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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한시, 계절의 노래(195)


동정호에서 놀다 다섯 수(遊洞庭湖五首) 중 넷째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동정호 서쪽엔

가을 달 빛나고


소상강 북쪽엔

이른 기러기 날아가네


배에 가득한 취객

백저가 부르는데


서리 이슬 가을 옷에

스미는 줄 모르네


洞庭湖西秋月輝, 瀟湘江北早鴻飛. 醉客滿船歌白苧, 不知霜露入秋衣.


중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새롭게 확인한 충격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태백이 자신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의 집에서 병사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를 부르며 이태백의 죽음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이태백은 휘영청 달이 뜬 밤,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달을 건지러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태백이 자기 집도 아닌 친척 집에서 병에 걸려 골골 않다가 죽다니... 그 이후로는 깨어진 낭만과 환상 위에서 새로운 이태백 찾기가 계속됐다. 그런데 이태백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동정호에 달을 건지러 들어갔다는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이 시도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다. 동정호 서쪽에 달이 빛나고 있으므로 때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초승달이 서쪽에 떴을 때나 둥근 달이 서쪽으로 기운 때다. 그러나 초승달은 초저녁에 잠깐 서쪽 하늘에 떴다가 금방 사라지므로 배를 띄우고 만취하도록 술을 마실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동정호의 야유(夜遊, 野遊)는 둥근 달이 떠오른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달이 이슥하게 기운 새벽까지 계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뒷구절에도 이른 새벽에 기러기(早鴻)가 날아간다고 했다. 뱃놀이를 즐긴 신선들은 이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백저가(白苧歌)」는 당시 유행한 인기곡이다. 내용과 가락은 알 수 없다. 다만 올나이트를 했으므로 정황상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이거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정신없이 취한 주정뱅이들이 출렁이는 배 위에서 비틀 거리는 상황이니 어찌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취한 와중에 객기 부리는 놈이 꼭 하나는 있지 않던가? 이태백이 바로 그러했다. “얘들아, 내가 저 달을 건져서 돌아오마... 풍덩~”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까? 우리의 환상과 낭만이 다시 살아나는 때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다시 이 시를 음미해보시라. 

  1. 아파트담보 2018.10.11 20:42 신고

    한시 300수 돌파를 축하합니다. 짝짝짝!

  2. 한량 taeshik.kim 2018.10.14 16:55 신고

    부지런히 나가서 천수 만수 채워야지요



한시, 계절의 노래(185)


고요한 밤 고향 생각(靜夜思)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침상 맡에

빛나는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고개 들어

산 위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군더더기가 없다. 시에서는 같은 단어의 중복을 기피하지만 월(月)과 두(頭)를 중복해서 썼다. 그럼에도 중복해서 쓴 느낌이 없다. 차가운 달빛을 서리에 비김으로써 나그네 독수공방의 냉기와 고독을 뼈저리게 드러냈다. 그러고는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 생각에 젖는다. 객창의 냉기와 고독 밖에는 고향의 온기와 단란함이 존재한다. ‘시어 밖의 의미(言外之旨)’가 깊이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먼 곳에 가서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의 노래를 불렀다. 나이가 들면 고향 생각이 더욱 짙어지지만, 다시 돌아가 본 고향은 이미 어릴 적 고향이 아니다. 정지용도 「고향」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읊었다. 우리는 어쩌면 고향에 돌아가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이육사는 “수만호 빛이래야할 내 고향이어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우에 이끼만 푸르러라”라고 탄식했다. 우리에게 고향은 이제 조상의 무덤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 고향을 떠나 다시 익숙한 타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니 고향에서 또 다른 마음속 고향을 그리며 또 다른 방랑길을 떠날 시간이다.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어구



한시, 계절의 노래(178)


가을에 형문으로 내려가다(秋下荊門)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형문에 서리 내려

강가 나무 휑한 때에


베 돛은 무탈하게

추풍 속에 걸렸네


이번 길은 농어회를

먹으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명산 좋아

섬중으로 들어가네


霜落荊門江樹空, 布帆無恙掛秋風. 此行不爲鱸魚鱠, 自愛名山入剡中.


아미산 반달을 데리고 이백은 어디로 갔을까? 「아미산 달 타령(峨眉山月歌)」에서 제시한 경로대로 평강강의 청계를 떠나 투주(渝州: 지금의 충칭重慶)를 거쳐 삼협(三峽)을 통과했다. 지형이 험하고 물살이 세찬 삼협을 지날 때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으리라. 가슴 졸인 험로를 빠져나온 후 이백은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기가 탄 배의 베 돛은 아무 탈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것도 유명한 ‘포범무양(布帆無恙)’이란 고사성어를 빌려서 말이다.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凱之)는 한 때 형주자사 은중감(殷仲堪)의 막료로 있다가 잠시 귀향할 때 그의 돛배를 빌려 파총(破冢)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강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었다. 고개지는 은중감에게 편지를 띄워 베로 만든 돛만은 무사하다고 소식을 알렸다. 대체 도와달라는 말인가, 아닌가. 어떻든 이후 ‘포범무양’이란 말은 무탈한 여행길을 비유하는 성어로 쓰이게 되었다. 험준한 파촉의 산하를 벗어난 이백 앞에는 형문산 석벽 아래로 드넓은 장강이 펼쳐지고 있었다. 때는 강가 나무의 잎조차 모두 떨어진 늦가을이니 그 휑한 공허감이 아득한 장강 물결과 어울려 더욱 광막한 느낌을 짙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백의 너스레는 제3구에서 어린 아이 같은 시치미로 이어진다. 아무도 이백의 여행 목적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백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이번 여행은 농어회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섬중(剡中)의 아름다운 강산을 구경하러 간다고 굳이 강조한다. 이 대목을 읽고 우리는 이백의 이번 장강 여행 목적이 볼 것도 없이 오(吳) 땅의 농어회를 먹기 위한 것임을 직감한다. 그럼 반달 뜬 아미산에서 출발한 행차는 결국 미식 여행에 불과했다는 것인가? 그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를 읽고 미식 여행의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한시, 계절의 노래(175) 


천문산 바라보며(望天門山)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천문산이 중간에 끊겨

초강이 열리니


벽옥 강물 동류하다

북쪽으로 감아도네


양쪽 강안 푸른 산이

마주한 채 튀어나오자


외로운 돛 한 조각

태양 곁에서 다가오네


天門中斷楚江開, 碧水東流至北回. 兩岸靑山相對出, 孤帆一片日邊來.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곳곳의 강산을 유람해보면 강이 산을 꿰뚫고, 산이 강을 건너는 곳이 허다함을 알 수 있다. 천고의 세월은 강과 산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말 그대로 아름다운 ‘강산’을 빚어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성립하듯,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한다. 한계를 돌파한 곳에서 새로운 천지가 열리는 법이다. 강과 산의 변증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중국 장강(長江)이다. 배를 타고 장강삼협(長江三峽)을 흘러가보면 눈앞을 압도해오는 강산의 천변만화에 말문이 막힌다. 그저 감탄사만 내뱉을 수 있을 따름이다. 삼협에 속하지는 않지만 천문산도 장강의 그런 명소 중 하나다.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塗縣) 남서쪽에 자리한 천문산은 장강이 비스듬히 북류하면서 단애를 만든 곳이다. 동쪽에는 박망산(博望山)이, 서쪽에는 양산(梁山)이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이 만든 관문처럼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이백은 배를 타고 그곳을 지나며 눈앞에 다가오는 장관을 신속하게 포착했다. 저 멀리서 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이 서서히 다가오자 벽옥색 강물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감아 도는 눈앞에 문득 거대한 바위 산이 박두하듯 나타나고, 그 사이로 태양이 비치는 수평선에서는 외로운 돛단배가 천천히 흘러온다. 장엄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도도한 강물 위에서 작은 돛단배는 늘 외롭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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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sabu 2018.09.17 23:53 신고

    천문산이란게 미국으로 치면 Delaware Water Gap 국립공원 같은 곳인가 보군요. 거기서도 카누 대여하면 태양을 등지고 강물따라 내려올 수 있습니다. 역시 이태백!


한시, 계절의 노래(163)


흰 왜가리(白鷺鶿)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흰 왜가리 가을 물로

내려앉는데


외롭게 나는 모습

서리와 같네


마음도 여유롭게

떠나지 않고


모래톱 가에

우뚝 서 있네


白鷺下秋水, 孤飛如墜霜. 心閑且未去, 獨立沙洲傍.


가을 물 가에 우뚝 서 있는 왜가리를 보고 이백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너무나 깨끗하고 고고하다. 이백의 생애를 훑어보면 기실 이런 모습과 꽤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백은 불우한 현실에 맞서 파격적이고 광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울분을 표현했다. 그의 울분과 표리를 이루는 일부 시에는 잔잔하면서도 고독한 영혼이 숨어 있다. 여유, 한적, 고독, 비애가 짙게 스며 있는 그의 일부 시는 낭만, 호방, 열정, 환희를 내뿜는 그의 다수 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독립’이란 말이 이백의 성격을 잘 규정한다. 홀로 우뚝 선다는 의미다. 한 개인이 인격, 지성, 감성으로 홀로 우뚝 서지 못한다면 그 삶의 의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호방하고 표일하다는 이백의 이미지는 이처럼 ‘특립독행(特立獨行)’하는 그의 행적이 발현된 것이라 할 만하다. 




한시, 계절의 노래(154)


열일곱수 추포가(秋浦歌十七首) 중 열다섯째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하얀 머리카락

삼천 장(丈)인데


시름 따라 이처럼

길어졌구나


모를레라 거울 속에

비친 저 모습


어디서 가을 서리

얻어왔을까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통 큰 시름이라고 해야 할까? 이백은 백발을 시로 읊으면서도 특유의 과장법을 사용한다. 백발이 삼천 장(丈)이라니... 말이 되는가? 이백은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에서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려 꽂히니(飛流直下三千尺)”라고 읊었다. 여산폭포 물줄기도 겨우 삼천 척(尺)에 불과한데 백발은 그 열 배에 달하는 삼천 장(丈)이라 했다. 어떻게 이처럼 길게 자랄 수 있을까? 다음 구절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건 시름 때문이다. 한(漢)나라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는 “삶은 100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늘 천 년 근심을 안고 사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라고 탄식했다. 하긴 붓다도 이 세상을 고해(苦海)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이백의 묘사가 이뿐이었다면 기상천외한 과장법으로 그쳤으리라. 하지만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처럼 '밝은 거울[明鏡]'을 들여다보며 가을 서리 같은 백발을 어디서 얻어왔느냐고 묻는다.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으므로, 역시 자신이 대답해야 한다. 앞 구절에서 백발 3000장은 시름 때문에 자란 것이라고 이미 밝혀놓고 왜 같은 질문을 던지는가? 따라서 이 질문은 백발의 원인인 시름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 깊은 시름을 대체 어디서 얻어왔는가? 질문만 있고 대답은 없다. 이 시의 기상천외한 과장법이 속되지 않게 인간 내면의 슬픔 속으로 스며드는 까닭이 바로 이 지점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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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44)


장난삼아 두보에게 주다(戱贈杜甫)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반과산 꼭대기에서

두보를 만나는데


머리에는 삿갓 쓰고

태양은 중천이네


지난 번 이별 후로

너무 말랐네 그려


이전부터 시 짓느라

고심했기 때문이오. 


飯顆山頭逢杜甫, 頂戴笠子日卓午. 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 


중국 시사(詩史)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이백과 두보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송나라 이후로 이·두(李·杜) 우열을 두고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고, 그 논란은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어쩌면 시작과 끝,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 띠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성당 시대에 두 사람 관계는 어땠을까? 언뜻 보기에 시풍이 다른 만큼 서로 적대적인 라이벌이었을 듯 싶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로 보면 이백이 두보보다 열한 살 많다. 이백이 두보 큰 형님뻘쯤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낙양(洛陽)에서 처음 만난 이후 나이를 초월한 친구(忘年之交)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친분을 지속하며 양(梁) 땅 즉 지금의 카이펑(開封) 지역과 제로(齊魯) 땅 즉 지금의 산둥(山東) 지역을 함께 여행하기도 하면서 매우 친밀한 우정을 과시했다. 시풍으로 보면 이백이 호방하고 낭만적이지만 두보는 침착하고 현실적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이처럼 상이한 시풍을 형성했을까?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은 백이면 백 모두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불우한 현실에 대응할 때 그것을 완전히 초월하여 신선이 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그 슬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 시풍으로 볼 때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과 취향의 문제다. 이 시를 두고서도 호사가들은 흔히 이백이 두보를 디스한(조롱한) 예로 거론하곤 하지만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오히려 막역한 벗 사이 친밀한 우스개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백과 두보가 역대로 벌어진 이·두우열론(李·杜優劣論)을 저승에서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려 돼지 눈에는 돼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뵈는 법이지’라고 할까? 아! 이건 무학대사의 어록이구나. 하여튼 슬프게도 이 두 대시인은 이 시에 나오는 장안(長安) 반과산(飯顆山)에서 만난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인생의 만남과 이별이 으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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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의 고풍古風이라는 제하의 시 일부다. 


天津三月時 천진교에 삼월이 오니 

千門桃與李 집마다 복사오얏 만발하네

朝爲斷腸花 아침엔 애 끊는 꽃이었다가 

暮逐東流水 저녁엔 동쪽으로 흐르는 물 따라가네 

前水複後水 앞선 물 뒤따르는 물이 밀어내듯

古今相續流 옛날과 지금은 이어 흐르네

新人非舊人 새로운 사람 옛 사람과 다르나 

年年橋上遊 해마다 다리에선 노니며 즐기네


태백은 쉬운 말을 참으로 쉽게 구사하는 재주가 특출나거니와, 그의 시는 대부분 실은 철리哲理의 특징을 지닌다. 이 고풍 역시 그러해서, 어거지 연상 기법을 통해 어거지 삶의 지혜 혹은 도덕을 설파하는 후대 성리학 계통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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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태백(李太白)이야말로 가장 걸출한 파토스(pathos)의 시인으로 본다. 아래 소개하는 장간행(長干行) 역시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長干行   李白

 

妾髮初覆額(첩발초복액) 제 머리 처음 이마 덮을 적에

折花門前劇(절화문전극) 꽃 꺾어 문 앞서 놀았지요

郎騎竹馬來(낭기죽마래) 님께선 죽마 타고 와서는

繞牀弄靑梅(요상농청매) 뱅뱅 침상돌며 매실로 장난쳤지요

同居長干里(동거장간리) 같이 장간리에 살며

兩小無嫌猜(양소무혐시) 두 꼬만 스스럼없이 지내다

十四爲君婦(십사위군부) 열넷에 당신 아내 되어서는

羞顔未嘗開(수안미상개)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 수 없었죠

低頭向暗壁(저두향암벽) 고개 숙여 어둔 벽만 바라보다

千喚不一回(천환불일회)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지요

十五始展眉(십오시전미) 열다섯에 비로소 미간 펴고는

願同塵如灰(원동진여회) 티끌과 재 되도록 함께 하자 했지요

常存抱柱信(상존포주신) 늘 변치 않는 마음 지니면서

豈上望夫臺(기상망부대) 어찌 망부대에 오르리오 했건만

十六君遠行(십육군원행) 열여섯에 님께서 멀리 떠나

瞿塘豫淅堆(구당여석퇴) 구당 여석퇴로 가셨지요

五月不可觸(오월불가촉) 오월이 되어도 가까이 갈 수 없어

猿聲天上哀(원성천상애) 원숭이 울음만 천상에서 슬퍼요

門前遲行跡(문전지행적) 문 앞엔 오가는 자취 뜸해

一一生綠苔(일일생록태) 하나씩 푸른 이끼 돋아나다가

苔深不能掃(태심불능소) 이끼 두터워 떼낼 수도 없는데

落葉秋風早(낙엽추풍조) 잎은 지고 가을바람 일찍 왔지요

八月蝴蝶來(팔월호접내) 팔월 되니 나비 찾아들어

雙飛西園草(쌍비서원초) 쌍쌍이 서쪽 동산 풀밭에서 나네요

感此傷妾心(감차상첩심) 이를 보노라니 제 마음 몹시도 아파

坐愁紅顔老(좌수홍안노) 앉아서 근심하다 앳된 얼굴 늙어가요

早晩下三巴(조만하삼파) 언제든 삼파 떠나올 때면

預將書報家(예장서보가) 미리 집으로 기별이나 넣어 주세요

相迎不道遠(상영부도원) 당신 맞으러 먼 길 마다 않고

直至長風沙(직지장풍사) 곧장 장풍사까지 달려가렵니다

 

 

1ㆍ長干行:樂府曲名.

2ㆍ橫塘:현재의 江蘇 江寧縣.

=是一首藉著年輕商婦的愛情與相思爲題材的敘事抒情詩, 詩中以女子自述的口吻ㆍ回憶的形式, 娓娓敘寫了自童年ㆍ成婚到別離相思的過程以及對未來的想望, 全詩充滿了女子溫柔深厚而又熾熱奔放的感情, 透過李白敏銳的藝術眼光ㆍ高度的文學技巧和豐富的想像力成功的呈現出來. 以下將〈長干行〉一詩分爲童年生活ㆍ婚姻生活ㆍ別後相思與未來期盼四個部分加以敘述.

 

首六句運用追憶的方式, 寫天真無邪的童年生活. 詩中將一對情竇未開ㆍ純真爛漫的小兒女, 通過「折花」ㆍ「劇」ㆍ「騎竹馬」ㆍ「遶床」ㆍ「弄青梅」等一連串的動作及兒時嬉戲, 勾起一幕幕無憂無慮ㆍ歡樂無限的甜蜜回憶, 道出了商婦和她的丈夫從小就有著深厚的感情基礎──那來自於「兩小無猜」ㆍ「靑梅竹馬」的親密友誼. 「十四爲君婦」到「猿聲天上哀」, 以年齡序數法寫女子婚姻生活的種種歷程. 內容包含三個層次:

 

第一層四句寫初嫁的嬌羞情懷, 雖然是由童年一起嬉戲的玩伴而結爲夫妻, 畢竟難掩新嫁娘的羞澀容顏與嬌媚情態!尤其是「低頭向暗壁, 千喚不一回」兩句, 細膩的刻畫出女子微妙的心理活動, 而這正是她深摯的愛情表現方式與內心喜悅的自然流露. 第二層四句由「低頭」到「展眉」, 由新婚之柔情無限開展到婚後熾熱堅真的愛戀. 「願同塵與灰」化用吳聲歌曲中〈歡聞變歌〉詩句:「沒命成灰土, 終不罷相憐」的意思, 描述自己願同灰塵一般與丈夫和合相依, 永不分離;「常存抱柱信」則借用《莊子˙盜跖》:「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的典故, 深信丈夫對愛情的忠貞專一, 一如尾生守信一樣至死不渝. 於是夫妻雙方沈浸在幸福美滿的婚姻生活中, 信誓旦旦的昭告天下「豈上望夫臺」──我不會同一般商婦怨女一樣走上望夫而死的絕境!但是幸福的日子終會結束, 而歡樂總是如此匆匆, 對從商的長干里居民來說, 分離似乎是不可避免的事實與夢魘了!第三層四句寫丈夫要遠行經商, 不僅要上溯至巴蜀, 經過「巴東三峽巫峽長, 猿鳴三聲淚沾裳」, 那哀猿長嘯ㆍ屬引淒異的巫峽;還要經過暗礁急流ㆍ險象環生的瞿塘峽口灩澦堆, 特別是在五月夏季水漲時礁石幾乎全部沒入水中, 船隻更容易因此而撞碎沈沒! 一想到這些久遠的傳聞與經驗, 怎不教人心緒蒙上陰霾?怎不教人擔驚受怕?心中不自覺得聲聲呼喚ㆍ殷殷祈禱, 遠行的夫君能夠安然無恙.

 

「門前遲行跡」到「坐愁紅顏老」八句敘寫別後的相思離愁. 別離一直是人生永恆不變的主題, 從戰國時屈原在〈九歌˙少司命〉中說:「悲莫悲兮生別離. 」到南朝梁江淹的〈別賦〉:「黯然銷魂者, 唯別而已矣. 」再到元代散曲家劉庭信的〈折桂令〉:「人生最苦是別離. 」在在的顯示出別離切割在人心上的傷痕豈止是一個愁字而已!生活失去了重心, 做什麼事情都不起勁ㆍ沒有意思, 連昔日嬉戲遊玩的足跡都因久無走動而生了綠苔, 不能掃除, 其實不能掃除的是離人心中的相思啊!就好像李後主的〈清平樂〉:「砌下落梅如雪亂, 拂了一身還滿」ㆍ「離恨恰如春草, 更行更遠還生」一樣, 愁緒縈懷, 豈能揮之即去;於是日子變的漫長難耐, 好不容易從五月盼到了八月, 時序才一入秋, 早來的秋風已是迫不及待的吹送著陣陣落葉ㆍ處處飛舞, 萬物蕭瑟凋零一如自己憔悴的心, 無怪乎詩人們要吟誦出「何處合成愁, 離人心上秋」這麼體己的話了. 可惱的是那比翼雙飛的蝴蝶兒正濃情蜜憶的在西園中嬉戲著, 此情此景, 教人情何以堪? 而青春年華就在這刻骨銘心的煎熬與失落之中, 一點一點的逐漸老去.

 

最後四句描寫商婦對未來充滿期盼的熱切心情. 商婦並沒有陷溺在濃得化不開的愁緒中無法自拔ㆍ哀怨悔恨;而是將自己的感情作進一步的提昇, 她寄語遠方的丈夫, 無論你什麼時候回來, 記得先捎封信回家, 我會直接到幾百里外的長風沙迎接你!商婦渴望會面久候的心和蘊藏心底的奔放熱情, 從「直至長風沙」的堅貞赤誠, 完全展露無遺. 她的痴心懸想, 她不畏艱險ㆍ不辭長途跋涉的勇氣, 她對未來的信心, 積極主動的去迎接幸福的來臨……, 凡此種種皆生動豐富的刻畫出一個可敬可愛的婦女形象, 難怪《唐宋詩醇》說它「兒女情事直從胸臆間流出, 縈迂曲折, 一往情深」, 而黃永武也要讚嘆「詩篇淒怨, 悲涼中又不失清麗委婉, 感情純正而真切. 」(《唐詩三百首鑑賞》)〈長干行〉一詩, 的確是我國古代愛情詩篇的佳構.

 

補充資料

(一)類文選讀

 

長干曲  古辭

 

逆浪故相邀, 菱舟不怕搖. 妾家揚子住, 便弄廣陵潮.

 

西洲曲  古辭

憶梅下西州, 折梅寄江北. 單衫杏子紅, 雙鬢鴉雛色.

西洲在何處, 兩槳橋頭渡. 日暮伯勞飛, 風吹烏臼樹.

樹下即門前, 門中露翠鈿. 開門郎不至, 出門採紅蓮.

採蓮南塘秋, 蓮花過人頭. 低頭弄蓮子, 蓮子靑如水.

置蓮懷袖中, 蓮心徹底紅. 憶郎郎不至, 仰首望飛鴻.

鴻飛滿西洲, 望郞上靑樓. 樓高望不見, 盡日欄干頭.

欄干十二曲, 垂手明如玉. 卷廉天自高, 海水搖空綠.

海水夢悠悠, 君愁我亦愁. 南風知我意, 吹夢到西洲.

 

 

長干曲 四首 - 최호(崔顥)

 

君家何處住(군가하처주) 그대 어디에 사시오?

妾住在璜塘(첩주재황당) 제 집은 황당에 있답니다

停船暫借問(정선잠차문) 배 좀 세워주오 잠시 여쭐 말 있소

或恐是同鄕(혹공시동향) 혹시 우리 같은 마을 아닌가요?

 

家臨九江水(가임구강수) 내 집은 구강 변에 있어

來去九江側(래거구강측) 구강을 오간다오

同是長干人(동시장간인) 같은 장간 사람인데

生小不相識(생소불상식) 어릴 적엔 모르고 지냈구려

 

下渚多風浪(하저다풍랑) 물섬 아래선 풍랑 심하니,

蓮舟漸覺稀(연주점각희) 연밥 따는 배 점차 사라지네요

那能不相待(나능불상대) 어찌 기다리지 않겠어요

獨自逆潮歸(독자역조귀) 홀로 물길 거슬러 돌아가서야 하는데

 

三江潮水急(삼강조수급) 삼강엔 조수 세차게 거슬러 올라오고

五湖風浪湧(오호풍랑용) 오호엔 풍랑이 거세지네요

由來花性輕(유래화성경) 본래 꽃이란 가벼우니

莫畏蓮舟重(막외련주중) 연꽃 실은 배 무겁다 두려워 마오

 

 

小長干曲    崔國輔

月暗送湖風, 相尋路不通. 菱歌唱不輟, 知在此塘中.

(以上見郭茂倩《樂府詩集》卷七十二)

 

 

長干行之二   李白(一作張潮)

憶妾深閨裡, 煙塵不曾識. 嫁與長干人, 沙頭侯風色.

五月南風興, 思君下巴陵. 八月西風起, 想君發揚子.

去來悲如何, 見少別離多. 湘潭幾日到, 妾夢越風波.

昨夜狂風度, 吹折江頭樹. 渺淼暗無邊, 行人在何處.

好乘浮雲驄, 佳期蘭渚東. 鴛鴦綠蒲上, 翡翠錦屏中.

自憐十五餘, 顏色桃花紅. 那作商人婦, 愁水復愁風.

 

 

(二)瞿塘灩澦堆

三峽中最雄偉壯觀而又險峻的是瞿塘峽, 西起夔州的白帝城, 東達巫山縣的大溪, 全長約八公里, 峽谷兩岸懸崖高出江面五百至七百米, 而山峰則高達一千四百米. 在白帝城下瞿塘峽入口處的江中心, 有一塊川江船工望而生畏的巨石, 名叫灩澦堆. 冬季灩澦堆出水長約三十米, 寬約二十米, 高達四十米, 夏季水漲時則幾乎完全沒入水中, 石的周圍水勢險急, 激成漩渦, 形成多股紊亂的水流. 古代船工駕船至此, 常不知順那一股水流漂過去才安全, 萬一判斷錯誤, 船隻會被激流捲至堆上撞碎. 自遠古以來, 灩澦堆不知撞沉多少船隻. 因此從晉代起, 行船的人中流傳著這樣的歌謠:                    

 

灩澦歌 古歌謠

灩澦大如象, 瞿塘不可上.

灩澦大如牛, 瞿塘不可留.

灩澦大如馬, 瞿塘不可下.

灩澦大如襆, 瞿塘不可觸.

灩澦大如龜, 瞿塘不可窺.

灩澦大如鱉, 瞿塘行舟絶.

 

唐代宗大曆初年, 杜甫在夔州時, 見到船工啓航入瞿塘峽之前, 要宰牛沉入江中祭水神, 以祈求航行平安. 於是寫了一首五律來顯示灩澦堆的禍害:                       

 

灩澦堆 杜甫

 

巨石水中央, 江寒出水長.

沉牛答雲雨, 如馬戒舟航.

天意存傾覆, 神功接混茫.

干戈連解纜, 行止憶垂堂.

唐末詩人劉隱辭, 寫了一首七律, 記敘這裡的奇特景觀:

詠灩澦堆 劉隱辭

灩澦崔巍百萬秋, 年年出沒幾時休.

未容寸土生纖草, 能向當江覆巨舟.

無事便騰千尺浪, 與人長作一堆愁.

都緣不似蟠溪石, 難使漁翁下釣鉤.

(以上見王曙編著《唐詩故事集》第四集)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줄에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번이고 소피 마르쏘 책받침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중 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利於病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이는 아마 명심보감에 나온 구절일 터이다)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五言古詩 하나 외지 못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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