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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62)


잠자리(蜻蜓)


 宋 왕자(王鎡) / 김영문 選譯評 


비단으로 재단한 날개

가을 서리 흡사하고


물 찍고 낮게 날며

들 연못과 연애하네


불현 듯 저 꿀벌은

담장 너머 날아가건만


가련하다 잠자리는

꽃향기를 모르네


輕綃剪翅約秋霜, 點水低飛戀野塘. 忽趁遊蜂過牆去, 可憐不識百花香. 


한 여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 놀라웠던 건 잠자리떼였다. 평지에서는 추수 때나 볼 수 있는 잠자리떼가 천왕봉 하늘 위를 가득 덮고 있었다. 어쩌면 가을 단풍이 점차 높은 산 꼭대기에서 낮은 산비탈로 하산하듯 잠자리떼도 그렇게 우리가 사는 낮은 땅으로 강림하는 듯했다. 아니면 하늘의 뜻을 가을 서리 같이 깨끗한 날개에 싣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건가? 게다가 잠자리는 낮은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더 낮은 물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날아가 가을 물결과 사랑을 나눈다. 당나라 시인 한악(韓偓)은 그런 잠자리의 모습을 “벽옥 같은 눈과 운모 같은 날개에, 나비보다 가볍고 꿀벌보다 야위었네(碧玉眼睛雲母翅, 輕於粉蝶瘦於蜂)”라고 묘사했다. 가을날 더러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고추잠자리를 보고 있으면 경이로운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빛나고,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투명하고, 이렇게 수척하고, 이렇게 가련한 곤충이 있을까? 나비의 분가루나 꿀벌의 작은 침조차 없다. 게다가 잠자리는 꽃향기조차 스쳐 지나며 맑은 하늘과 맑은 물 위로만 날아다닌다. 시인 안도현은 “잠자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곳까지/ 잠자리의/ 우주다”(「우주」)라고 읊었다. 그렇다. 그것은 잠자리의 우주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나의 우주, 천하만물의 우주이기도 하다. 잠자리의 영롱한 눈을 들여다보라. 거기엔 이미 수백, 수천 광년의 별빛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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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3수(初夏三首) 중 첫째 


  송(宋) 왕자(王鎡) / 청청재 김영문 選譯 


붉은 꽃 거의 져서

나비 드물고


쏴 쏴 비바람이

봄날 보내네


녹음은 우거져도

보는 이 없고


부드러운 가지 끝에

매실 열렸네


芳歇紅稀蝶懶來 

瀟瀟風雨送春回 

綠陰如許無人看 

軟玉枝頭已有梅


봄이라 만발한 꽃잔치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꽃이 다 질 무렵, 꽃 중에서도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매화는 벌써 매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어 벌써 초여름 들어서는 문턱이다. 떨어지기 싫어서인가? 아님 따지기 싫어서일까? 매실 역시 초록으로 같은 초록 이파리와 밑에 살포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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