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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8대 질지왕의 다른 이름. 金은 성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수로왕(首露王)의 8대손 김질왕(金銍王)은 정치에 부지런하고 또 참된 일을 매우 숭상하여 시조모(始祖母) 허황후(許皇后)를 위해서 그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했다.  이에 원가(元嘉) 29년 임진(壬辰; 452)에 수로왕과 허황후가 혼인하던 곳에 절을 세워 절 이름을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절 근처에 있는 평전(平田) 10결(結)을 측량해서 삼보(三寶)를 공양하는 비용으로 쓰게 했다.이 절이 생긴 지 500년 후에 장유사(長遊寺)를 세웠는데, 이 절에 바친 밭이 도합 300결(結)이나 되었다.  이에 장유사의 삼강(三綱)이, 왕후사(王后寺)가 장유사의 밭 동남쪽 지역 안에 있다고 해서 왕후사를 폐해서 장사(莊舍)를 만들어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겨울에 저장하는 장소와 말을 기르고 소를 치는 마구간으로 만들었으니 슬픈 일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질지왕(銍知王). 김질왕(金銍王)이라고도 함. 원가(元嘉) 28년에 즉위. 이듬해 시조(始祖)와 허황옥 왕후(許黃玉王后)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 처음 시조(始祖)와 만났던 자리에 절을 지어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밭 10결(結)을 바쳐 비용에 쓰게 함.  치세는 42년. 영명(永明) 10년 임신(壬申; 492) 10월 4일에 죽음. 왕비는 김상(金相) 사간(沙干)의 딸 방원(邦媛). 왕자 겸지(鉗知)를 낳음. 

☞질지왕(銍知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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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제8대 왕이며, 재위기간은 451~492년. 일명 김질왕(金銍王). 취희왕(吹希王)과 인덕(仁德)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비는 사간(沙干) 김상(金相) 딸인 방원(邦媛)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9대 겸지왕(鉗知王)은 아버지가 질지왕(銍知王)이며 어머니는 방원(邦媛)이다. 임신년에 즉위해 29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금관성(金官城)의 파사석탑(婆娑石塔) : 수로왕(首露王)이 황후(皇后)를 맞아서 같이 15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해동(海東)에는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佛法)을 신봉(信奉)하는 일이 없었다.  대개 상교(像敎)가 전해 오지 않아서 이 지방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는 절을 세웠다는 글이 실려 있지 않다.  그러던 것이 제8대 질지왕(질知王) 2년 임진(壬辰; 452)에 이르러 그곳에 절을 세우고 왕후사(王后寺)를 세워(이것은 아도阿道와 눌지왕訥祗王의 시대에 해당된다.  법흥왕法興王 이전의 일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복을 빌고 있다.  또 겸해서 남쪽 왜국(倭國)을 진압시켰으니,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탑은 모진 4면이 5층으로 되었고, 그 조각(彫刻)은 매우 기묘(奇妙)하다.  돌에는 희미한 붉은 무늬가 있고 품질이 매우 좋은데, 우리 나라에서 나는 종류가 아니다.  본초(本草)에 말한, "닭의 볏의 피를 찍어서 시험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금관국을 또한 가락국이라고 하니, <가락국본기(駕洛國本記)>에 자세히 실려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를 낳음. 질지왕(銍知王)  김질왕(金銍王)이라고도 함. 원가(元嘉) 28년에 즉위. 이듬해에 시조(始祖)와 허황옥 왕후(許黃玉王后)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처음 시조(始祖)와 만났던 자리에 절을 지어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밭 10결(結)을 바쳐 비용에 쓰게 함. 치세는 42년. 영명(永明) 10년 임신(壬申; 492) 10월 4일에 죽음. 왕비는 김상(金相) 사간(沙干)의 딸 방원(邦媛). 왕자 겸지(鉗知)를 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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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제7대 임금. 좌지왕과 복수 사이에서 났다. 질지왕 아버지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망하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 곳에서 보전하오리까.  또 점쟁이가 점을 쳐서 해괘(解卦)를 얻었는데 그 괘사(卦辭)에 ‘소인(小人)을 없애면 군자(君子)가 와서 도울 것이다’고 했으니 왕께선 역(易)의 괘를 살피시옵소서.” 이에 왕이 사과하며 옳다고 하고 용녀를 내쳐서 하산도(荷山島)로 귀양 보내고, 정치를 고쳐 행하여 길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치세는 15년으로, 영초(永初) 2년 신유(辛酉. 421) 4월 2일에 죽었다. 왕비는 도녕(道寧) 대아간(大阿干)의 딸 복수(福壽)로, 아들 취희(吹希)를 낳음.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 질지(銍知)를 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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