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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봉곡사



한시, 계절의 노래(173) 


초가을 비가 개다(初秋雨晴)


 송 주숙진 / 김영문 選譯評 


비 갠 후 시원한 바람

더위를 거둬가자


뜰앞 오동 잎잎마다

초가을 알리네


뜬 구름 황혼 좇아

모두 떠나자


누각 모서리 초생달이

옥 갈고린양 걸려 있네


雨後風凉暑氣收, 庭梧葉葉報初秋. 浮雲盡逐黃昏去, 樓角新蟾掛玉鉤. 


주숙진은 남송 시단에서 이청조(李淸照)와 쌍벽을 이루는 여성 시인이다. 대략 이청조보다 50여 년 늦게 태어나 맑고 애절한 시풍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시를 모르는 저속한 벼슬아치에게 시집가서 불화하다가 우울증이 겹쳐 마흔 중반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호수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도 한다. 그의 사(詞) 「생사자(生査子)·정월대보름(元夕)」에 나오는 “버드나무 꼭대기에 달 떠오를 때, 황혼 뒤 만나자 기약했다네(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라는 시구는 가정을 가진 여성이 남몰래 밀회를 즐기는 내용이어서 당시 뿐만 아니라 이후 수많은 전통 지식인의 지탄과 매도의 대상이었다. 주숙진이 세상을 떠난 후 친정 부모는 그의 불행한 삶이 뛰어난 문재(文才) 때문이라 여기고 그의 시고(詩稿)를 모두 불태웠으나 이미 항간에 전해진 작품이 워낙 많아서 지금까지도 그의 『단장시집(斷腸詩集)』과 『단장사(斷腸詞)』가 전해오고 있다. 이 시는 비 갠 후 초가을 황혼 무렵 갈고리처럼 예쁘게 걸린 초생달을 읊은 시다. 맑은 바람에 우수수 흔들리는 오동잎 소리는 마침내 우수의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BGM이다. 이제 온 천지에 가을 음악 첫 소절이 깔리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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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50)


초가을(初秋)


 당 맹호연 / 김영문 選譯評 


시나브로 초가을 밤

점점 더 길어지고


맑은 바람 스산하게

쓸쓸함을 더해주네


불볕더위 물러가고

초가집은 고즈넉한데


섬돌 아래 잔디밭에

이슬방울 반짝이네 


不覺初秋夜漸長, 淸風習習重凄凉. 炎炎暑退茅齋靜, 階下叢莎有露光.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다. 남조 양(梁)나라 때 장승요(張僧繇)란 화가가 금릉(金陵) 안락사(安樂寺) 벽에 용 네 마리를 그렸는데 용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굳이 눈동자를 그리게 하자 뇌성벽력이 내리치며 용 두 마리는 승천했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화룡점정은 어떤 일이나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한다. 동진 화가 고개지(顧愷之)도 그림을 그릴 때 전신(傳神)을 중시하며 인물의 눈동자를 찍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전신(傳神)은 ‘정신을 전한다’는 뜻이다. 그림에만 이런 이론이 있는 게 아니다. 한시에서도 ‘시안(詩眼)’이란 말이 있다. 한 편의 한시에서 그 시의 주제와 정신이 집중된 한 글자를 ‘시안’이라고 한다. ‘시안’에는 고도로 정련된 전체 시의 이미지나 요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럼 이 한시의 ‘시안’은 무엇일까? 추야(秋夜), 청풍(淸風), 처량(凄涼), 서퇴(暑退), 노광(露光) 등의 시어는 어떤 글자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정(靜)’이다. 이 한시의 모든 시어는 가을밤의 ‘고즈넉함(靜)’을 꾸며주고 있다. 화룡점정처럼 이 한시도 ‘정(靜)’ 자에 이 시의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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