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김포 장릉


한시, 계절의 노래(159)


절구(絶句) 스물다섯 째


 당 여암(呂巖) / 김영문 選譯評 


은자라 할 일 없다

말하지 말라


한적함 속 모든 것이

고요한 공부


대문 닫고 맑은 낮에

독서 끝내고


바닥 쓸고 해질 녘까지

향불 피우네


莫道幽人一事無, 閑中盡有靜工夫. 閉門淸晝讀書罷, 掃地焚香到日晡.


현대 사회에서는 꿈꾸기 힘들지만 나에게 은자(隱者)의 삶이 주어지면 어떻게 살까? 우선 며칠 모자라는 잠을 실컷 자고, 또 다시 며칠은 그냥 멍 때리기로 일관하고, 그리고 며칠은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 취미생활에 매진해본다. 이어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뒷산에도 올라가보고, 계곡 물에 발도 담가본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고 하자. 그 다음에는 뭘 할까? 내게 주어진 은자의 무한한 시간에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을까? 은자의 진정한 한적함이란 한적함이 지루함이나 나태함으로 떨어지지 않는 경지다. 억지로 도달하는 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이런 경지에서는 방 바닥 쓸고, 향 피우고, 책 읽는 등 모든 일이 격조 높은 공부다. 주어진 시간을 어쩌지 못해 무절제로 치달려가는 건 은자의 한적함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은자의 삶은 수신(修身)의 가장 궁극적인 경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은자의 삶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둘러보면 오늘도 은자(隱者)가 아닌 망자(忙者)들은 명(名)과 리(利)를 얻기 위해 끝도 없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질주하고 있다.



아미산에 올랐다. 이태백이 이 산을 오르면서 떠오르는 상념을 노래한 명편이 있다. 태백 특유의 뻥이 아닐까 싶었지만, 막상 올라보니, 천하의 이 뻥쟁이도 아미산을 제대로 노래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 절로 했다. 해발에 따라 수시로 풍광이 바뀌었으니, 같은 해발 같은 장소라 해도, 창창한 하늘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돌아서면 다시 짙은 연무였다.(김태식)  



한시, 계절의 노래(63)


은자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다(尋隱者不遇) 


  당(唐) 가도(賈島) / 김영문 選譯評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이 산 속에

계실 터이나


구름 깊어 계신 곳

모른다 하네


松下問童子, 言師采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이보다 더 쉬운 한자로 쓴 한시가 있을까? 모든 명시가 그런 것처럼 이 시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자 조합 속에 만만치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방문자의 질문이 생략되고 동자의 목소리만 낭랑하게 깊은 산 구름 속을 감돈다는 점이다. 방문자는 은자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 동자에게 몇 차례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은 “구름이 깊어서 계신 곳 몰라요”라는 대답만 듣는다. 이런 막연한 일이 있을까? 우리는 명확한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한다. 거듭된 질문을 통해 해답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 시는 거듭된 질문에 대한 동자의 대답을 통해 우리를 더 모호한 경지로 끌어간다. 그곳은 내 질문이 닿지 않는 속세 너머 세계다. “현지우현(玄之又玄)”의 경지다. 어떻게 그곳으로 다가갈 수 있나? 나는 오늘도 여전히 구름 깊은 산발치에서 서성인다.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