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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나는 가난을 팔아먹곤 한다. 그것이 지나쳐 지금도 가난하다고 하는건 아닌지 짐짓 염려되기는 한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러했다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느냐 하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저 시절을 잊을 수는 없다. 어쩌면 잊지 않고자 하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고자하는 세뇌 교육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다.


諱는 淵赫이요, 본관은 김녕이라, 1921년 음력 6월 15일 경북 금릉군 대덕면 조룡1리 222번지에서 출생했다.  선비先妣는 김해김씨이니 같은 금릉군 조마 태생으로 1남1녀를 두었다. 후비後妣 역시 김해김씨라 충무 태생으로 2남2녀를 두었다. 나는 5번째라, 선친이 마흔일곱에 얻은 아들이다. 


얘기가 길어질 듯해서 짤라버린다. 아버지가 끌고가는 저 송아지 팔아 나는 대학을 다녔다. 저 송아지 한 마리 팔면 그해 등록금이 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소값 파동이 일어나 황송아지 기준으로 마리당 150만원가량 하던 송아지 가격이 15만원대로 폭락했다. 언젠가는 가야 할 군대를 그때 간 이유였다.


내가 태어난지 반세기가 된 날,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이상은 2016년 11월 5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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