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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시대 말기 남조의 대표적인 시인인 서릉(徐陵)이 편찬한 연애시 앤쏠로지 <<옥대신영>>(玉臺新詠) 중 권제1에는 작자를 진림(陳琳)이라 했다. 진림에 대해서는 시 아래에 첨부한 그의 행적을 보라. 아래 시를 읽으면 어째 기분이 쏴 하다.

 

 

飮馬長城窟行一首

飮馬長城窟  장성굴에서 말에게 물 먹이니

水寒傷馬骨 물은 차가워 말이 뼈 속까지 어네

往謂長城吏  장성 관리에게 가서 부탁하기를

愼莫稽留太原卒 부디 태원 출신 졸병은 잡아두지 마오

官作自有程  관청일이란 정해진 길이 있는 법

擧築諧汝聲 달구 들어 네 노랫소리에 맞추어라

男兒甯當格鬬死 사내라면 싸우다 죽어야 하거늘

何能怫鬱築長城 어찌 찌질하게 장성만 쌓고 있으리오

長城何連連  장성은 어찌나 끝없이 이어지는지

連連三千里 끝없이 이어져 3천리라네

邊城多健少  변경엔 젊고 건장한 사내 많고

內舍多寡婦 집안엔 과부만 넘쳐나네

作書與內舍  편지 적어 집으로 보내기를

便嫁莫留住 딴 데로 시집가오 홀로 살지 마오

善事新姑章  새 시부모 잘 모시되

時時念我故夫子 때론 이 옛날 남편도 생각해 주오

報書往邊地  변방으로 온 답장에 이르기를

君今出語一何鄙 당신 지금 하신 말 어찌 그리 막 되었소

身在禍難中 나야 화난에 처해 있지만

何爲稽留他家子 어찌 다른 집 여자를 잡아 둘 수 있겠소

生男愼勿擧  사내를 낳거든 제발 떠들지 말고

生女哺用脯 딸을 낳거들랑 고기 먹어 키우소서

君獨不見長城下 그대만 보지 못했소? 장성 아래

死人骸骨相撐拄 죽은 이 해골이 서로 받친 모습을

結髮行事君  머리 올리고 당신 섬긴 이래

慊慊心意關 울적한 마음엔 온통 변방 관문뿐

明知邊地苦 변경의 어려움 잘 알면서도

賤妾何能久自全 천첩만 어찌 홀로 온전하리오

 

陳琳(진림)

(?~217), 漢魏 연간을 산 文學家이다. “建安七子” 중 한 명이다. 字는 공장(孔璋)이며 광릉(廣陵) 사양(射陽. 지금의 江蘇 淮安縣 東南) 사람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없으나 “건안칠자” 중 비교적 나이가 많았으며 대략 공융(孔融)과 비슷하다고 추측된다. 漢 靈帝 末年에 大將軍 하진(何進)의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何進이 환관들을 주살하고자 사방 변장(邊將)들을 수도 낙양(洛陽)으로 들어오라고 소집하자 그에게 간하여 저지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결국 하진은 피살되었다. 董卓이 낙양을 어지럽히자 陳琳는 기주(冀州)로 피난해 원소(袁紹)의 막부로 들어가니 袁紹는 그에게 문장(文章)을 담당케 하니 軍中에서 나온 문서는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가장 유명한 문장으로 《爲袁紹檄豫州文》이 있으니, 이 글에서 진림은 曹操의 罪狀을 열거하고 나아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비난했는데 그 문장이 자못 선동적이었다. 建安 5년(200)에 관도(官渡) 一戰에서 袁紹가 대패하자, 陳琳은 조조에게 포로가 되었다. 曹操가 그의 재주를 아껴 司空軍師祭酒로 삼아 記室을 맡겼다. 나중에는 丞相門下督이 되었다. 建安 22년(217), 劉楨, 應瑒, 徐幹 등과 함께 역질에 걸려 죽었다. 陳琳이 남긴 저작은 《隋書 經籍志》에 근거할 때 문집 10권이 있었으나 이미 망실되었다고 했다. 明代 張溥는 《陳記室集》을 집일해 《漢魏六朝百三家集》(漢魏六朝百三家集)에 넣었다.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 진림(陳琳)

 

1. 출전 : 《옥대신영玉臺新詠》 卷一 


2. 작자

陳琳(?~217)은 漢末 文學家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명이다. 일찍이 大將軍 何進의 主簿를 지내다가 何進이 죽자 袁紹에게 歸附하여 書記를 담당했다. 袁紹가 敗하자 이번에는 曹操에게 歸依하니 司空軍謀祭酒가 되어 記室을 관장하고 나아가 문하독(門下督)이 되었다. 원래 集 10卷이 있었으나 모두 망실되고 그의 詩作으로는 겨우 4首가 現存할 뿐이다. 明人이 《 陳記室集》1卷을 輯錄하니 이것이 後世에 流傳한다. 


그의 籍貫에 대해서는 許多 著作이 모두 江蘇 揚州人이라 하나 誤解다. 《資治通鑒》63卷에 記載하기를 “魏之廣陵郡治淮陰, 漢之廣陵故城廢棄不治”라 했으며 《淮安府志》에 稱하기를 “琳爲廣陵射陽人”이라 했다. 廣陵 射陽은 現在의 淮安市 楚州區이다.

 

3. 작품설명

《飮馬長城窟行》은 樂府 古題로 《淸商曲· 瑟調曲》에 속한다. 詩中에서는 長城 修築에 動員된 戍卒과 그 妻子의 對話가 포함된다.戰爭과 徭役에 따른 百姓의 夫婦, 妻子 離別과 家破人亡의 深重災難을 實感나게 描寫한다. 同名의 채옹 작품과는 내용은 다르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주제 의식은 똑같다.

 

4. 원문과 번역

飮馬長城窟   장성 샘에서 말을 물 먹이니

水寒傷馬骨        물은 차가워 말은 뼈가 상하네

往謂長城吏   장성 관리께 가서 이르기를

愼莫稽留太原卒   삼가 태원 졸병일랑 잡아두지 마오

官作自有程   노역엔 본디 기한 있으니

擧築諧汝聲         나무공이 들어 네 소리에 맞추리니

男兒甯當格鬬死 남아가 차라리 싸우다 죽을지언정

何能怫鬱築長城   어찌 우울하게 장성이나 쌓겠는가?

長城何連連   장성은 어찌 그리 길게 이어졌는지

連連三千里        이어지고 이어지기 3천리

邊城多健少   변방 성엔 젊은이 많으나

內舍多寡婦        집안엔 과부만 많네

作書與內舍   편지 써서 본집에 부치기를

便嫁莫留住         다른 데 시집가소, 남지 마소

善事新姑章   새 시부모 잘 섬기되

時時念我故夫子   때때로 옛 남편 나를 생각해 주오

報書往邊地   답장 변방으로 와서 이르기를

君今出語一何鄙   당신 지금 한 말 어찌 그리 야속하오

身在禍難中   몸은 화난 만났으나

何爲稽留他家子  어찌 다른 집 부인 되리오

生男愼勿擧    아들 낳으면 조심히 호적 올리지 않고  

生女哺用脯        딸 낳으면 포로써 먹이니

君獨不見長城下 당신만 장성 아래선 보지 못했소?

死人骸骨相撐拄   죽은 사람 해골 쌓인 모습을

結髮行事君   머리 올려 당신 섬기며

慊慊心意關        불안하게 마음 떨어져 있네

明知邊地苦   너무 잘 알겠어요 변방의 괴로움

賤妾何能久自全  천한 제가 어찌 오래 온전하리까

 

5. 注釋

(l)長城窟:長城邊的泉眼.

(2)長城吏:監管修筑長城的官吏.

(3)稽留:滯留, 阻留. 太原卒:征來的民伕.

(4)程:期限.

(5)諧汝聲:齊唱夯歌.

(6)怫郁:煩悶, 憂愁.

(7)連連:綿長不斷的樣子.

(8) 便嫁:改嫁.

(9)姑嫜:公婆.

(10)故夫子:原來的丈夫, 即戍卒自己.

(11)鄙:鄙俗.

(12)他家子:人家的女子.

(13)舉:養大.

(14)慊慊:怨恨不滿. 關:關聯, 牽挂. 這句說婚后的別離使她滿懷怨恨, 心中時時牽挂著遠方的丈夫.

(15)全:周全. (責任編輯:楊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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