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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 ?~501. 동성왕 8년(486)에 위사좌평에 임명됐다가 동왕 23년(501)에 가림성으로 지키라는 왕명을 받았지만, 이에 불만을 품고 그해 겨울 사비 서쪽 벌판으로 사냥나간 동성왕을 자객을 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 뒤이어 즉위한 무령왕에게 토벌돼 주살됐다. '苩'이 성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 : 8년(486) 봄 2월에 백가(苩加)를 위사좌평(衛士佐平)으로 삼았다. 3월에 사신을 남제에 보내 조공했다. 23년(501)…8월에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苩加)에게 지키게 했다. 겨울 10월에 왕이 사비(泗)의 동쪽 벌판에서 사냥했다. 11월에 웅천(熊川)의 북쪽 벌판에서 사냥했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馬浦村)에서 묵었다. 이보다 앞서 왕이 백가로 가림성을 지키게 했으나 백가는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 삼아 사양하고자 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왕을 원망하다가 이 때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훙하니 시호(諡號)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했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무령왕(武寧王)은 이름이 사마(斯摩)<융(隆)이라고도 한다>이고 모대왕(牟大王) 둘째 아들이다. 키가 여덟 자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 모대가 재위 23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봄 정월에 좌평 백가(苩加)가 가림성(加林城)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牛頭城)에 이르러 한솔(扞率) 해명(解明)에게 명령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백가가 나와 항복하자 왕은 그의 목을 베어 백강(白江)에 던져버렸다. 論한다. 춘추(春秋)에 “남의 신하가 된 자는 반역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無將], 반역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백가(苩加)와 같은 흉악한 역적은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는 바인 데 곧장 죄주지 아니하고, 이에 이르러 스스로 [죄를] 면하기 어려움을 알고 반란을 꾀한 후에야 죽였으니 때가 늦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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