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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永 4년 1월 6일(1851년 2월 6일)~明治 41년(1908) 3월 2일. 


明治時代 일본 역사학자이자 동양사(東洋史)라는 개념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창안한 인물이다.

盛岡藩 번사(藩士)인 藤村盛德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이름이 荘次郎(莊次郞)이다. 번교(藩校)에서 성적이 뛰어나 14세에 藩校 교수이기도 한 漢學者 那珂悟楼의 청원으로 나카 가문[那珂家] 養子가 된다.


명치유신明治維新 뒤에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들어가 영학(英學)을 배웠다. 그후 사범학교 중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는가 하면, 뒤에는 치바사범학교(千葉師範學校)와 동경여자사범학교(東京女子師範學校) 교장으로도 일하면서 여성 교육에 진력했다. 그뒤 제일고등학교(第一高等學校)와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교수가 되고,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강사도 겸했다. 


그 사이에 日本 朝鮮 中國 역사에 관한 소위 실증적 연구를 많이 발표했다. 또 연구를 위해 당시로서는 진귀한 자전거를 이용해 국내외를 여행한 까닭에 ‘자전거박사’(自転車博士)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중국通史인 《지나통사支那通史》(1888~1890)가 대표 저작으로 꼽히니, 미완이지만 간결하고 객관적인 개설서라 해서 중국에서도 읽혔다. 


그는 ‘신유혁명설’(辛酉革命說)에 기초해 일본 고대사 紀年 문제를 연구한 ‘상세기년고’(上世年紀考)를 발표했으니, 이 논문은 《사학잡지(史学雑誌. 史學雜誌)》에 발표되고, 三品影英이 증보한 《상세기년고(上世年紀考)》에도 수록됐다. 


台植案 : 신유혁명설과 주갑설에 기초한 그의 기년 조정론 핵심은 일본서기 상대 기년이 신유년에 혁명이 일어난다는 종교관념에 기초에 사실과는 관계없이 그렇게 조작되었다는 것이며, 나아가 상대 기년 중에서도 교차 검증이 가능한 사건은 공교롭게도 주갑 기준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1주갑은 60년이니, 간지로 연대를 매기는 과정에서 해당 사건이 실제보다 60년, 혹은 120년, 혹은 240년 이런 식으로 올려졌다는 것이다. 일본서기 연대를 교정한 잣대가 바로 《삼국사기》였다. 다시 말해 《일본서기》와 《삼국사기》가 말하는 같은 사건을 보니, 《삼국사기》 연대가 사실과 부합하는 반면, 《일본서기》 쪽은 주갑 단위로 실제보다 상승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한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일본서기》가 사건이나 연대를 조작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난 신유년 혁명설이, 도로 한국 고대사로 치고 들어와서는 '갑자년' 혁명설로 둔갑해서는, 《삼국사기》가 말한 박혁거세에 의한 신라 건국연도가 하필 갑자년인 것도, 그리고 그의 재위 기간이 하필 60년인 것도 조작이라고 하는가 하면, 상고기 연대는 믿지 못하므로 어느 시기까지는 모조리 120년, 혹은 240년을 당겨내리는 기년조정론으로 둔갑했다는 점이다. 《일본서기》를 교정하는 데 잣대 역할을 한 《삼국사기》가 도리어 재단되는 역설이 빚어진 것이다. 


나아가 《원조비사(元朝秘史)》를 《성길사한실록(成吉思汗実録. 成吉思汗實錄)》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완역했다.

또한 같은 盛岡藩 출신으로 같은 동양사 전공자인 나이토 코난(内藤湖南․內藤湖南)과도 친교를 맺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백조고길․白鳥庫吉)는 그의 중학 교사 시절 제자다. 栃木県 日光市 華厳滝에 「巌頭之感」을 새겨 남기고 투신자살한 藤村操은 생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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