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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냉수리 신라비>


아래는 포항 영일 냉수리 신라비 첫 대목이다. 503년(지증왕 4년)에 세운 것으로 간주되며, 포항 중성리비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最古신라비였다. 


(1) 斯羅喙夫〇智王乃智王此二王敎用珍而」

(2) 麻村節居利爲證尒令其得財敎耳」

(3) 癸未年九月廿五日沙喙至都盧葛文」

(4) 王〇德智阿干支子宿智居伐干支」

(5) 喙尒夫智壹干支只心智居伐干支」

(6) 本彼頭腹智干支斯彼暮〇智干」

(7) 支此七王等共論敎用前世二王敎」


1989년 이 비가 발견되었을 적에 고대사학계가 흥분했거니와, 이 비문을 근거로 한때, 그러니깐 지증왕 시대에는 신라에 王이 한 명이 아니라 7명이나 떼거리로, 동시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통설처럼 군림했다. 이를 근거로 우리가 아는 신라왕은 권위가 세지 못했으며, 여러 王 중에 한명이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득세했던 것이다. 이를 '부체제설'이라 한다. 


그 결정적인 근거는 7행에 보이는 '此七王等'이었다. 이를 '이들 7명의 왕들'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異說이 있기는 했다. 等을 이두로 간주한 국어학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내가 익히, 그리고 여러 군데서 목이 터져라 지적했듯이 이는 끊어읽기를 잘못한 데서 비롯된 대참사였다. '此七/王等'이라고 분절해야 할 것을 '此/七王/等'이라고 분절하고 만 것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이른바 차칠왕등此七王等 구성>


하지만 이는 그 앞줄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나열되는 갈문왕을 필두로 기타 신료 6명이라는 뜻이지, 결코 王이 7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시말해 '王等'은 '(갈문)왕과 기타등등'이라는 뜻이다. 기존 '7왕들'이 어불성설임은 다름 아닌 같은 7행에 보이는 '前世二王'과 비교하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此七王等'이 '이들 7왕들'이라면 '前世二王' 또한 '前世二王等'이 되어야 한다. 


이설이 없지는 않았음에도 신라 seven kings論을 들먹이는 이가 요즘은 자취를 감춰간다. 이 해괴하고도 망칙한 '신라 seven kings論'은 내가 아래 논문을 통해 뿌리를 뽑아버리고 고사시켰다고 자신한다. 한데, 요즘은 보니깐 신종 세븐 킹즈론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증상도 있다.  '此七王等'이 설혹 일곱 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신라 상고기에는 저것이 상징하는 신라 왕권 약화론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왕이 한꺼번에 7명이 있지는 않았을지언정, 신라라는 왕국에서 왕이 차지하는 위상은 변변찮았고, 이른바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 대표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렇다. 웃기는 짬뽕이다. 


〈냉수리비로 구축한 신라 'Seven Kings論' -此七王等, 그 괴이한 해석을 驅逐하며-〉, 《신라사학보》1, 신라사학회, 2004. 

<영일 냉수리 신라비>


(A) 이 일곱 학생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B) 이들 일곱 학생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C) 이(들) 일곱 학생(혹은 학생 일곱)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A)와 (B)가 꼭 틀리다 할 수 없지만, 어쩐지 한국어답지 않다. 이런 표현은 요새 쓰이기 시작했다. 영어 영향이다. 7과 같은 복수를 의미하는 숫자가 수식하는 명사는 영어에 물들기 전 한국어에서는 복수를 의미하는 접미사 '들'을 붙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7이라는 숫자에 이미 들이라는 복수가 함유됐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한문 표현 역시 복수를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 일곱 학생은 그냥 '七學生'이지 결코 '七學生等'이 아니다. '七學生等'이 굳이 말이 되려면, 그 의미는 '일곱 학생과 기타등등'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7 플러스라는 뜻이다. 요컨대 냉수리비문에 보이는 '七王等'이 왕 일곱 명을 가리킨다고 할 때,


첫째, 한국어로도 비문법적이며 

둘째, 순한문으로도 비문법적이다.


'七王等'이 결코 왕 일곱이 될 수 없다는 가장 명명백백한 증거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윗면>


울진 봉평 신라비나 영일 냉수리 신라비나 모조리 가릴 것 없이 그에 적힌 문장은 한문이다. 거기에 신라식 요소가 보인다 해도, 근간은 한문임은 하늘이 두쪽나도 변할 수 없다. 한문에서 'A等'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A와 기타등등'이라는 뜻이다. 이건 천자문만 해도 아는 구문론이다. 


냉수리비에서 보이는 '此七王等'은 이들 일곱 왕과 기타등등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왕이 일곱이 아니냐, 그러니 일곱 왕과 기타 등등이 아니냐 하겠지만, 이들 일곱이 누구인지는 그 바로 앞에 나온다. 그들 중 (갈문)王을 冠稱한 이는 오직 한 명 뿐이다. 나머지는 그 아래에 포진한 신하들이다. 그래서 '갈문왕과 기타등등'이라 한 것이다.


같은 냉수리비에서는 이와 똑같은 구문이 무려 세 군데 네 군데나 나온다. 그래 너희 말대로 일곱 왕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선 시대 두 임금인 '전세이왕前世二王'은 '前世二王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에서 말하는 두 사람을 의미하는 '此二人'은 '此二人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에서 말하는 일곱사람을 의미하는 '此七人'은 '此七人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같은 비문에서 '前世二王 / 此二人 / 此七人'으로 각각 등장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같은 비문에 같은 구문이 보이는데도 저따위 억지를 부리는 이가 아직도 있다. 


나는 냉수리비문이 한문이라 했다. 그럼에도 엉뚱하게도 等을 기타등등이 아니라 복수를 의미하는 '들'에 대한 이두적인 쓰임으로 보고자 하는 욕망이 그득하다. 이는 또 무슨 망발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국어학의 부당한 개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어학자들은 等만 보면 들이 아닌가 의심한다. 국어학이 이룩한 성과가 다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끼친 패악 역시 막대하기만 하다.


무슨 한문을 이두로 해석한다는 말인가? 지증왕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이두로 한문을 해석하는 코미디가 일어난다.


호응이다. 성문기초영어만 봐도 나오는 호응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뒷면>


그럼에도 저런 억지 해석에 바탕을 두고서는 지증왕 무렵에 신라에는 동시에 왕이 일곱이 있었다는 주장이 한때 요원의 불길처럼 일었다. 그것이 고사직전인 지금에는 할 수 없이 갈문왕과 기타등등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저것 아니라도 당시 신라에서 왕은 변변찮은 위상을 지닌 존재였다는 주장이 여전히 횡행하다.


king과 kingship도 구분하지 못하는 신라사학계다. king과 kingship은 구별할 줄 아는가? 특정한 king이 여러 이유로 그 권력이 빈껍데기 같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리가 주는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 권위를 둘러싼 절대의 제반을 바로 kingship이라 한다.


king과 kingship을 혼동할 수는 없다. 혼동하면 역사학 그만둬야 한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전면>


다음과 같은 역사 가정을 해 본다. 


옛날 신라라는 왕국 서기 500년에 김태식 대물왕(大物王)과 홍승직 국무총리, 기호철 교육부장관, 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기조실장, 신영문 교육부 대학교육정책과장, 유제욱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과장, 이재호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사무관이 모여 재미교포 미련곰탱이라는 여인이 관계된 재산 분쟁건을 함께 논의한 결과, ‘此七王等’(A)이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모든 재산은 미련곰탱이가 갖는다.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 사지를 찢어죽인다.”


이런 결정 내용은 홍길동 과장, 전우치 사무관, 심청이 사무관, 춘향이 사무관, 어우동 주무관, 배비장 주사, 별주부 주사 ‘此七人’(B)이 현지에 전달하고 비석을 세워 기록한다.


묻는다. 

‘此七王等’(A)은 누구인가?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해 결정한 왕과 그의 신하 6명을 말함이 아닌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이들 일곱 김태식 (대물)왕과 기타 등등’이라는 뜻 아닌가 말이다. 이 경우 왕은 오직 대물왕 한 명뿐이다. 나머지 6명도 王이라고?


나머지 6명이 왕이 될 수 없는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호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홍승직 국무총리, 기호철 교육부장관, 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기조실장, 신영문 교육부 대학교육정책과장, 유제욱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과장, 이재호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사무관을 왕이라 칭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왕은 오직 한 명 뿐이다. 따라서 ‘此七王等’은 ‘此七=王等’이다. 이들 일곱 명, 다시 말해 왕과 기타 등등이라는 뜻이다.


설혹 이를 ‘왕 일곱 명들’, 곧 seven kings라고 해석하자. 그렇다면 같은 문장에서 이 법령을 현지에 가서 공표한 사람들도 당연히 ‘此七人’이 아니라, ‘此七人等’이라 해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처럼 명백함에도, ‘此七王等’을 역사학도 100명 중 99명이 왕이 일곱이라고 해석했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1명의 왕과 6명의 대등(大等)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1명의 왕과 6명의 大等’이라는 해석 또한 코미디를 방불한다. 等이 그렇게 해석되기 위한 절대의 조건은 그 앞 문장에 대물왕을 제외한 국무총리 이하 6명이 ‘大等’이라는 언급이 있어야만 할 때에만 성립하는 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호응이다. 이런 기초문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신라사학계 현실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울진 영일 냉수리 신라비>


다음 두 문장을 보자.


(A) 옛날 신라라는 왕국에 김태식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은 음경(陰莖) 길이가 45센티미터였다.

(B) 옛날 신라라는 왕국에 김태식이라는 대물왕(大物王)이 살았다. 은 음경 길이가 45센티미터였다.


먼저 (A)를 본다. 말하는 사람이 '김태식이라는 사람'과 '왕'을 동일시했을 때, 이것이 이상한 문장임을 낌새 챈다. 그것은 바로 '호응'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 문장에 김태식을 왕으로 지칭할 조건이 그 앞 문장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달되려면, 저 문장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A) 옛날 신라라는 왕국에 김태식이라는 왕이 살았다. 은 음경(陰莖) 길이가 45센티미터였다.


반면 (B)에서는 그 바로 앞에서 김태식을 '(대물)왕'이라고 적기했기에, 그 다음 문장에 그를 지칭하는 대명사로써 그를 표현할 때 '왕'이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는 그 왕을 김태식을 지칭했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바로 호응이다. 

호응은 그가 언어 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를까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태어난다. 천 오백년 전 신라사람이라고 예외가 없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전면(부분)>


문법 혹은 언어학에서 말하는 법칙을 형이상학 혹은 관념에 속하는 그 무엇이라 대단하게 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문법이라는 것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상회하는 일은 결코 없어 그것은 언제나 실생활의 영역을 탈출하지 아니한다. 문법 혹은 언어학에서 고상하게 내세우는 개념 중에 '일치' 혹은 '호응(sequence or agreement)'이란 요물이 있다. 예컨대 A boy is standing there라 했으면, 그 뒤에서 a boy를 지칭할 대명사는 모름지기 he여야지 she 혹은 it 혹은 they가 될 수 없는 이치가 바로 호응이다. 


이것이 무에 대단한 발견이겠는가? 이런 호응은 언어학 혹은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득적(inborn)으로 지니고 태어난 능력이다. 물론 그런 능력을 타고난 것과 실제 언어생활에서 반드시 이렇게 사용되는가는 별개 문제다. 그리하여 A boy is standing there. She is my brother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은 얼마든 가능하며, 실제로 이런 착란이 무수하게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일어난다. 


이 경우 두 가지 점에서 일치에 문제가 생겼으니, 첫째, 앞에서 말한 a boy를 she라 했으니(he가 맞다) 이것이 하나요, 둘째, she가 brother가 될 수 없음이 두 번째다. 남자형제가 어찌 성별로 여성인 she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해 놓고도 그것이 비문법적이며, 호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말한 사람이 안다. 이것이 문법이요 언어학이니, 그것을 결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보기다.


한데 이런 아주 평범한 언어학 기본 상식조차 망각한 텍스트 해독에 기초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조작이 횡행했으니, 한심해서 차마 말문을 닫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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