길거리문학)의 대표주자로서 중인 출신이다. 서화가로서 글씨와 그림에 두루 능했으며 글 또한 명문이 많다.

 

字는 이견(而見)이라 했으며('이현'으로 읽을 가능성이 있다), 號를 우봉(又峰)이라 하고, 또 철적(鐵적)이라고도 했다. 본관은 평양. 선대는 무반직을 역임했다. 현전하는 저술로는 <<석우망년록>> <<호산외기>>가 있으며 얼마 전에는 그의 전집이 총 6권으로 나왔으니 관심 있는 이는 일독하기 바라노라.

 

참고로 위 만가는 한영규가 엮은 조희룡 산문집 <<매화 삼매경>>(태학사.2003) 120~121쪽에서 실린 번역을 전재한 것인 바(원 제목은 '阮堂公挽'이다), 시간을 내어 내 나름대로 윤문을 하고 전고에 대한 주석을 넣어볼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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