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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 선생 글이다. 


배도(裴度, 764-839)는 자가 중립(中立)이며 하동 문희(聞喜, 산서성) 사람이다. 789년 진사과에 급제했으며, 792년 박학굉사과에 급제하여 교서랑이 되었다. 794년 현량방정능직언극간과(賢良方正能直言極諫科)에 급제하여 하음위(河陰尉)로 옮겼다. 811년 이후 사봉원외랑, 사봉랑중, 중서사인, 어사중승 등을 역임하면서 번진의 세력을 억누를 것을 적극 주장하여 헌종의 총신을 받았다. 817년 창의군절도사가 되어 한유, 이정봉, 풍숙 등을 데리고 회서의 반란을 토벌하였으며, 그 공으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819년 하동절도사로 나갔다가 822년 입궁하여 사공 겸 문하시랑, 상서우복야를 마치고 산남서도절도사로 나갔다. 826년 사공, 복지정사(復知政事)가 되었다가 830년 산남동도절도사로 나갔다. 834년 동도유수(東都留守)로 있으면서 황보식(皇甫湜)을 종사로 불렀고, 백거이, 유우석 등과 창화하였다. 837년 하동절도사가 되었으며, 839년 중서령이 되고서 곧 죽었다. 배도는 중당 시기의 정치가로 공적이 많으며 문학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송사』「예문지」에 저록된 『배도집』(裴度集) 2권, 『신당서』「예문지」에 저록된 『서의』(書儀) 2권과 『여락집』(汝洛集) 1권은 모두 전하지 않는다. 현재 『전당시』에 시 1권과 『전당문』에 문장 2권이 전한다. 『구당서』와 『신당서』 본전에 전기가 있다.


中書卽事

중서성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有意效承平, 태평시대를 여는데 뜻을 두었건만

無功答聖明. 성명한 군주께 답할 공로가 없어

灰心緣忍事, 냉정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일하고

霜鬢爲論兵. 서리 내린 백발로 병법을 논하노라

道直身還在, 곧은 길에 몸을 두고 있는데

恩深命轉輕. 은덕이 깊을수록 목숨이 가벼워라

鹽梅虛擬議, 맛을 조절하는 재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나

葵藿是平生. 규채처럼 군주를 향한 건 평소의 심정이라

白日長懸照, 태양이 언제나 비추고 있는데

蒼蠅謾發聲! 파리들이 헐뜯는 소리를 내는구나!

嵩陽舊田裏, 숭산의 남면에 예전의 논밭이 있으니

終使謝歸耕. 결국에는 돌아가 밭을 갈리라


〔해설〕 중서성에서 재상 직에 있으며 일어나는 감회를 썼다. 조정의 복잡한 권력 투쟁 속에서 자신의 곧은 심정과 충정의 마음을 나타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배도는 815년 6월에 중서시랑에 재상이 되었고, 817년 8월 회서로 출정 나갔으므로 그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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