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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말리2

총사령관 임말리任末里를 희생한 김유신의 출세작 낭비성 전투 진흥왕 시대에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했다. 이후 신라는 서쪽에선 백제, 동북쪽에서는 고구려의 협공에 내내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반도의 이런 정세 변동은 동아시아 세계 전체에도 영향을 주어 수당 왕조가 한반도 문제에 깊숙히 개입하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백제는 바다 건너 왜와 결탁을 강화하니,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흔든 대사건이었다. 이 와중에 신라와 고구려는 629년 가을 8월, 낭비성娘臂城이라는 곳에서 국운을 건 일대 혈투를 벌이게 된다. 이 사건 전개를 삼국사기에서 훑어보면 먼저 신라 진평왕본기 51년(629) 조에 이르기를 “가을 8월, 임금이 대장군 용춘龍春·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했다. 고구려인이 .. 2023. 5. 17.
김유신론(4) 전쟁은 영웅을 부르는 법 김유신이 신라의 미래 동량으로 두각을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한반도는 시종 전운이 감도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단 한 해도 전쟁이 없는 시대로 돌입했다.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본기에서 그 흔적을 추려보면, 38년(616) 겨울 10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쳤는가 하면, 40년(618)에는 북한산주 군주 변품(邊品)이 가잠성을 되찾고자 병사를 일으켜 백제와 싸웠지만 패배하고 해론(奚論)이 전사했다. 45년(623)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늑노현(勒弩縣)을 습격하더니 이듬해 46년(624) 겨울 10월에는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속함(速含)ㆍ앵잠(櫻岑)ㆍ기잠(歧暫)ㆍ봉잠(烽岑)ㆍ기현(旗縣)ㆍ혈책(穴柵) 여섯 성을 포위한 결과 세 성이 함락되고 급찬 눌최(訥催)가 전사하는 대패를 기록했다. 시종 백제 공세.. 2018.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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