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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첩이라 해도, 그가 어떤 남성과 과거에 살았건 그건 전연 흠이 되지 않았다. 그가 기생이었다 해서, 그것이 그를 첩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어떤 주저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이것이 조선사회다. 어떤 점에서는 요즘의 한국사회 성관념과 비교해도 훨씬 혁신적이었고, 훨씬 선진적인 면도 있었다. 과거를 묻지 않았다.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다음 이야기는 그런 사정을 증거한다.  

가정 경신년 겨울에 호남 지방 감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신유년 봄에 병으로 전주에 머물며 조리하던 중에 기생 금개(今介)와 함께 산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금개의 나이 겨우 20살인데, 성질이 약삭빠르고 영리하였다. 전주에서 돌아올 때 정오가 되어 우정(郵亭)에서 쉬고 있는데, 기생 또한 따라와 송별하기에 내가 시를 지어 주기를,

봄 내내 병중에서 보내다가 / 一春都向病中過

이별하기 어려운 것 넌들 어찌 하리 / 難思無端奈爾何

침상에서 몇 번이나 눈썹을 찡그렸고 / 枕上幾回眉蹙黛

술자리에서는 그저 애교의 눈웃음이었네 / 酒邊空復眼橫波

객사에 늘어진 버들 애타게 보며 / 愁看客舍千絲柳

참고 양관의 한 곡조 들어 주소 / 忍聽陽關一曲歌

문밖에 해가 져도 떠나지 못하겠으니 / 門外日斜猶未發

좌중에 누가 고민이 많음을 알아주랴 / 座間誰是暗然多

하였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 내가 첩(妾)을 잃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전주 기생 금개가 일찍이 사람을 따라 상경했다가 그 사람이 죽어 과부로 지내는데, 마침 공의 첩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옛정을 사귀고자 한다.” 하기에, 내가 허락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사고가 있어서 이루지 못하였으니, 헤어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도 운수가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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