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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황자총통 사건을 보도한 1996년 6월20일자 조선일보 스크랩


*** 작년 오늘인 2017년 9월 21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손질해서 전재한다. 

이 사건이 터진 때가 1996년 6월이니, 이 무렵 나는 체육부  근무중이었다. 천하대사건이라 해도 내 분야 일이 아니면 소 닭쳐다보듯 하니, 그리하여 이 사건 역시 당시의 나한테는 특별한 일로 나한테 각인하지 않는다. 나와 동시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것과는 직접 연이 없는 이런 일에 매사 다 알아야 하는 사관입네 하는 오지랍대마왕주의를 발동하곤 하는 나로서는 한국문화재사에서는 그리 큰 사건이라는 이 가짜총통사건을 다루기가 무척이나 곤혹스럽다. 

정기영 국장을 만나기로 하고, 문화재관리국 재직 시절을 증언하는 사진 자료 몇 점을 부탁했더니 느닷없이 이 스크랩을 들고 나타났다. 이 황자총통 조작 사건은 단군 이래 희대의 문화재 사기극이다. 이때 그는 문화재관리국장이었다. 발굴에서 국보 지정은 정재훈 국장 재직 시절이었고, 그것이 사기극이 밝혀진 때가 그의 재직시절이다. 

정기영 국장에 의하면, 이 사건이 이상했던 점 중 하나는 발굴과 더불어 국보지정까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사건 전개를 둘러싼 본기를 작성해야겠지만 발견에서 국보까지 한달이 안걸렸다고 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찌 가능했을까.

이 가짜 총통을 국보 지정하는 문화재위가 열린 바로 그날, 이 가짜 총통은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을 알현했다. 대통령을 만난 총통은 곧바로 문화재위 회의실로 실려왔다. 

진짜냐? 

믿을 만 하냐?

는 간단한 구두시험을 거치고는 곧바로 문화재위 만장일치로 총통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당시 문화재위원장이 임창순. 이 사건 책임을 지고 나중에 임창순이 물러났지만 다른 어느 문화재위원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왜? 문화재위는 집합명사이므로 개인이 책임을 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기국 전 문화재관리국장


문화재위는 일괄사퇴해야 했고 나아가 이를 거울 삼아 모든 회의는 속기록을 남기고 녹취를 해야 했지만 그 어떤 놈도 이리할 마음이 없었다. 그리하면 누구도 소신 발언을 하지 못한다는 미명 아래 밀실 문화재 행정이 현재까지도 계속하는 중이다. 참고로 나 역시 현직 (무형)문화재위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황자총통 사건을 계기로, 제도 개선을 한다며, 첫째 문화재 지정 예고제가 도입되고, 둘째 국보 지정을 전담하는 국보분과가 문화재위에 생겼다. 이 중에서도 지정예고제는 지정을 둘러싼 논란을 차단 혹은 거르는 효과를 낳았으니 썩 의미 있는 문화재 행정 진전이라 할 만하다. 반면 국보 분과는 그때나 없어질 무렵이나 내내 할 일이 없어 문화재계 원로들 사랑방 기로소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 일이 없다 해서 유홍준 청장 시절에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만다. 

사기 사건이 터지자 국장에서 밀려나 박물관 사무국장으로 좌천된 상태로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정재훈은 그나마 그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내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이리하여 박정희 시대 문화재계를 군림한 거목이 쓸쓸히, 그것도 비참히 퇴장했다. 단국대 상과 출신으로 삼십대 새파란 사무관 정재훈은 경주관광개발계획으로 화려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했으나, 그 퇴장은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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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이래 문화재관리국 시대를 포함해 2018년 차관급 문화재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문화재관리국장과 문화재청장 중 소위 전문가에 속하는 국장 청장은 내 보기에는 딱 한 명이 가장 근접한다. 고 정재훈 국장이 그 사람이다. 기타 중에는 소위 문화재 전문가로 분류하는 국장 청장이 있지만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써 흔히 문화재 전문가로 분류하는 어느 누구도 전문가로 분류할 수는 없다.


초인적 문화재 행적을 보인 고 정재훈



역대 문화재 수장 중 현재까지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유홍준? 미술사나 좀 알고 답사 좀 했을 뿐이지, 무슨 '문화재' 전문가이겠는가? 

이건무? 젊은 시절 발굴 좀 해 봤고, 박물관 경영을 좀 해 봤지, 무슨 '문화재' 전문가이겠는가? 

최광식? 문헌사학자로 삼국시내 전공자로, 대학박물관장 경험한 사람이지 무슨 '문화재' 전문가이겠는가?

변영섭? 생평 대학교수로 지낸 미술사가로 반구대 암각화만 좀 신경썼지 그가 무슨 '문화재' 전문가이겠는가?

나선화? 도기나 자기 연구자로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생평을 보낸 인물로 그가 무슨 '문화재' 전문가이겠는가?  


이들이 해당 분야 전문가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곧 그들이 문화재 전문가임을 보이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아래서 다시 상론하듯이 저들이 저런 일을 투신한 것과 '문화재를 한다'는 개념은 전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광범위한 문화재 행정을 두루 경험하고, 고고학과 조경, 건축학 등등에 실로 광범위한 실무 경험과 연구업적을 축적한 정재훈 국장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문화재 전문가에 제일로 근접한 사람이다. 정 국장과 더불어 정기영 국장도 이에 포함할 만하다.


함에도 그 수장을 두고 틈만 나면 전문가 타령이다. 인사철만 되면, 혹은 그 경질 무렵이면, 전문가가 와야 한다는 당위가 정답처럼 군림한다.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재청장으로 정통 문화재 관료인 김종진씨가 경질되고 근자 소위 문화 전문 언론인 출신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등장하자 소위 문화재 전문가 그룹 일부에서는 몹시도 이에 불만을 품고는 그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공룡화석 발굴...고생물화석도 역시 문화재 영역이다.



그 집단을 보니, 가관인 점이 그네들 역시 문화재 전문집단이 전연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화재 전문가 집단이 아닌 사람들이 그들 자신은 자연 문화재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식을 바탕에 깔고는 문화재 정책 수장은 문화재 전문가가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착각한다. 땅 파는 고고학 하면, 불상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라면, 건물지 연구하고 조사하는 건축사학자라면, 문화재를 보존수리하는 보존과학도라면, 그것이 문화재 전문가임을 입증하는 보증수료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요 오만이다. 그런 일을 하는 행위를 고고학을 한다, 미술사를 한다, 건축사를 한다, 보존과학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이 각기 하는 일이 결코 문화재를 하는 일일 수는 없다. 그 무수한 문화재를 하는 행위 중 항하의 모래알 같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로 오만방자하게 자기네가 문화재를 한다는 말을 하며, 자기네가 문화재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문화재와 고고학은 다르다. 

문화재와 미술사학은 다르다. 

문화재와 건축사학은 다르다. 

문화재와 보존과학은 다르다.


충주 백제시대 유적 발굴..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고고학 발굴은 문화재 영역 중 일부다.



고고학을 하는 행위가, 미술사학을 하는 행위가, 건축사학을 하는 행위가, 보존과학을 하는 행위가 문화재를 하는 행위 광의에 포함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곧 문화재를 하는 일 전반을 커버할 수는 결코 없다. 그만큼 문화재를 한다는 행위나 개념은 더욱 포괄적이고 광의적이며 추상명사이며 집합명사다. 문화재청장은 고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고학도 출신 이건무가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기는 했지만, 청장이 된 이건무는 결코 고고학자일 수는 없다. 그는 무수한 문화재정책을 입안하고 그것을 결정하는 지위와 역할이 주어졌다. 


물론 역대 청장 중에 소위 전문가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이런 본분을 망각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 행적을 버리지 못한 이가 있으니, 이 경우 예외없이 문화재 정책이 울트라 난맥상을 보였다는 사실은 문화재를 한다는 것과 앞에 든 저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왕청난 차이가 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구대에 올인한 변영섭은 그 자신이 문화재청장이 아니었으며, 청장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반구대 운동가였을 따름이다. 그의 시대에 문화재 정책이 난맥상을 보인 까닭은 청장이 종래의 개벌 전공, 즉, 반구대를 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작금 고고학계에서는 발굴행정 때문에 난리인데, 그 난맥상 뿌리를 연 시대가 공교롭게도 고고학도 출신 이건무 청장 시대였다는 점을 어찌 설명하려는가? 


덧붙여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잘 봐줘서 문화재 전문가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들이 문화재 전문가여서 저들 시대 한국 문화재행정이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는가? 내 보기엔 행정 관료 출신, 혹은 군발이 출신 수장들에 견주어 하나도 나을 바가 없고, 외려 퇴보한 시대였다고 간주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문화재 전문가가 과연 무엇인지, 심각히 곱씹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문화재와 고고학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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