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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96)


임호정(臨湖亭)


 당 배적(裴迪) / 김영문 選譯評


정자 마루 가득

물결 출렁이고


외로운 달

그 속에 배회하네


계곡 입구

원숭이 소리


바람에 실려

문으로 들어오네

(當軒彌滉漾, 孤月正裴回. 谷口猿聲發, 風傳入戶來.)


왕유는 「임호정」 시에서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라고 읊었다. 그가 맞은 좋은 손님이 누구일까? 바로 배적(裵迪)이다. 당시 배적도 종남산(終南山)에 기거하며 은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기실 왕유의 대표 시집 『망천집(輞川集)』에는 그의 시 20수뿐 아니라 배적이 화답한 20수도 함께 실려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망천집』은 왕유의 시집이 아니라 왕유와 배적의 합동 시집인 셈이다. 지금 남아 있는 배적의 시는 모두 28수인데, 왕유와 화답한 시가 대부분이다. 이 「임호정」 시는 왕유의 「임호정」에 화답한 시다. 같은 공간에서 지은 시지만 왕유의 시보다 훨씬 고독하고 쓸쓸하다. 왕유는 벗을 맞아 술을 준비하여 호수 위에 만발한 연꽃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배적은 출렁이는 호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외로운 달에 비견하고 있다. 그의 성 배씨(裴氏)와 배회(裴回)의 배(裴)가 같은 글자임에 주목하라. 그는 눈앞에 만발한 연꽃보다 계곡 입구의 슬픈 원숭이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점경인물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절대적 고독의 극한을 서성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한시, 계절의 노래(95)


임호정(臨湖亭)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


정자 마루에서

술동이 마주하니


사방 호수에

연꽃이 피네


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 當軒對尊酒, 四面芙蓉開.


왕유는 성당(盛唐) 산수전원파의 대표 시인이다. 그는 개원(開元) 말년 망천(輞川)에 은거하여 그곳 산수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았다. 그곳의 삶을 읊은 시가 그의 대표작 『망천집(輞川集)』 20수다. 앞에서 읽어본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채(鹿柴)」도 『망천집』 20수에 들어 있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했는데, 이 평가에 가장 걸맞은 시집이 바로 『망천집』이다. 이 시를 포함하여 그의 『망천집』을 읽어보면 산수화 같은 풍경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융화된 아주 작은 인물이 등장한다. 산수화 용어로 이런 인물을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한다. 산수를 즐기는 주인이면서 산수의 일부로 녹아든 손님이다. 산수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는 주체이지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또 그는 광활한 우주의 일부로 고독한 존재이나 우주의 모든 생명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사유의 각자(覺者)이기도 하다. 그가 좋은 벗을 맞아 술잔을 기울이므로 사방 연못 위에 연꽃이 피는 게 당연하다. 굴원이 벌써 노래했듯 연꽃은 군자의 꽃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정경교융(情景交融),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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